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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Jan 28. 2021

청소 안 하면 다음 생에 못 생기게 태어난다

이번 생은 글렀다. 다음 생에라도!

정말이야? 전생에 청소를 못한 죄로 못 생기게 태어난다는 말이? 난 얼마나 청소를 잘한 거야!

거울을 보고 웃어본다. 이만하면... 흠... 음... 그래, 청소 제대로 안 한 거 인정!



며칠간 대청소를 했다. 부모님과 살다 보니, 추억이라고 못 버리시는 물건들이 많다. 아버지의 꿈은 종로에 나가서 중고 물건을 파시는 것, 사람들도 만나고 장사도하고 싶으시단다. 그게 가능한 지는 모르겠지만, 요새는 온라인 채소 모양 중고 거래처도 있는데, 굳이 그런 꿈을 펼치실 필요가 있나? 내가 볼 때 돈 주고 버려야 할 물건들인데 말이다. 당신의 젊은 시절, 소중한 가치를 지녔던 물건들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고 계신 거겠지? 나중에는 어머니랑 함께 전국을 떠돌며 물건을 팔고 싶으시단다. 아버지의 꿈을 보니, 참 소박하면서도 내 유랑의 근거가 아버지였구나 싶었다. 보통은 전국 여행이나, 세계 여행을 꿈꾸지 않으시나? 역시 아버지도 보통의 삶은 아니야.  



일단, 베란다에 물건들을 몰아넣었다. 쓸데없는 장식품과 진열대들도 좀 치우자 싶었다. 이제 서재다. 술 먹은 듯 쓰러진 책들을 깨워서 일으켜 세우고, 몇 달 전 이케아에서 산 책상 상판과 다리들도 이어 박았다. 여태 나사를 못 찾아 방치된 것들인데, 대충 비슷한 나사를 찾아 전동 드릴로 박았다. 오라버니가 선물해준 작은 전동 드릴은 나중에 뭐라도 만들 꿈을 꾸게 했다. 미스터리다. 서재는 치워도 치워도 지저분하다.


한쪽에 차와 커피를 마실 공간을 마련하려다가 티베트 관련 책장을 보게 됐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 법문을 들으며 티베트 불교 공부를 하던 때에 읽던 책들이다. 주로 영어로 된 책들을 스터디 형식으로 모여 공부했다. 영어가 딸린 나는 수험생 못지않게 단어를 뒤지며 그들을 쫒아갔다. 결국 한 권을 끝내고 처음과 달리 부드럽게 소화하는 나를 모두 대단히 칭송했지! 그만큼 바닥에서 산을 오르는 수행의 시간들이었다. 그때 한글로 번역된 '람림'이라는 책을 만나게 됐다. 재미있게 읽다가 뒷부분을 못 읽었던 기억! 한국으로 와서 책을 찾아봤더니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었다. 중고 서적을 뒤지다가 부산 쪽 사이트에서 책을 발견했다. 드디어 내 품에 안긴 책!



몇 년 전 한국에 티베트 사찰이 생겼다고 해서 방문했더니, 그곳 티베트 스님이 한글을 배워서 번역한 책을 주셨다. 그것이 람림! 내가 가진 책 보다 두꺼운 걸 보니, 더 세세하게 풀이하신 것 같았다.


람림은 티베트 스승들이 수행자들을 위해 전한 글이라고 보면 되겠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으려는 중생들에게 안내된 책이다. 일반인인 내가 봤을 때 굉장히 세심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데, 그 내용이 어렵지 않게 잘 정리되어 재미있게 읽혔다. 종교를 떠나, 삶에 있어 궁금한 내용들이 참 많이 담겼다고나 할까? 가령 죽음에 대해, 환생과 윤회에 대해,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들을 어렵지 않게, 보편적으로 다루었다.


'람림' 중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이거였다.  


"수행하는 장소를 쓸고 닦으면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정화되며, 선신들이 좋아하게 되고 다음 생에 잘생긴 외모로 태어나는 원인이 되며, 죽었을 때 정토에 나는 원인이 되는 등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티베트 스승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 '람림' 중에-



티베트 스님이 티베트 글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다람살라에 1년여 머물며 티베트어를 조금 배웠다. 티베트 친구들에게 살짝 배웠는데, 그걸 기특하게 본 남자가 매일 시간을 내서 본격적으로 가르쳐줬다. 그는 나름 달라이 라마 사무소에서 일했던 엘리트였다.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 때문에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들, 혀를 아무리 굴려도 그 발음을 다 따라 할 수 없던 세밀한 언어였다. 하지만 비교적 잘한다는 칭찬, 길 가다가 광고판에서 어린아이처럼 글을 읽어대는 나를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손뼉 쳐 줬던 기억! 모두 내 회회 연습 대상이 되어준 티베트 친구들 덕분이었다. 오다가다 만난 티베트 친구들에게 영어 대신 티베트어로 인사할 수 있어서 제일 신났다.



