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추위는 매서웠다. 어제내린 눈이 지난밤 추위로 얼어버렸는지 눈위를 걸어도 발이 빠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발이 눈밭에 빠질 것 같아 살살 걸었보았다. 하지만 추위로 눈이 얼어서 미끄럼을 탈 지경이었다.
바람은 불고 기온은 영하의 날씨였다. 도로로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차가운 바람은 소매속을 파고 들어 오더니 온몸을 시리게 만들었다. 어디 들어가 바람을 피해 보려고 해도 마땅한 건물이 없었다. 그렇게 찬바람을 맞으며 한시간여를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난 지금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시내버스에 올라 읍내로 나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한참을 기다린후 강릉행 버스에 올랐다. 강릉행 버스는 7번국도를 따라 해변을 끼고 달려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바다는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하얀 파도는 몇 번이고 밀려왔다 밀려갔다. 바다내음이 버스속으로 들어왔다.
바다냄새를 언제 다시 느껴 보게 될지 , 이제 가면 바다냄새는 언제 다시 맡을수 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강릉 터미널에 도착하여 다시 평창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구불구불 대관령길을 버스는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칼바람에 나무의 울음소리가 점점 더 강해졌다.
대관령정상에 오르자 더욱 추운 바람이 버스속으로 들어왔다. 버스창에는 김이 서려 밖을 볼수 없어, 소매를 끌어내려 창문을 닦고 밖을 내다 보았다.
바람도세고 추웠다. 버스는 대관령 휴게소에서 쉬었다. 운전기사는 몇분까지 화장실 다녀오라며 말한뒤 버스에서 내려 휴게소로 들어갔다. 뒤를 이어 승객들도 내렸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창밖만 보고 있었다.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눈보라는 햇빛을 받아 무지개색을 내더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부모님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아 나설 것이다. 걱정이 되었다. 다시 돌아갈까? 엄동설한에 눈보라 치는 대관령 정상에서 돌아갈수나 있을까? 내가 평창행 버스에 오른뒤부터는 돌아갈수 없는 길을 나선 것이다라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지붕낮은 집들이 눈속에 파묻혀 있는 횡계를 들리고, 진부고개의 홉농장을 지나고, 사통팔달인 장평을 지나, 대화를 지나고 평창읍에 도착했다.
평창 터미널은 작고 초라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하였다. 제대로 앉을 자리 하나 없었다. 앉아 있는 아저씨들은 연신 담배를 피워 대고 있었다.
지금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를 찾았다. 남편의 집에는 전화가 없었다. 다행이 이장댁이 남편친구집이였다. 전화를 걸어 평창와 있음을 알렸다. 이장댁과 남편집은 10거리에 있었다. 내가 평창읍에 와 있으니 전달해 달라고 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기다린다고.
전화를 끊고 버스터미널내에서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집에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의 집은 읍에서도 2시간이상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더욱 걱정이 되었다. 만약 남편이 나오지 않는다면 돌아갈수도 없고, 수중에는 돈 한푼없으니 숙소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남편은 반드시 나올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터미널을 나와 읍내를 걸어 다녔다. 평창은 내가 살고 있는 양양보다훨씬 추웠다. 같은 읍인데도 시골이라는 것이 사방에서 느껴졌다. 버스와 택시도 양양보다 세련되지 못한 디자인이 었고, 건물의 지붕들도 낮았고, 이따금씩 지나가는 사람들의 복장을 봐도 촌스러웠다. 사람들도 추위탓인지, 시골이라 그런지 왜소해보이고 촌스럽게까지 보였다.
읍내의 상황을 들러보니 대체적으로 양양보다 더 시골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시골에서 남편처럼 세련되고 도시적인 남자가 있다니..놀랍기까지 했다.
평창읍내를 돌아보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왔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했다. 빈 자리에 가 앉아 문만 바라보았다. 문이 열릴 때 마다 벌떡 일어나서 살폈다. 이따금씩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버스표를 끊어서 어디론가 가고, 버스가 도착할 때 마다 물건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들어온 사람들로 인해 터미널안이 꽉 차기도 하였다. 그러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점점 조바심이 났다. 남편이 나타나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나오겠지..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리기를 2시간이 지났다. 해는 이제 터미널 앞 산을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집을 나서며 먹은 아침은 이미 소화가 다 되었고, 점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신경은 온전히 삐걱거리며 여닫히는 문쪽으로 가 있었다.
삐이익 소리를 내면 터니널 문이 열렸다. 습관적으로 벌떡일어나 몸을 문쪽으로 틀었다. 남편이 들어오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달려가려는 맘을 억지로 진정시키면 다가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나를 본 남편은 아무말이 없었다. 남편은 나의 가방을 받아 들더니 가자며 앞장 섰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 걷기 시작했다. 남편을 뒤따라 걷기도 하고, 나란히 걷기도 하며 고개를 넘었다. 한참을 걸어도 집은 나타나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보니 땀이 맺히고 다리도 아파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언제쯤이면 도착하느냐고 물었다. 금방이라며 다왔다고 했다.
걸어도 걸어도 집한채 나오지 않는 길을 걸었다. 여전히 남편은 다왔다는 말만 반복했다.
다왔다는 말을 몇 번 들은 후에야 도착한 집에서는 히미하게 불빛이 비쳐 나왔다. 인기척을 내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부모님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시누이가 있었다.
남편의 집은 한국전쟁이있을때도 전쟁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정도로 산골중에 산골이었다.
집도 건너집과 우리집 딱 두집밖에 없었다. 이런곳이 내가 적응해야만하고 적응해서 살아가야 동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