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울여행 중으로 3개월을 넘기고 있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속초스런 말투로 인하여 웃음을 자아내거나 장난스러운 놀림을 당한 적이 있었기에 서울여행 중에는 가능한 한 말을 삼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먼저 말을 걸진 않기 때문에 나의 속초 억양(북한말투)은 내 안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 내가 속초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한 날이 있다.
아침 배낭하나에 물한 통 넣어서 길을 나선다. 처음 서울여행을 나선던 날은 직장생활의 출근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 8시 30분에 길을 나섰다. 지하철은 내가 들어갈 틈도 없이 꽉 차 있었고, 역에서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사람들 속에서 나만이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바삐 돌아가는 출근길의 움직임을 보며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하루종일 먹고 노는 사람인데, 이 바쁜 시간에 나까지 저들의 틈에 끼어, 출근길에 보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은 출근하는 사람들의 몫이니, 요즘같이 힘든 세상 출근시간만이라도 힘들지 않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날부터는 10시나 10시 반정도에 집을 나섰다.
덕수궁 석조전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사전 예약을 통해 10반 40분 해설 예약을 하였기에 평소에는 10시쯤 시작하던 서울여행을 그날은 서둘러 9시에 나갔다.
숙소에서 덕수궁 까지 가는 시간도 1시간이나 걸렸고, 서울길은 초행이라 예약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할까 봐 서둘렀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은 칸칸마다 사람들도 꽉 차있었고, 역내에도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숨 막히는 지하철역에서 환승을 위해 내리려고 하는 것은 내리기 전역부터 출입문쪽 상황을 살펴 자리를 잡아야 했으나, 환승객이 너무 많은 관계로 그날은 저절로 내리게 되었다.
지하철 환승역은 바로 환승이 되는 곳이 없었다. 환승하기 위해서는 지하 3층에서부터 시작하여, 계단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서울여행 중 가장 많이 걸었던 곳도 환승역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환승역까지, 출구까지 가장 쉽고 빠르게 가는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인데, 엘리베이터 앞에는 우선 탑승자를 위해 양보하라는 문구가 있어, 탈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지하철에 내려서 바로 앞이 엘리베이터였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될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엘리베이터에 떠밀려 타게 된 것이다.
출근시간대여서 엘리베이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 볼 이 유도 없어서 올라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급하게 달려오더니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지막 사람이 올라타자마자 엘리베이터는 무게 용량 초과로 경고음이 울기 시작했다.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 사람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그러자 마지막 사람은 얼른 내려 버렸다.그런데도 여전히 경고음은 계속 울렸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가운데,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내가 내렸다. 내가 내리자마자 엘리베이터는 쏜살같이 올라갔고 역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탈까, 계단을 타고 올라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계단에서 한 사람이 급하게 내려오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서며
" 저 때문에 내리셨군요" 하며 말을 건넸다.
" 괜찮아요. 저는 천천히 가도 돼요"
대답을 하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였고, 둘만 타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서 엘리베이터 속에 있는다는 것은 참 멋쩍기도 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른 채 문만 응시하고 있었다.
" 저.... 중국에서 오셨죠? "
" 예? "
" 아니, 속초에서 왔는데요 "
" 아!! 동해, 삼척 갔을 때 그 억양을 들어서요."
속초에서 왔다는데 뜬금 없이 동해, 삼척이야기는 왜 할까?
" 동해, 삼척 살기 너무 좋던데, 게다가 강릉까지 ktx가 생겨서 더 좋더라고요 "
아마도 중국에서 왔냐는 질문에 속초에서 왔다니까 괜한 질문을 해서 난처해진 본인을 위한 변명의 말이 아니지 않을까.
" 제가 북한 억양을 많이 쓰죠? 안 그래도 연변에서 왔냐는 소리 많이 들어요, 속초는 38 이북지역이기도 하고, 실향민이 많이 계셔서 제 나이 때는 그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
지하에서 3층까지 올라오는 시간은 1분일 수도 있고, 30초쯤일 수도 있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속초 사람이 중국에서 온사람으로 오해받았던 그 시간만큼은 길게 느껴졌다.
