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고시원

길고 긴 터널 같았던

by 알이





처음 살던 고시원을 떠나면서 다시는 고시원에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복학을 하면서 다시 살 곳을 구하려니 고시원만 한 곳이 없었다. 졸업반이니 그 해에 취직이 될 걸로 내 멋대로 생각했다. 취직하면 내 로망을 실현할 집을 구하겠다고 한 번 더 미루면서 고시원을 선택했다. 그래도 첫 번째의 경험 덕분에 남녀가 분리되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목욕바구니만은 다시 들고 다니고 싶지 않아서 방 안에 샤워시설이 있는 방을 구했다. 가격은 10만 원정도 더 차이가 났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괜히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건가 부모님께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첫 번째 고시원과 전반적인 시설은 비슷했지만 안에 세면대와 샤워기가 있어서 공간이 조금 더 넓었다. 문을 열고 처음 방을 보던 그 순간이 꽤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곳이 몇 개월 지내기에는 꽤 괜찮은 시설이라고 생각했지 내 삶에서 최악의 공간이 될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뒤 언젠가부터 이상한 저림 증세 같은 것이 있었다. 좁아터진 고시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잔 건지 못 잔 건지 알 수 없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제일 먼저 그 증세가 없어졌는지 확인했다.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았지만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더 불안해졌다. 신체적으로도 이상이 없는데 왜 이러는 걸까?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가?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문 닫는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도 않고 내서도 안 되는 고시원에 들어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 생각들에 계속 끌려 다녔다.


어느 날 낮에 방으로 들어오는데 내 방의 대각선 방향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을 쓰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답답한지 가끔 문을 열어두곤 했다. 그 틈으로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자면서도 고통스럽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흘끗 보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그 여자의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무리 봐도 대학생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모든 게 불안했던 나는 그 순간이 꼭 내 미래를 본 것만 같았다. 그 사람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도 없으면서 내 멋대로 최악의 상황과 감정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또 다른 날 방에 들어가려는데 내 방에서 관리인이 나오고 있었다. 너무 황당해서 왜 들어가셨냐고 물으니 태풍예보가 있는데 창문이 열려 있어서 창문을 닫으러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일상적인 물음에 대답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비 올 때는 창문을 잘 닫고 다니라고 했다. 방에는 속옷을 말리려고 널어둔 상태였다. 고작 창문을 닫으러 방에 들어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런 일에도 무뎌진다. 처음 겪은 것이 아니니 화도 나지 않고 그냥 체념해버렸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엄두도 안 나니까.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있는데 왜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걸까.


그런 상처들이 쌓여서 그 방은 내가 쉴 곳이 아니라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준비 때문에 불안함이 가득한 상태였는데 방에 들어오면 불안한 감정들이 더 커졌다. 그 전에는 공간이 나를 편안히 해주지 못해도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그나마 잘 지낼 수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방에만 들어가지 않을 수 있으면 아무라도 만나고 싶었고 허락만 해준다면 어느 곳에나 있고 싶었다. 그래서 별로 친하지도 않은 후배나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가 연락해도 나갔고 친구들의 자취방에서 자고 심지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친구 집에까지 가서 자기도 했다. 그러니 취업 준비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 방 안에 있는 여러 날들의 나는 울고 있거나 울지조차 못하거나 죽음을 생각하거나 미치도록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내가 사는 공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깨닫지 못했다. 단지 취업에 대한 불안과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패배감으로 그런 극악의 감정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 해 가을과 겨울 사이 졸업 작품을 엉망으로 제출한 날 밤, 여행 계획은 하루치만 계획하고 밤을 새워서 짐을 샀다. 그리고 해도 뜨기 전 캄캄한 새벽 그 방을 그대로 둔 채 도망치듯 캄보디아로 떠났다.


*애 - 끝내 버리지 못한 가성비

*증 - 불안을 더 키우는 공간

*박살난 로망 - 직장인 그리고 원룸

*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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