당시 나는 티베트어로 쓰인 가로로 긴 티베트 경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물로 온 경전들도 있고, 지금은 아무리 봐도 까막눈이다. 언어는 계속 다루지 않으면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는 것! 다시 마음먹고 책을 들여다보고, 그 자리로 가서 몰입을 하면 기억할 수 있으려나! 나름 요가도 하면서 영적 목마름을 채워갔던 시절이었다.



람림에서 들려준 이야기 중에 수행하는 장소를 쓸고 닦는 방법이 있다. 제자에게 업장 정화를 위해 먼저 수행자들의 신발부터 닦게 했던 내용이다. 이 부분은 까르마 요가, 박티 요가와 같다. 헌신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들어왔던 '하심'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사원을 청소할 때 왼쪽을 청소하면 오른쪽에 먼지가 쌓이고, 오른쪽을 청소하면 왼쪽에 먼지가 쌓인다는 내용, 그러기에 끊임없이 청소를 반복해야 업장이 정화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먼지는 외부의 흙먼지만 말하는 게 아니라 탐욕과 화냄, 어리석음을 일컬었다.  


"먼지는 흙먼지가 아니고 업장의 먼지이다. 먼지는 업장의 이름이지 먼지가 아니다. 지혜로운 자가 이러한 먼지를 버리게 되면 그것이 깨닫는 것이다."

-티베트 스승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 '람림' 중에-


방청소를 얼추 끝냈다. 몸은 거품 물기 직전인데, 마음은 평온했다. 오래전 여자스님들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며 티베트 게송을 듣고 공부하던 때가 그리웠다. 옥상에서 빨래를 널며 바라봤던 히말라야의 지붕, 나라 잃은 난민의 삶을 사는 티베트 사람들의 그 맑은 미소가 보고 싶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20대 30대에도 처절하게 삶을 고민했던 날들, 나 역시 30대 중반에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던 때,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청소를 못해서 이렇게 태어난 거냐며 억울해하던 모습들, 우리는 결심했지, 다음 생에는 눈부신 외모로 태어나자고! 그래서 열심히 청소하기로 했는데?



친구들, 지금도 잘 청소하며 살고 있니? 다람살라에서 너희를 만난 건 기쁨이었다. 같은 한국에 살면서도 못 보고 살게 됐네. 언젠가 중학생 환생자가 말했지.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사람이라고! 이 말이 요새 자꾸 떠오른다. 그리고 청소를 하다가 생각났다. 우리가 방바닥에 담요를 카펫처럼 깔아서 여자 스님들이 방마다 들이닥쳐 담요를 걷어갔었지. 그들은 그 담요를 들고 냇가로 갔잖아. 그 겨울에 손빨래를 할 줄이야!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셨어. 햇빛에 바짝 말린 담요가 돌아왔을 때 청소와 빨래가 정화의 의미라는 걸 알았잖아. 직접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불편한 진실!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웠니! 그 뒤로 우리도 방 청소를 얼마나 잘했니, 각자 책걸상에 침대가 주어진 그 방, 햇살이 따사롭게 들어왔던 방에 몰려가 짜이를 마시던 때가 꿈처럼 떠오른다. 꿈, 지금도 우린 꿈을 꾸고 있지. 깨어나지 못할 영원한 꿈, 윤회의 그늘에서 우린 해탈할 수 있을까? 청소를 하면 업장이 정화되고 결국 소멸할 수 있을까?



다음 생에도 태어날 것 같아서 말인데...

나는 청소를 하긴 하는데...

잘 생기게 태어날 수 있을지....

가끔 청소를 해서 말이야...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아무래도 다음 생에도....

글렀어.

그냥 의느님께 의존해야 할까 봐.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잘 안 할 것 같아서 말이야.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잘 생기고 못 생긴 기준이 뭘까? 내 마음이 환해지면 거울 속 나도 환하게 잘 생겨 보이고, 남들 보는 눈이 깨끗하면 그들도 잘 생겨 보이는 것은 아닐까? 이게 다 마음의 정화가 있으면 현실 또한 달라진다는 말이 아닐까도 싶다. 어쨌든 청소를 잘해서 나쁠 건 없는 얘기다.


달라이 라마님의 법문 중에 반가웠던 내용이 있다. 전생이 궁금하면 현생을 보고, 다음 생이 궁금하면 역시 현생을 보라고 했다. 전생의 잘못으로 이리 태어났다고 해도, 지금 잘하고 살면 다음 생은 나아지리라는 것? 그래 다음 생에 눈 부시게 태어나려면 눈 부시게 청소해야지! 그리고 조금 부지런해져야겠다. 그런데, 잠깐만 뭐지? 아, 피곤해! 조금만 더 자고! 청소는 매일 하는 거 아니지 않나?



혼자 구시렁거리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여러분도 청소 잘하시고, 다음 생에는 보다 더 잘 생기게 태어나시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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