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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Jun 28. 2022

편한 백성이 아니라 삼식이가 되었다.

얼마 전 주중에 아파트를 나서자 먼저 퇴직한 선배님이 나를 보더니 " 편한 백성?" 하고 물어보셨다. 편한 백성? 어릴 때 공부도 안 하고 방에 들어앉아서 빈둥대는 나를 보고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씀을 오랜만에 듣는구나 생각하면서도, 주위 사람들이 퇴직을 하는 나를 보고 모두 편한 백성으로 생각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한 백성이라는 말을 들은 지 2주 만에 정말 편한 백성이 되었다. 편한 백성이 되고도 2주가 흘렀지만 아직은 편한 백성인지 아닌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아침이면 기계적으로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직장으로 향했던 몸은 여전히 기억하는지 눈이 저절로 떠졌다. 준비를 하려고 화장실로 향하다가, 아니지, 나 이렇게 서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하면서 후진을 하여 거실 소파에 앉으며, 티브이를 켰다.



티브이에서는 퇴직 전과 같은 프로그램이 나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직장 동료와의 이야기에 끼어들고 싶어서 가정생활의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눈여겨보기도 하였는데, 딴 나라 방송처럼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가 멍하니 있으니, 사람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텍스트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나라 방송이 맞나 확인하려고 리모컨을 위로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해보았다. 어느 채널을 봐도 우리나라 방송이다.


퇴직 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실컷 드라마도 보고, 영화도 봐야지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오늘 뭐하지?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뭐하지? 뭐하지? 도서관을 갈까? 영화를 보러 갈까? 누가 불러 주지 않을까? 갈피를 못 잡고 있다가 밥이라도 먹으면 할 일이 생기겠지 하며, 아침밥을 챙겨 먹었다.


아침을 먹은 후 정리를 하고 나니 11시 30분.. 지금 나가봐야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니 누가 만날 줄 것도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점심이나 먹고 움직여야지 하고, 점심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난 후 다시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4시다. 이 시간에 나가봐야 뭘 하겠어하면서 그냥 주저앉았다.


잠시 쉬었다가 뭐라도 해야지 하며 시계를 쳐다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루가 금방 가는 군아...


주위에서는 편한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데, 빈둥빈둥 시간을 즐기는 편한 백성이 아니라 하루 세끼를 다 집에서 챙겨 먹는 삼식이가 아닌가.


보통은 삼식이라고 하면 남편이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 밥 먹는 것을 비하해서 한말이지만, 이 말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말임을 알아챘다. 편한 백성이 아니라 삼식이, 아니 삼순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누가 편한 백성이란 말인가. 퇴직하면서 공식적인 일에서는 손을 뗐다. 하지만 집안일은 손을 뗄 수가 없다. 남편이 하든 내가 하든 해야 할 일이다. 일한다고 대충대충 하던 가사가, 들여다보니 손이 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놀면서 가사이라도 잘해야지 그것도 못하면 어떻게.. 하는  자격지심에 빠지게 되는 것도 문제다. 지금까지  못한 가사를 잘해봐.. 하는 이야기를 나 자신에게 하면서도, 주위에서  나한테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것 처럼 들려 위축이 되기도 한다.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바쁜데 편한 백성은 가당치도 않고, 당분간은 집안일 열심히 하는 삼순이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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