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의 첫번째 고난
꿈의 그리던 바르셀로나에 처음 와서 구한 첫 집은 아주 좋은 위치였다. 나의 첫 외국생활이었기에 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로망은 ‘외국인들과 같이 살아보기’였다. 그 로망을 이루기 위해서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집을 이곳, 저곳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집이 생겼다.
스페인, 아니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온다면 누구나 한번쯤 보고가는 안토니 가우디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있다. 종교를 떠나서 130여년간을 묵묵히 자라고 있는 그 성당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성당이다. (완공이 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당으로 등재될 예정이기도 하고, 여전히 공사가 진행중인 성당이다. 그리고 내가 스페인에 살러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내가 맘에 들었던 집은, 그 곳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위치. 게다가 지하철, 버스 정류장, 교통도 편리하고 마트, 약국 등 모든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는 곳. 그러니까 우선 그 집에 살면 내가 바르셀로나에 오게된 가장 큰 이유였던 이 성당을, 뭔지 모를 감동으로 눈물을 훔쳤던 이 성당을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위치뿐만 아니라 각종 상점들 편의시설까지 같이 사는 사람들만 괜찮다면 나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곳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마음에 들었던 집을 보러간 그 날, 집주인 모녀는 식사중이었지만 따뜻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곤 집을 보러간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따뜻한 커피와 빵을 선뜻 내어주었고, 그렇게 인간적인 따뜻함에 감동을 잘 느끼는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뒤에 보러가기로 했던 집들을 모두 취소하면서 말이다. 나는 평소에 그렇게 용감하고 과감한 편은 아닌데, 그렇게 맘에 드는 것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가끔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저질러버리는 성격이다. 집을 구하기 전의 호스텔 생활에 지쳐있을 무렵이었기 때문에 이제 정말 내가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내 방’이 생겨서 너무나도 기뻤고, 함께 살아갈 따뜻한 이들을 만나고 보니 더욱더 설레고 행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집에 들어오고 난 뒤, 집주인은 내게 집에 관련된 몇가지 규칙을 말해주었다. 여럿이서 함께 사는 집이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거실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해야되는 것. 당연히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당시 굉장히 뜨거운 바르셀로나의 여름, 7월이었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나가도 오후시간에 집에 들어오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던 그런 나날들. 그래서 오후에 흠뻑 흘린 땀때문에 잠시 나의 스윗홈(그 당시에는)에 들려 샤워를 하고 저녁공부를 하러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집주인 모녀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물을 쓰는 것에 대한 규제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일주일에 무려 2번만 샤워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내가 잘못알아들은 줄 알았다(그들과 나는 영어로 이야기했었기 때문에) 그런데 잘못알아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알아듣기 쉬운 영어단어였기에 나는 곱씹어 볼수록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말도 안된다. 지금은 여름이고, 그러면 당신들도 그렇게 씻는다구요?”
“당연하지, 나는 일주일에 한번만 샤워해.”
정말 많이 양보해서 겨울철이라면 이해를 하는 시늉이라고도 했겠지만, 7월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여름은 이미 시작되었고, 밤에도 더운날씨에 하루종일 바르셀로나의 지리를 익히고 공부를 하며 돌아다녀야 했던 나는 하루가 아닌 두세시간마다 샤워를 하고 싶을정도로 많은 땀을 흘렸기에 가혹한 일이었다. 또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을 좋아하는 바디워시의 향을 맡으며 몸을 씻는 일로 가졌던 나에게는 정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아 그리고 7시 이전, 그리고 10시 이후에는 사용 금지야. 바르셀로나에는 그런 규정이 있어”
아침 7시에 집에서 출근을 해야하고, 밤 10시 이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나에게는 아예 씻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때에도 더운 집에서 선풍기 하나를 틀며 이야기 했기에 땀을 흘리며 이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규칙을 어기면 시에서 부과하는 엄청난 벌금을 부과해야한다 라는 규칙을 나에게 보여주며 심각하게 말했기에, 나는 그나마 합의점을 찾아 많이 양보해서 일주일에3번 샤워를 하되, 아침에만 허락받도록 했다. 그리고 순진했던 나는 그 규정을 철저하게 지켜 밤에 땀에 절어서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침대에 누워 알람을 맞추며 찝집함과 왠지모를 서러움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 빨리 아침이 와서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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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옆 방에 사는 하우스메이트와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러한 샤워 규정은 없으며, 그리고 또 나만 청소를 훨씬 많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순간 너무나도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다. 나를 순진하게 보고 속인건가? 인종차별인가? 그리고 그 날 오후, 집주인을 불러 당장 말을 했다. 더듬더듬 하던 영어도 역시 급할 때라그런지 다른 때보다 술술 나왔고, 그리고 갑자기 나는 말을 하다가 그만 눈물이 터져버렸다.
“나 그냥 이 집을 나가고 싶어. 보증금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나갈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스페인에 오고 나서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겹쳐져서 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집에서 이렇게 살고있나.
그 때 갑자기 그들은 나를 위로해주며 나에 대한 청소를 줄여주고, 샤워를 일주일에 3번에서 무려(?)5번을 할 수 있도록 늘려주었지만, 내 마음은 단단히 닫힌 상태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외국인과 함께살지 않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남은 스페인 생활을 모두 한국인 동료들과, 혹은 나 혼자 생활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20대 중반의 나이에 스페인이라는 낯선 땅에 무작정 살러 오게 된 어린 나는, 처음 겪어본 낯선 곳에서의 낯선 이들에게 낯선 배신감을 느꼈다. 나의 스페인의 삶은, 여행으로 와서 내가 반했던 스페인의 그 아름다움이 산산조각나면서 시작되었다. 여행이 아닌 살기 위해 온 곳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