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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May 17. 2024

<맡겨진 소녀> - foster

Claire Keegan

클레어 키건이 2009년에 쓴 소설,『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0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출간 이래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아일랜드에서는 모두가 읽는 소설로 자리 잡았고, 2022년 콤베어리드 감독에 의해 영화「말없는 소녀」로 제작되었다.

이 소설은 한 소녀가 엄마의 먼 친척 부부와 함께 보내는 여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요일 아침, 미사를 마친 후 아빠는 소녀 엄마의 고향향해 차를 달린다. 소녀는 운전석 뒷좌석에 누워 자신을 맡아줄 친척 부부를 상상한다. 아빠와 소녀가 도착하고 아빠와 아저씨가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소녀는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한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웃으며 소녀의 얼굴에 묻은 무언가를 닦아주는 아주머니를 보며 '엄마의 엄지보다 부드러운 손가락이 뭔지 모를 것을 말끔하게 닦아내는 느낌이 든다.'


소녀가 떠나기 전날 밤 소녀는 우연히 아빠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동안 맡아달라고 하지? 원하는 만큼 데리고 있으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면 돼? 아빠가 말했다. 당신하고 싶은 대로 말해. 늘 그러잖아."


소녀는 아빠가 자신을 이곳에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자신이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아빠와 아저씨 그리고 아주머니와 소녀는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한다. 정적이 흐르던 식사시간이 지나자 아빠는 바쁜 일이 있다는 듯 서둘러 일어난다. 소녀는 아빠와 아저씨의 대화에서 아빠가 하는 사소한 거짓말에 대해 생각한다. '아빠는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빠는 진짜 그러면 좋겠다 싶은 거짓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아빠는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말썽을 피우지 말라는 말을 남긴 채 떠난다.


아빠가 떠나고 아주머니는 따뜻한 욕실에서 소녀를 씻긴다. 소녀는 생각한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히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 목욕을 마치고 아주머니는 서랍장에서 예전에 유행했던 바지와 셔츠를 입혀준다. 아주머니는 소녀에게 우물에 가자고 한다. 소녀는 아주머니에게 우물에 가는 것이 비밀인지 묻는다. 아주머니는 이 집에는 비밀이란 없다고 말한다. 이 말에 소녀는 아주머니 역시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다고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 언제나처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녀는 아주머니와 우물에 갔고, 돌아오는 길에 슬프기도 행복하기도 한 감정을 느낀다.


소녀는 새로운 곳에서 맞는 첫 아침에 시트를 적시는 실수를 한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모르는 척 시트에 습기가 찼다며 함께 세탁하고 햇빛에 말린다. 소녀는 종일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비슷한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어느 날 오후,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소녀의 옷을 사입힐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 말에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고 욕실에 들어가 눈물을 흘린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소녀의 옷을 사기 위해 시내에 간다.


아저씨는 소녀에게 쵸코아이스크림을 사라며 돈을 주고 아주머니는 속옷과 외출복 그리고 신발을 사준다. 소녀와 아주머니는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갈 때 즈음 소녀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줄 간식거리를 사서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들어서는데 어떤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 그 여자는 아저씨에게 무덤 파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고 세 사람은 그 여자를 따라 장례식을 간다. 길을 따라 걸으며 소녀는 생각한다. '공기에서 뭔가 더 어두운 것, 갑자기 들이닥쳐서 전부 바꿔놓을 무언가의 맛이 난다.' 소녀는 장례식장에서 아저씨의 무릎에 앉아 장례식장을 살펴보며 지루함을 느낀다. 아주머니 지인 밀드러드는 소녀가 지루해 보이니 자기 집에 데려가 자기 아이들이랑 놀게 하겠다고 말한다. 소녀는 밀드러드 아주머니를 따라나선다. 그 아주머니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자마자 소녀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소녀는 모든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만 마지막 질문에서 막힌다. "그 애 옷이요?" 소녀는 밀드러드 아주머니의 말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아들이 있었고 우연한 사고에 의해 아들을 잃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소녀를 데리러 오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소녀에게 밀드러드 아주머니가 소녀에게 무엇을 물어봤는지 물어본다. 소녀는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저씨는 소녀의 손을 잡고 바닷가에 간다. 소녀는 자신의 아빠가 한 번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집에서의 삶과 여기에서의 삶의 차이를 생각하다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아저씨와 소녀는 바닷가에서 오늘밤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저씨가 소녀에게 말한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아저씨는 소녀와 사구를 걷다 잠시 멈춰 서서 바다를 돌아본다. 소녀는 생각한다.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주머니는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소녀 엄마의 편지를 받는다. 소녀는 생각한다.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차라리 빨리 가고 싶다. 얼른 끝내고 싶다.'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바쁜 아주머니를 대신해 물을 뜨러 우물에 갔다가 물에 빠져서 감기에 걸린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날이 며칠 늦춰진다. 소녀가 집으로 돌아오자 집에는 여전히 피로에 지친 엄마와 더 말이 없어진 언니들, 남동생 그리고 새로운 식구인 막냇동생이 있다. 아빠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말대신 소녀가 감기 걸린 것에 대해 잘못을 탓한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소녀의 엄마에게 챙겨 온 것들을 넘겨주고 "아주 좋은 딸을 뒀어."라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떠난다.


소녀가 아저씨 부부와 함께 살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저씨는 늘 시간을 재며 소녀에게 우체통까지 뛰어갔다 오도록 했다. 그래서 소녀에게 달리기는 제일 잘하는 일이 되었다. 소녀는 아저씨의 차가 떠나는 소리를 듣자 곧장 출발해 자신의 집 진입로를 향해 달려간다. 소녀는 생각한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 …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고, 내 발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아저씨는 달려오는 소녀를 보자 꼼짝도 하지 않고, 소녀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 품에 안긴다. 소녀는 눈을 감고 아저씨를 느낀다. 소녀가 마침내 눈을 뜨자 아저씨 어깨너머에 굳세게 다가오는 아빠가 보인다. 소녀는 심오한 무언가에 이끌려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으며 말한다.

"아빠." 소녀는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우리는 스스로 이성이 이끄는 대로 지극히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서서히 쌓인 감각 기억이 이성의 뒤편에서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급박한 순간에는 감각적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수습하기도 한다. 소녀가 소설의 마지막에 심오한 무언가에 이끌려 차마 할 수밖에 없었던 두 번의 "아빠"라는 말에 담긴 소녀의 켜켜이 쌓인 감각기억이 내 심장마저 가슴속이 아니라 손에 쥐어주는 듯하다. 이성의 논리가 아닌 감각의 논리에 이끌려 새로운 선택을 한다는 것과 할 수 있는 용기에 가슴 벅찬 희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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