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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언 Jul 11. 2021

그러면 언젠가, 꿈에서

청춘의 완성을 기다리며

어린 시절 내 놀이터는 내 방 베란다였다. 서늘한 그곳에 이부자리를 펴놓고 나는 블록을 쌓으며 놀았다. 소리가 들어오지도 빠져나가지도 않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가끔 어머니께서 사과를 깎아서 가져다주셨다. 나는 노는 데 집중하느라 그 사과를 먹는 데 한참이 걸렸다.


때로 베란다에서 자기도 했다. 거기서 자려면 두꺼운 이불 두 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야 했다. 거기서 잘 때면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어 두근거렸다. 자기 전에는 항상 어머니께서 찾아오셔서 추운데 괜찮겠냐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언제나 괜찮았다. 그곳은 내 첫 번째 낙원이었다.


그러나 베란다에서 평생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고,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혼자만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소리치고, 뽐내고, 다퉜다. 다들 어째서 저토록 괴로워하는 걸까. 학교에서, 나는 우는 아기들에 둘러싸인 것처럼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신 음악으로 숨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눈앞에 있는 게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멜로디와 가사가 정했다. 음악 속에서, 나는 육감의 교감으로 오감 따위는 초월해버린 기적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몽환의 숲", 키네틱 플로우) 나는 음악으로 세상을 지웠다.


심지어 나중엔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다녔다. 나는 라디오로 트로트를 틀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민폐인지도 모르고, 나는 로맨스 영화 OST 같은 걸 틀어놓고 마을을 돌아다녔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에 빠지는 마법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십대의 나는 술처럼 음악을 마셨다. 나는 세상이 못마땅했다. 좀 더 아름다웠으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관점을 바꿔야 했다. 나는 음악으로 현실을 지우고 다시 썼다. 그것이 내 두 번째 낙원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마음이 어수선해서 음악을 못 듣는다. 장르가 뭐든 잔소리처럼 거슬려서 들을 수가 없다. 요즘 내가 겨우 듣는 것은 빗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 같은 것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 음악감상이 취미라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겠다.


이젠 바깥소리보다 내 안에서 나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넘칠 정도로 많은데 마음의 소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지폐계수기가 뱉어낸 지폐처럼 내 청춘이 바닥에 촤르르 쌓여가고, 그것들이 값싼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청춘을 어떻게 하고 싶냐면, 잘 살아보고 싶기는 한데 잘 산다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자기도 모르는 정답을 정해놓고 그게 아니라면 다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버리니, 우리 한국 청년들의 청춘은 참 슬프다. 죄 없는 내 청춘이 죄책감에 울고, 나는 그 울음소리 때문에 음악도 못 듣는다.


오래 고민했으니,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청춘은 첫 항해니까, 탑승감이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한숨을 토하는 것도 멀미가 나서다. 청춘의 고민이 끝나는 것은 어쩌면 고민이 해결될 때가 아니라 청춘이 끝날 때인지도 모른다. 열 살쯤 나이를 더 먹고 그만큼 더 무뎌지면, 길고 길었던 내 청춘 타령이 끝날지도 모르겠다.


첫 항해가 끝날 때까지는 별 수 없다. 청춘이 끝날 때까지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뜸 갑판으로 뛰쳐나와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아무 소용없는 일이지만, 수첩에 적어두고 수십 번 실패해서 몇 편의 시를 외웠다. 베란다와 음악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시다. 나는 시를 모아 또다시 낙원을 세우기로 했다. 세 번째 낙원이다.


그래서, 시인이 되려고? 아니, 그저 시를 읊어 세상을 잊고 싶다. 나는 계속 꿈을 꿀 것이다. 이것이 일종의 도망이라면 나는 조금만 더 도망쳐야겠다.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끊임없이 취하라!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그대 좋을대로."(「취하라」, 보들레르)


그러면 언젠가,
나는 꿈에서 깨어날 것이고,
내 청춘은 완성되리라.



2021년 여름, 한 달 간 류시화 시인의 「나비」, 김남조 시인의 「편지」, 최승자 시인의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외웠다. 다음 외울 시를 고민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데 3주가 걸렸는데, 마지막 날 모두 지우고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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