속초는 실향민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팔선 이북지방으로, 전쟁을 피해 속초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정착한 마을 아바이 마을도 있다.
부모님 이전 세대부터 38선 이북 지역에서 살았고, 나 또한 결혼해서 3년 동안 다른 동네에 가서 산 이력 이외는 줄곳 속초에서 살았다.그렇기에 자연히 북한말투를 익혔을 수밖에 없다. 내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유독 내가 북한 억양을 많이 쓴다.
직장 생활 동안에도 " 연변에서 왔느냐? " " 거기 어디냐? 혹시 북한이냐.(전화상) 등 등 북한 억양으로 자주 들은 이야기이다.
속초에도 젊은 사람의 활동이 늘고, 실향민 1세대들도 많이 돌아가셨고, 한국 전쟁이 끝난 지도 70년이나 넘는 시간이 흘렀어도, 나의 북한 억양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진다.뼛속까지 속초 사람인가 보다.
나만 유독 북한억양을 쓰는게 아니라,내 나이대의 속초사람은 거의 다 이런 억양으로 말을 한다.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15년 전 직장 다닐 때였다. 당시 부서는 민원부서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말을 해야 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많은 민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원실 맨 뒤쪽에 계시던 과장님께서 조금 한가해지자 나를 불렀다. 민원인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해서, 항의 전화가 왔을 것 같은 예감에 잔뜩 주눅이 들어 쭈뼛쭈뼛, 두근두근하면서 과장님 책상 앞에 섰다.
민원에게서 항의 전화라도 오면, 단박에 불친절한 직원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고, 심지어는 확인서까지 작성하고, 인사 조치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 아니, 별일은 아니고... 김 여사, 연변에서 왔어? " "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인근 양양에서 태어나서 속초에서 산 지도 3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실 텐데, 뜬금없이 왜 저런 질문을 하실까?
내가 너무 무섭게 민원인을 대했나?, 말투가 너무 투명스러웠나?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큰일은 아니고, 김 여사가 민원 대하는 걸 보니, 연변 말투야. 함경도에서 피난 온 아바이들도 그 정도는 안 쓰는데, 너무 심하게 쓰네, 진짜 연변에서 온 것 같아. ㅎㅎ"
" 아네, 제가 그렇게 많이 북한 억양을 쓰나요? "
" 정말 그렇던데..." " 앞으론 별명을 연변 아가씨로 부를게.. " " 아네..."
그이 이후 과장님은 " 연변 아가씨!! " 하면서 회식 때 나 사석에서 놀리셨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후 우리 과에서 정부 포상을 받게 되었고, 벤치마킹이라는 기회가 생겼다. 선진지 견학이라는 이름의 벤치마킹 팀에 과장님과 한조가 되었다.
견학 가는 며칠 전부터 과장님께서는 김 여사는 사람들이 연변에서 왔다고 오해하니까, 기관에 들어가서 궁금한 사항은 우리가 다 물에 볼 테니 말하지 말고 가만있으라며, 놀렸다.
사실 나도 북한 억양의 말투 때문에 가능한 한 서울말처럼 쓰려고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서울말씨처럼 하려고 흉내를 내다가 웃음을 자아 낸적도 있다.
과장님의 농담도 있고, 나 자신도 조금 위축되기도 하고 해서 기관을 방문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나왔다.
견학을 마치고 나오니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낙안읍성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읍성 안 주막집에 들어가, 해물파전과 꼬막비빔밥을 주문했다.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서비스로 음식을 가져다주시면서
" 어디, 저... 훈춘(중국 훈춘, 조선족 자치구)에서 오셨나요? "
" 왜요? " " 아니 이 아저씨가 북한 말을 너무 많이 써서요" " ㅋㅋㅋㅋ "
나도 아닌 과장님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 ㅎㅎㅎㅎㅎ"
내가 사는 속초의 사회 환경에 의해 굳어진, 내 몸속에 DNA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를 말투를 고치기 위해 새로 배운다고 해서, 내가 속초사람이 아닌게 아닌 이상, 내가 구축해 온 말투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