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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언 Jun 19. 2021

이제 너 자신 좀 그만 속이고

지금 당장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살자

나는 내가 참 어렵다. 다른 건 몰라도 되니까 나에 대해서만이라도 잘 알고 싶은데, 고민하고 또 고민해봐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또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해야겠으니 어떻게든 대답해줄 수는 있겠지만 정말 모르겠다. 나는 내가 연애를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글을 쓰고 싶은지 안 쓰고 싶은지, 대체 아는 게 뭔지, 아는 게 있기는 한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대답조차 진실인지 아닌지 솔직히 나도 잘 몰라서 괜히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거짓말하는 것을 안 좋아하니 이런 질문은 애초에 하지 마시라.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소망은 그저 떳떳하게 사는 것이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어쩔  없고, 나중 일도 미리 생각해봤자  수가 없으니, 최소한 지금 당장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살자. 그래, 다른  몰라도 떳떳하게는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말은 이런 뜻이었다. 실제로 무엇을 하든 간에 내가 부끄러워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어도 내가 보기에 어리석지 않으면 그걸로  것이었고,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내가 나에게 박수를 쳐줄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완전히 주관적인 만족에 따라 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 하나 만족시키기가 그렇게 어렵더라. 떳떳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하루도 떳떳하게 살아오지 못한 것 같다. 별 게 다 부끄럽다. 밥을 먹으면 너무 많이 먹어서 부끄럽고, 운동을 하면 더 할 수 있는데 안 해서 부끄럽고, 영화를 보면 책은 안 읽고 영화만 본다고 부끄럽고, 책을 읽으면 글은 안 쓰고 책만 읽는다고 부끄럽고, 글을 쓰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랑 비교가 돼서 부끄럽고, 글을 잘 쓰지도 않으면서 작가가 되겠다고 말하고 다닌 게 부끄럽고, 애가 참, 나이 먹을 만큼 먹어놓고 부끄러울 것도 참 많다. 자신감을 좀 가져야 될 텐데.


그나마 떳떳하게 살았던 때를 떠올려보자면 공군 기본군사훈련단에서의 훈련병 시절이었다. 기상시간 전에 일어나서 미리 화장실 다녀오고, 훈련 열심히 받고, 군가 열심히 부르고, 혼자 있을 때는 몰래 품 속에 넣어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우고, 자기 전에는 동기들과 경쟁적으로 팔굽혀펴기를 연습했다. 내일을 맞는 것은 매일 밤 두려웠지만 지나온 오늘에 후회는 없었다. 잠은 항상 달콤했다. 물론 그러다가 발목을 삐어서 구보 열외, 훈련 열외, 대망의 유격 훈련까지 전부 빠지게 됐을 땐 부끄러워서 눈물이 막 흘렀지만, 아무튼 그때는 내가 보낸 하루가 최선이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 어쩌면 내가 부끄러운 날들만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보다. 더 떠올려보자면 검정고시 공부한답시고 문제집 펴놓고 앉아 세계문학전집을 읽을 때도 떳떳했고, 문학에 미쳐서 하루에 소설 한 권씩 읽어제끼고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 시집을 읽던 시절에도 떳떳했고, 좋아하던 여자를 기쁘게 해보겠다고 손편지를 쓰던 시절에도 떳떳했고, A4용지로 한 페이지 반 밖에 안 되는 분량의 에세이를 내 나름대로 완벽하게 다듬어보겠다고 한 달 동안 씨름하던 시절에도 떳떳했다. 아, 그리고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조금 떳떳해지려고 하는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나 떳떳했던 기억을 많이 떠올리다니. 이 정도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떳떳한 사람이 될 잠재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문제인척하고 있지만, 굉장히 단순한 해결책이 있다. 내가 떳떳해지기 위해서는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연애를 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연애는 못해도, 그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면 될 것이다. 연애는 못해도, 이제는 내가 어째서 떳떳하지 못한 지 고민할 게 아니라 내가 어째서 이리도 게으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른가, 왜 이래 놓고 또 며칠 못 가는가, 왜 이렇게 글을 대충 쓰는가…. 아아 부끄러워라!


, ,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 어쩔  없고, 나중 일도 미리 생각해봤자  수가 없다. 내일 내가 책을 읽을지  읽을지, 글을 쓸지  쓸지는 내일의 내가 정할 수밖에 없고, 연애는 내일의 내가 정한다고 해서 어떻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미뤄두는 수밖에. 다시 다짐해보자. 지금 당장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살자.  읽는   대단하냐고,  쓰는   대단하냐고  수는 있지만, 나는 이거 좋아하니까 어떡해, 좋아하면 해야지. 이래 놓고  하면  " 읽어야 되는데", " 써야 되는데", 징징대면서  돌아와서 비슷한   건데, 이제  자신  그만 속이고 그냥  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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