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고시원

마음도 좁아지는

by 알이




지금은 고시원이 어떤 곳인지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다루기 때문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도 대체로 어떤 곳인지는 알 것이다. 내가 고시원으로 가려했을 때는 엄마 아빠도 나도 정확히 어떤 시설인지 몰랐던 것 같다. 좁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방을 구하면서 보니 내가 생각한 좁음보다 더 좁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런데 점점 더 작은 방들을 보다 보니 처음에 좁다고 놀랐던 방이 엄청 넓어 보였다. 방은 싱글보다 약간 더 작은 침대와 그 만한 바닥이 전부다. 창문이 있는 방과 없는 방은 5만 원 정도 차이가 났다. 그래도 창문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창문이 있는 방으로 골랐다.


창문 앞에 책상이 있고 그 위에 티비 그 밑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화장실과 부엌은 복도를 조금 걸어가면 있었다. 또다시 씻으러 가려면 바구니를 들고 가야 했다. 그래도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부엌도 쓸 수 있는데 하숙보다 10만 원이나 저렴하니 더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친구가 전에 내가 쓰던 방을 쓰기로 해서 가구라고 할 것도 없는 서랍이나 책상, 티비는 그대로 두고 옷가지와 이불만 옮겼다. 그때는 짐이 적어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짐이 적다는 건 그만큼 그 공간을 언제든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증거였던 것 같다.


고시원의 좋은 점은 라면, 밥, 김치를 공짜로 준다는 것과 따로 관리비를 내지 않으니 냉난방, 물, 전기를 펑펑 써도 된다는 것, 그리고 물건이 한 손 거리에 다 있고 청소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 이 정도가 떠오른다. 그때 살았던 고시원은 라면을 종류별로 구비해두고 있어서 온갖 종류의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보증금도 없어도 되고 기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가구도 갖춰져 있으니까 사는 공간에 어떤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가성비는 솔직히 제일 좋은 편인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주어진 것에만 만족할 수 없어서 더 좋은 환경을 바라게 되면 단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제일 큰 단점은 역시 방음이다. 언제나 숨죽여 있어야 했다. 재밌는 쇼프로를 봐도 크게 웃을 수도 슬픈 드라마를 봐도 조용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어느 새벽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잠에서 얼핏 깼다. 순간 귀신이라도 나타난 줄 알고 놀라 불을 켰다. 알고 보니 옆방 여자가 우는 소리였다. 솔직히 맨 처음 든 감정은 맥이 탁 풀리면서 짜증이었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누군가 우는 소리에 짠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 소리를 좀 더 들어보니 나름 조용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도 그 여자를 위로를 해 줄 수 없었다.


또 하나의 불편함은 세탁기. 세탁기가 비어있는 시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세탁기 하나를 사용하는 인원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새벽시간에 빨래를 했다. 어느 날은 빨래가 너무 많이 밀려 있어서 술을 마시고도 들어와서 세탁기를 확인하고 빨래를 돌렸다. 세탁이 다 되면 가지고 오려고 방바닥에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든 것 같았다. 일어나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고 세탁실에 가보니 그 사이에도 누가 빨래를 하려고 다 된 내 빨래를 밖에 꺼내 둔 상태였다. 맨 정신일 때는 그렇게 서글프지 않았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술 마시고 빨래를 돌리는 내 꼴이 불쌍했다.


그리고 보안. 지금은 여러 사건들도 있고 해서 아마 외부인 통제를 잘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은 딱히 그런 것도 없었고 남자 여자 구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새벽에 화장실을 가야 하면 왠지 모를 서늘함에 문에다 귀를 대고 바깥소리를 들어 보고 나가곤 했다. 부엌도 있으면 다양한 요리를 해먹을 줄 알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공간이다 보니 거의 라면만 끓여먹었다. 사소했지만 그런 것들이 계속되니 큰 불편함으로 느껴졌다. 1년 반 동안 사는 장소를 옮기느라 짐을 싸는 것에 지쳤고 집에 한동안 있다 돌아와서 느끼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겨울방학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많은 이사 중에 제일 긴 시간을 보낸 곳이 이 고시원이었고 그렇게 고시원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스스로가 왠지 처량했고 또 예민해져 갔다.


그러는 사이 3학년이 되었고 설계수업은 일주일에 2번이었는데 그건 일주일에 2번씩 밤을 새야 한다는 의미였다. 밤을 새워서 과제를 만들고 교수에게 까이고 돌아와서 라면 2개에 밥까지 말아먹고 못 잔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또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머리를 굴리면서 좁은 책상에 앉아 우드락을 조각조각 냈다. 좁디좁은 바닥에 우드락이 조금씩 쌓였다. 치우고 싶지가 않아서 그대로 뒀다. 바닥이 좁아서 우드락은 금방 쌓였다. 2달 정도 그렇게 수업을 들어도 나만 여전히 제자리였다.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어서 나는 무려 6학점짜리 전공 수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바닥에 쌓인 우드락들을 다 치웠다. 그때 내가 고시원에 살지 않았다면 조금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이제와 비겁한 핑계를 대본다. 조그만 골방 같은 공간에서 넓은 공간을 설계하려니 머리가 돌아갈 수 없었을 것 같다고. 그즈음 전공을 포기했고 고시원에도 질려버렸다.


*애 - 있을 건 다 있는 엄청난 가성비

*증 - 우는 소리하나 막아줄 수 없는 얇은 벽

*박살난 로망 - 부엌만 있다면 나도 요리왕

*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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