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방과 옥탑방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가던

by 알이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이사를 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곧바로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따뜻한 나라에 있다가 추운 계절로 돌아와 그런 것 같았다. 기침이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았다. 편도가 부어서 침도 삼키기 힘들었다.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입을 막던지 이불을 뒤집어썼다. 2주 정도 그 상태로 있다 병원을 갔다. 의사는 왜 이제야 병원을 온 거냐고 안쓰럽다는 듯 쳐다봤다. 외출을 할 때마다 전신주에 붙은 전단지들을 유심히 보고 부동산 창문에 붙은 매물들도 뚫어져라 보며 걸었다. 그러다 특이한 내용의 전단지를 하나 발견했다. 오피스텔과 같은 시설이고 보증금도 필요 없는 고시원과 오피스텔의 장점을 합쳐 놓은 주거시설이라고 조악한 흑백 전단지에 쓰여 있었다. 수상하긴 했지만 뭐가 됐든 고시원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방을 보러 갔다.


주소대로 찾아가니 꽤 큰 오피스텔이라 정말 오피스텔을 싸게 내놓은 건가 살짝 기대했다. 사무실로 가니 전형적인 부동산 중개인 같은 모습의 아저씨가 있었다. 바로 방을 보여줄 생각은 안 하고 나이와 직업을 묻더니 휴학은 왜 한 거냐는 둥 방세가 부담되지 않겠냐는 둥 주절거렸다. 사기꾼이 아닐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방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사무실은 오피스텔의 상업 시설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주거시설이 있는 층으로 갈 줄 알았는데 같은 층의 구석 쪽으로 갔다. 문을 열자마자 주방시설이 있고 옆쪽에 공동 신발장이 있었다. 그리고 기역자 모양의 복도를 따라 방들이 5~6개 정도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화장실 딸린 방이었다. 원래 상업 시설인 공간을 나눠서 방처럼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불법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시설이었다.


어쨌거나 새로 지었기 때문에 침대도 책상도 옷장도 다 새 거였다. 그러니까 고시원과 같은 시설의 조금 넓은 원룸 느낌이었고 고시원보다 10만 원 비쌌다. 면적을 제외한 시설이 거의 비슷하다 보니 단지 넓은 방을 위해 10만 원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가 됐든 고시원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사했다. 역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여서 배낭을 메고 몇 번 오가며 이사했다. 이사하는 날 비가 왔고 친구와 비옷을 입고 배낭을 메고 미친 사람처럼 낄낄 웃으며 뛰어다녔다. 고시원에서 그런 식으로 나오게 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지만 기분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고시원과 마찬가지 얇은 판자로 나눠 놓은 방은 여전히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옆방 사람이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취향까지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온전한 원룸도 아닌데 매달 50만 원도 넘는 돈을 내야 하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또다시 부동산 창문을 뚫어져라 보고 다니며 보증금을 모았다. 보증금으로 마련한 돈은 이백만 원이었다. 뚫어져라 봐도 단 한 번도 보증금이 이백만 원인 매물은 본 적 없었지만 반지하 아니면 옥탑을 보여 줄 거라고 나름 예상했다. 부동산들을 돌아다니며 옥탑만 보여 달라고 하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한 번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보증금 얘기를 들으면 중개사는 이미 손을 내저으며 그 보증금으로 나온 매물은 없다고 말했다. 네 번째 부동산 문을 밀고 나오면서 감히 선택을 하려 했다니 주제가 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간 부동산에서 매물이 있다고 했을 때는 정작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묻지도 못했다. 중개사를 따라 가보니 2층 주택 위에 기다란 철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덩그러니 있는 콘크리트 박스 같은 옥탑이었다. 사실 이미 집을 보기도 전에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어보니 무려 휴대용 버너에 통돌이 세탁기에 코팅 다 벗겨진 서랍장까지 있어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약하겠다고 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그 방에서 1달밖에 살지 않아 채 풀지도 않은 짐들을 그냥 혼자 배낭에 짐을 넣어 두세 번 옮겨 이사를 끝내고 집을 정리했다. 얼마 안 되는 짐이라도 정리를 해서 제자리에 둘 수 있는 게 좋았다. 부엌도 화장실도 온전히 내 공간이니 내 물건들을 편히 둘 수 있는 것. 그저 물건이 자리에 있는 걸 보는 것이 좋아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방을 가만히 이리저리 보곤 했다. 또 내가 이사한 즈음에는 한창 날 좋은 가을이라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친구들과 고기도 구워 먹고 낮의 햇빛에 적당히 따뜻해진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옥탑의 낭만은 집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는 점이었다.


대개 모든 옥탑이 그렇듯 여름에는 무시무시하게 덥고 겨울에는 무시무시하게 추웠는데 특히 샤워를 할 때 큰 고통이 따랐다. 화장실 벽은 콘크리트도 아닌 가건물로 지어 옆에 붙어 있었는데 일단 샤워를 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한 다음 방 보일러를 최대로 틀고 이불을 꽁꽁 싸매고 몸의 온도를 올리는 동안 화장실에도 따뜻한 물을 틀어 사우나처럼 만드는 준비 절차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도 머리에 샴푸칠을 하는 동안 몸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닭살이 돋아 이가 덜덜 떨렸다. 나중에는 그냥 머리만 감고 몸은 따로 씻었다. 자려고 누우면 바닥은 찜질방보다 더 뜨거운데 찬바람이 코 위에 앉아 있어 실내에 누워 있는 게 맞는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엄마가 올 일이 생겼고 내 방에서 자던 이틀 째 날 밤에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집이 아니다. 내 힘으로 처음 구한 내 보금자리를 한마디로 부정당했지만 한편으로는 누워서 덜덜 떨고 있는 엄마와 내가 웃겨 그냥 웃으며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바로 부동산으로 가서 정말로 집 같은 집을 구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둘이서 두세 번 오르락내리락해서 이사를 마치며 옥탑 생활도, 밥 먹듯 자주 하던 이사도 그렇게 갑자기 끝나버렸다.


*애 - 내 돈으로 구한 첫 번째 공간

*증 - 생생한 추위

*박살난 로망 - 옥탑의 낭만

*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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