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들의 기억을 정리하며

이사의 역사를 마치며

by 알이




많은 이사와 공간들에 대해서 써볼까 생각하게 된 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쉴 새 없이 짐을 싸면서 보통의 계약기간인 2년을 채워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계약을 연장해서 4년이나 살고 있다. 햇빛도 잘 들고 혼자 살기에 널찍한 공간에 부엌도 화장실도 있는 그때 내가 바라던 모든 조건들이 있는 그런 집. 그런데도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이만하면 그런대로 좋은 결말일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한 건 부모님의 도움 덕분이니까.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여전히 나는 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계속 짐을 싸고 옮기며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동안 솔직히 부모님을 좀 원망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대학 생활이 끝나면 다시 본가로 돌아오기를 바라셨고 그래서 언제든 떠나도 크게 부담이 없는 곳에서 살기를 원하셨다. 그 상황 자체가 내가 언제든 여기서 밀려날 수 있는 사람처럼, 떠나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을 사람처럼 위태롭게 느끼게 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대학 때 바라던 집을 구해준 셈이 되어 버렸다. 시기는 달랐지만 바라던 대로 도움을 받은 거고 내가 선택해서 옮긴 거였으면서도 글을 쓰면서 그때를 떠올리다 보니 괜히 그런 감정들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왜 내 바람을 부모님께 제대로 말하지 못했을까도 생각했다.


타지에서 생활해야 하는 대학생의 주거지가 썩 좋은 환경일 수 없는 것은 나뿐이 아니라 내 친구들, 후배들을 보면서 이미 알고 있었고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와 오랜만에 대학시절 얘기를 하면서 그때 왜 우리는 용돈이 떨어져도 말하지 못하고 궁상을 떨었을까 생각했다. 아마 본가에서 대학생활을 했다면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게 만들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주거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서 가능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려고 했다. 금방 지나간 줄 알았던 그 시간이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꽤 컸다.


개인적인 면 외에도 가격 면에서 전혀 기숙사라고 볼 수 없는 민자 기숙사, 최소한의 사생활 보호나 안전을 보장하지 않으면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내놓는 원룸이나 고시원들이 사실상 대학생들의 주요한 거주지다. 그때는 부모님이 반대했기 때문에, 미안해서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주거지를 선택했다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집을 떠나오는 많은 대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그것뿐이라면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기숙사를 반대하는 원룸 주인들에 대한 뉴스를 보거나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더라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쓰기 전에는 그 공간의 불편함,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실망 그래서 느꼈던 불안들을 쓰고 싶었는데 막상 그런 것들을 쓰고 있으니 그럼에도 내가 잘 지낼 수 있도록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태생이 부정적인 인간이라 각 공간들마다 늘 최악의 기억들을 곱씹었던 것 같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떠올려보니 그 안에서 좋은 사람들과 보낸 기억과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조금 덜 울 수 있게 도와준 친구들의 기억들이 실망한 기억만큼이나 떠올랐다. 그러니 이 기록은 어쩌면 그때의 감정 중에 절반 정도만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만족할 수 없는 주거환경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에게 할 수만 있다면 쪽지를 적어 던져주고 싶다. 금방 떠날 곳이라고 짐을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쓰다가 떠나거나 밥상도 사지 않고 바닥에서 밥을 먹는 그런 생활이 감정을 좀 먹을 수도 있다는 것. 공간의 조건 쉽게 바꿀 순 없지만 꽃이나 푹신하고 귀여운 쿠션, 작은 무드등 하나에도 편안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불편함, 실망, 불안들을 친구들과 나누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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