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살던 날들

서로에게 가족이었던

by 알이





그토록 바라던 자취를 본가를 떠나온 지 3년 만에 하게 됐다. 걸어서 몇 분 거리이기도 했고 이사할 때마다 짐들을 버리고 또 버려서 가방에 짐을 눌러 담아 몇 번 왔다 갔다 하니 이사가 끝났다. 주택의 1층이었고 방이 두 개인 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계단 몇 개를 올라가면 있는 두 개의 철문 중에 하나가 우리 집이었다. 큰 방에 하숙집에 같이 살던 친구와 내가 살고 작은방에 다른 친구가 살게 됐다. 제법 큰 창문이 있었지만 바로 맞은편은 앞집 벽이어서 낮에도 불을 켜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온전히 그 공간을 우리만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집은 우리에게 최고의 집이었다. 냉장고도 세탁기도 비록 중고로 샀지만 우리만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다들 친구들과 같이 살면 사이가 안 좋아진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첫날 모여서 집안일을 나누고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정했다. 같은 방을 쓸 친구와 앉은뱅이책상 똑같은 것 두 개를 주문했다. 한바탕 소란을 떨면서 조립해서 창문 앞에 나란히 뒀다. 조립식 행거를 사서 벽 한쪽을 옷장으로 썼다. 우리는 또 언제 어디로 이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질보다는 가격에 초점을 맞춰서 가구들을 샀다. 하숙할 때 친구도 나도 자취를 하게 되면 방을 예쁘게 꾸미자고 자주 이야기하곤 했지만 책상과 행거를 주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방을 꾸민 것이었다. 조금 있다 밥상도 사자 해놓고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두고 먹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 집을 떠나는 날까지 끝내 사지 않았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방들 중에 제일 좋은 방이었지만 집이 있는 위치가 모텔이 많은 골목 입구라서 처음에는 사실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아마 그래서 방의 크기에 비해 가격이 좀 저렴했던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차라리 어두운 곳보다는 밝은 조명이 있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는 생각인지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가끔 친구들이 집에 올 때 낯선 사람이 집 앞까지 따라오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처음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집 근처 골목에서 뛰어 들어왔다고 했다.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있을 때 집에 있는 사람이 시간이 몇 시가 됐든 꼭 마중을 나가자고 했다. 그리고 같이 살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곤 했다. 혼자 살고 있는 지금 요새 뉴스에서 이런 사건들을 접할 때 그때 일들을 자주 떠올린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느 날은 부모님이었고 어느 날은 형제였다.


처음에는 맨날 같이 장도 보고 저녁도 먹을 줄 알았는데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기가 힘들었다. 한 명은 학교를 다니는 중이었고 한 명은 클럽에 미쳐있었고 나도 유럽 배낭여행 갈 돈을 모으느라 12시간씩 일을 하고 있으니 서로 자는 얼굴만 보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시간이 맞을 때 같이 쇼핑도 가고 장도 봤다. 서로 어울릴 것 같은 옷을 각각 하나씩 사서 같이 입기도 하고 누군가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예를 들자면 소개팅을 한다거나 남자 친구와의 기념일이라거나 환불을 하러 가야 한다거나 그럴 때, 옷을 서로 빌려주거나 화장을 해주곤 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랑 헤어졌거나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시간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고 위로해 줄 수 있었고 내 일처럼 열 받아하며 화를 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기숙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란 로망이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절대 싸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만이 생기는 일이 간혹 있었다. 설거지를 제때 하지 않는다거나 청소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늦게 들어온다거나 수건을 걸어 놓는 방식이라 거나 하는 것들 때문에. 내 모자란 마음으로 친구에게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친구는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줬고 내 불만을 들어줬다. 내가 배려해 준 것만 기억하고 배려받은 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해서 화를 냈던 것 같다. 결국 친구들과 함께 살면 사이가 틀어진다는 얘기도 이런 상황들의 반복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내 더러운 성격을 잘 받아준 친구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1년 동안 함께 살 수 있었고 지금도 그 시간들을 자주 추억한다. 그때 먹었던 맛있는 것들, 재밌었던 일들, 슬펐던 일들, 서로의 친구들을 만났던 일들.


집 계약기간이 끝나며 친구는 복학을 하러 돌아가고 나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거기서는 당연히 하루 걸러 하루 짐을 싸서 이사를 다녔다. 배낭여행을 같이 간 친구는 달팽이들이 부럽다고 했다. 그때는 나도 그 여행기간에만 달팽이가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서도 달팽이를 부러워해야 하는 삶이 계속됐다.


*애 - 우리만 쓸 수 있는 공간과 물건

*증 - 집의 위치

*박살난 로망 - 예쁘고 따뜻하게 꾸민 방

*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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