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고 또 차가웠던
어디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타지에 사는 친구가 휴학하고 서울에서 살 계획이라고 같이 사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나도 그해가 끝나면 휴학할 예정이라 같이 살기로 하고 그럴만한 공간을 찾아봤다. 둘 다 보증금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하숙집 밖에 없었다. 짐들을 리어카에 실어서 이사했다. 돈이 거의 안 드는 가성비 좋은 방법이었지만 리어카를 끄는 사람이 조금 창피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2층 주택에 2층에 있는 방 하나를 우리가 쓰는 형태였다. 첫 번째 살던 하숙과는 다르게 주인과 같은 층에 사는 거여서 부엌도 쓸 수 있고 식사도 편한 시간에 먹어도 된다고 했다. 방 안에는 책상과 옷장과 티브이도 있었다. 책상 자체는 오래되어서 상처도 많고 삐걱거렸지만 넓어진 것만으로도 자주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친구는 한 달 정도 후에 들어올 예정이어서 그동안은 나 혼자 지냈는데 자주 악몽을 꿨고 식은땀을 흘렸다. 그때는 학교생활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어쩌면 공간이 바뀐 것에 대한 어색함일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같이 살고 나서는 악몽을 꾸는 일은 없었다. 다만 친구는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본인 폰 알람 소리를 항상 잘 듣지 못했다. 아침마다 분노의 발길질로 친구를 깨웠다. 친구는 덕분에 지각을 안 하게 됐다고 고맙다며 아침마다 더 세게 걷어차 달라고 했다. 친구들끼리 같이 살면 남 된다는 말이 많아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걱정했는데 우리는 기상시간만 빼면 잘 맞는 편이었다.
친구는 카페에서 알바를 해서 판매 기한이 지난 케이크들을 자주 가지고 왔다. 우리는 밤마다 그 케이크와 하숙집 밥을 방바닥에 깔아 놓고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매일 일상적인 대화만 할 수 있어도 정서적으로 많은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전에는 둘 다 본가에 있으면 살이 찌고 다시 혼자 살면 살이 빠지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는데 타지에 나와서 처음으로 살이 쪘다. 생에서 어쩌면 제일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음에도 그런 밤들 덕분에 잘 지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이사를 가고 싶었다. 일단 주인집과 화장실을 같이 쓰니 고시원처럼 바구니를 들고 다녀야 했는데 여기서는 쓰는 시간까지 눈치를 봐야 했다. 술이라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면 조용히 씻을 자신이 없어서 그냥 바로 방으로 들어가서 잤다.
식사시간 외에도 편하게 밥을 먹어도 된다고 해 놓고서는 몇 달 지나자 우리가 막상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았는지 자꾸 부엌을 쓰는 걸 눈치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을 따로 잠그고 다니지 않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왠지 모르게 자꾸 방에 들어왔다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주인아주머니가 거실에서 통화하는 걸 들으니 연휴 기간에 친척들이 오려는 모양이었다. 친척들이 오면 우리에게 찜질방을 가게 돈을 주고 그 방을 친척들이 쓰게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헛웃음이 났다.
돈을 내고 공간을 빌릴 때 세입자는 그 돈을 준만큼의 기간 동안은 그 공간이 세입자만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집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너무 쉽게 거주 공간에 주인 또는 관리인이 들어오는 일을 겪고 들었다. 그때 이사한 지 너무 얼마 되지 않아서 올해만 넘기고 이사하자고 주저하고 있던 우리는 완전히 마음을 굳혔다. 이 문제를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때마침 그 친구도 현재 살던 집에서 이사 갈 생각이라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보증금이 있으니 조금만 보태라고 해서 조금 수월하게 이사를 결정하게 됐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이사를 가야겠다고 했더니 우리에게 자식 같아서 말해주는 거라고 하숙이 훨씬 경제적이고 안전하다고 했다. 여기서 좀 더 있으면서 보증금을 많이 모아 가면 더 좋을 거라고. 상의가 하려 한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한 건데 멋대로 착각한 것 같았다. 그냥 우리는 웃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나가겠다고 했다.
*애 -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시간
*증 - 돈을 냈지만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공간
*박살난 로망 - 부엌만 있다면 나도 요리왕
*총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