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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Dec 27. 2022

인생 60에 홀로 떠난 서울여행 3개월 차의 소회




서울 여행 3개월 차에 들어섰다. 3개월이면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곳은 다 다녀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궁궐과 공원, 미술관 정도 다녀 본 것이 다이다.



여행지만 정해져 있지, 어디를 가야겠다. 무엇을 보아야겠다. 계획도 없이, 당일 아침 떠오르는 곳으로 정하듯 , 원칙도 계획도 없다.


그래도 서울이 우리나라 수도인데, 과거 한양도성의 이야기는 알아야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궁궐을 가거나,


어느 날은 하염없이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기만 하거나, 지하철에서 본 관광지 광고를 보고 즉흥적으로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느긋하게 여행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년 4월까지 서울 여행을 계획했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고,


처음 한 달은 하루에 이만 오천보를 걸어서, 무릎에 이상이 오기도 했고,

 

코로나에 걸려 후유증 치료까지 삼주 이상을 허비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은 남편이 있는  속초로 향하다 보니 , 생각처럼 많은 곳을 방문하지 못했다.






한 번도 속초를 떠나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행을 할 때는 항상 가족들과 함께였고, 지인들과 함께였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항상 남편이 데려다주었기에  지도를 볼 생각도 하지 못한 내가, 지도앱을 켜가며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곳이 서울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60살이 넘어서  배낭하나만 메고 여행을 나선곳이 서울이다.


어릴 때부터 서울 사람들은 " 서있기만 해도  코 베어 간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세상에 중심은 내가 아닌 가족이라는 틀에서 살아왔기에 , 퇴직 후 처음으로 내가 중심이 되어 홀로 하는 여행지가 서울이어서 두려웠다.


서울사람에 대한 나쁜 인식, 홀로 길을 나선 두려움.... 지도를 잘 볼 줄 모르는 길치에, 방향치에다가, 핸드폰 정보활용도 잘 못하고,  혼자 밥을 먹어본 적도 없다. 게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적도 없다. 그런 내가  혼자만의 뚜벅이 여행을 시작했다.

 


 지하철에 올라서도, 제대로 올라탔는지, 반대방향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노선표 근처에만 자리를 잡았고, (세 번 정도 반대방향으로 타서 허둥댄 적이 있다).


몇번 지하철을 타고, 어디에서 환승해서, 어디에서 내리고, 몇번 출구에서 몇 m이다. 이 정보를 자기전에 한번, 지하철을 타기전 또한번, 환승지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거쳤다.


무엇보다 여행중 가장 두려웠던 것은 " 사건 사건에 얽히거나, 건강악화로 잘못되기라도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여행 중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그런 두려움에,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목적지를 잃어버린 날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서울에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방향도, 목적지도 잃어버린채 주변을 살펴 보았다. 카페가 눈에 띄었다. 카페에 들어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볼 요량 으로 들어갔다.


 여행지에서 처음 맞는 눈... 조용한 음악,


이런 것이 여행이군아하는. 행복한 감정이 올라왔다. 조금전 허둥되면서  갈피를 못잡고, 두려웠던 마음은  싹다 잊어 버렸다.


첫눈이라는 감성적인 분위기를 한껏 누리고 있을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이 여행지에서 첫눈을 맞듯 행운이 오는날도 있지만, 조금전 처럼 두려움이 있는 날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래, 유서를 쓰자, 여행지에서 혹시라도 어떤 경우가 생길지 모르니까"



"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만난 가족들에게 고맙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함께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행복했다.


 특히 60살이 넘어서 홀로 떠나는 여행을 응원해 주어서 고맙다.


처음 시작하는 홀로 여행지가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이지만, 앞으로 부산이 될지, 제주도가 될지, 아니면 해외가 될지 모르겠다.


여행을 결심하고 집이란 떠나는 곳이지 머무르는 곳이 아니다고 생각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고 싶은 곳을 여행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행지에서 어떤 사건사고에 휘말릴지도 모르고,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올 수도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그런 일이 만약 해외에서 생긴다면, 현지에서 화장하고, 그곳에서 다 처리해 주기 바란다.


혹시 엄마를 생각한다고, 격식을 차리거나 하지는 말거라. 간단하게 모든 것을 처리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엄마는  이미 장기기증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니, 국내에서 발생한다면 그에 맞게 처리해 주길 바란다.


이렇게 대충 메모를 했다.



대충 유언을 쓰고 나니 무엇인지 모르게 자신감이 생겼다.


혼자 하는 여행일지라도  두렵지 않아.. 하는 자신감이었다. 할 말은 다했다 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내 여행의 제목도 붙였다. "60이 되어서 처음 떠나는 홀로 여행"




이와 더불어 서울여행 중 내게 자신감을 붙게 해 준 것은 사람이다.


공원에서, 박물관에서, 지하철에서, 모든 분들이 친절을 베풀어 주었고, 본인들이 알고 있는 동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니, 대단하다며, 부럽다며 응원도 해주었다.



 " 우리가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수 있을 거요" 하시던 어르신의 말씀은 서울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연이 있어서 다시 만난다고 해도 내가 그 어르신을 알아볼 수도 없을 테고,


그 어르신 역시 나를 알아볼 수도 없을 텐데,  헤어지면서 하신 말씀이다.


홀로 하는 여행이라 밥때를 놓치기 십상인데, 그 어르신은 본인이 챙겨 온 간식과 음료를 챙겨 주셨다.


홀로 여행 중이라고 하니, 인근 가게에 들어가서 떡까지 사다 주셨다.


온화한 인상에 , 깔끔한 차림..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환생한 줄 알았다.


친정어머니를 뵌 듯 울컥해지며, 낯선 곳에 서 있어도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낯선곳이라고 해도 늘 내곁에 사람이 있다.


여행이란 모르는 곳에서 ,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조건없는 배풂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코베어 가는 세상일지라도 그 중심에는 늘 사람있다. 나도 마음을 열자.. 두려워 하지 말자..


첫 여행지에서 두려웠던, 외로웠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두려움 없이 여행을 하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낯선 곳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여행,


그 여행의 중심에는 역시 사람이 있다.


 그랬기에 앞으로의 여행은 두려움 없는 직진 뿐이다.  요즘 말로 정주행,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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