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네프의 다리를 건너 루브르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곁엔 아주 멋진 공원이 있다. 튈르리 공원이라 불리는 그곳은 온갖 사람들의 엉덩이를 붙잡아둔다. 사람들은 연못을 끼고 앉아 사색하고, 도시락을 까먹고, 대화한다. 쭉쭉 뻗은 길이 깊은 원근감을 주어 안 그래도 넓은 공간을 실제보다 더욱 넓게 보이게 한다. 여름에만 기구를 들여놓는다는 놀이공원도 있다. 요술 램프 같은 관람차와, 범퍼카, 공중에 높이 떴다가 180도, 360도 돌아가는 놀이기구들, 스낵바들, 게임 센터, 레스토랑들.
여름에만 기구가 들어온다는 튈르리 공원의 놀이동산. 즐거운 파리지앵들.
튈르리 공원에서 우리는 파리 도시를 배경으로 제삼자가 찍어준 유일한 사진을 남겼다. 나의 여자 친구는 남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굉장히 싫어하였다. 그녀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까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이 있었고 특히 남이 든 카메라 앞에선 병세가 심해졌다. 언제나 자신의 표정과 자세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진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못 되어 우리에겐 함께 찍힌 사진이 몇 없다.
튈르리 공원에 있는 연못가엔 철제 의자들과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멋들어진 중년 남성이 우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더 좋은 배경을 택하기 위해 연못을 등지는 자리로 이동하도록 요구하기까지 했다. 잠시 그가 우리의 카메라를 훔쳐 달아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사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카메라를 주었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괜찮아. 우리가 하도 잘 어울려서 찍어준다잖아." 내 팔을 그녀의 어깨에 둘렀고, 희미한 어색함을 뗬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그 모습이 순간 포착되어 영원히 이 세상에 남았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튈르리 공원
사람들이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연유를 난 안다. 그건 사진이 없으면 그들이 지난 여행에 대해 깡그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20년 전 나의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함께 유럽 전역을 여행하였으나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녀가 콜로세움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보여주면 그때를 조금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모자를 사줘서 그걸 쓰고 찍었다고 자랑한다. 그가 다른 할머니들의 짐을 들어줬다고 화를 낸다. 사진은 영원하지만 사람은 영원하지 않다. 기억도 일시적이고 파편적일 뿐이다. 이미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이제 그중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집는다.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면 튈르리 공원이란 곳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기억 못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색한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석양이 지는 파리는 개선문 뒤쪽으로 해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위대한 나폴레옹이 바랐던 세상에서 가장 큰 문. 문턱은 넘어서면 어지럽다. 콩코드 광장과 샹젤리제가 이어지는 파리의 거리. 마로니에 가로수가 늘어선 널찍한 인도를 지나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한 천 명이 넘는 인간의 목을 자른 기요틴이 서 있던 광장이 보인다.
밤의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레스토랑, 극장, 명품 가게, 디저트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득한 샹젤리제 거리는 마치 파리의 것이기보다는 세계의 것인 것만 같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파리가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의 기준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부러운 친구를 은근히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을 감출 수가 없다.
개선문으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파리의 연인들
샹젤리제 거리에서 아주 유명하다는 마카롱 가게에 들러 마카롱을 몇 개 사서 나왔다. 동그란 것이 굉장히 귀여웠지만 아주 이상한 맛이 났다. 거리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니 어디 영등포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인생의 한 통과의례를 거친 것만 같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체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생각하며 잠 못 들던 시절, 단지 그 기분 하나만으로 여행을 다닌 것 같기도 하다. 타임스 스퀘어를 갔을 때도, 골든 게이트 브릿지를 건널 때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를 때도, 삿포로의 뒤덮인 눈 속에서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볼 때도 다 마찬가지다. 그곳들이 내게 어떤 인상을 주었더라도 큰 상관이 있었나? 그저 난 이제부터 타임스 스퀘어를 목도하며 그곳에 서 있었던 사람이 되고, 샹젤리제 거리를 내 두 발로 걸었던 사람이 된다.
좋아, 이 세상에서 내 눈으로 봐야만 할 곳이 하나 줄었다. 하나하나 늘어가는 여권 속지의 도장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행은 하나의 보드 게임이고, 나는 돈을 모으고 주사위를 던져 한 군데씩 정복해나간다. 여행은 세계 정복이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꽃내음이 났다. 내게 좋은 아이디어가 났다.
"음, 샹젤리제 거리에서 무언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말이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각자 10유로 지폐를 가지고 가. 그리고 15분 후에 서로에게 줄 선물을 하나 사서 여기서 다시 만나는 거야."
"여기? 여기가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바로 여기지. 마카롱 가게 앞."
"15분은 너무 짧지 않을까? 그리고 길을 잃거나 못 만나면 어떡해?"
"그럼 최대 20분으로 하자. 만약 길을 잃으면 경찰서에서 울고 있어. 내가 찾으러 갈게."
"좋아. 10유로짜리야."
"아니, 10유로짜리가 아니어도 돼. 10유로 안쪽이어야만 하지만, 1유로짜리라도 상관없어. 다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상대가 [샹젤리제 거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행복하게 떠올릴 만한 물건이면 좋을 거야."
"어렵다."
"어려워."
"좋아!"
나는 거리의 이쪽으로 향했고 그녀는 저쪽으로 갔다.
18분 후 나는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마카롱 가게 주위를 서성였다. 조금 기다리니 그녀가 나타났다. 이미 들켰지만 나는 얼른 꽃송이를 뒤로 숨겼다. 그녀가 다가오자 내 가슴은 몹시 두근거렸다. 마치 꽃 한 송이를 들고 그녀의 강의실을 박차고 들어가 사랑 고백을 하는 새내기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그녀에게 장미꽃을 내밀었다. 그래, 아아, 우린 수줍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장미꽃이 아닌데." 그녀가 일부러 말했다.
"앞으로는 가장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날 밤 그녀는 꽃이 주는 분위기에 취해 사과주 한 잔에 취한 백작 따님처럼 샹젤리제 거리를 서성였다. 여자로서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저녁 차를 세우고 꽃집에 들러 복권을 샀던 날이 생각난다. 그때는 여행 중이 아니었다. 나는 로또 복권을 파는 이상한 꽃집을 발견했고 차를 세웠다. 거기서 복권을 사고 나왔다. 나는 꽃집에 들러 복권을 샀다. 꽃집에서 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녀는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거기서 복권이 아닌 꽃을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날 밤은 얼마나 황홀했을까. 나는 매일 7만 원 정도를 벌었는데, 그것은 저녁마다 저녁거리를 사고 그녀에게 줄 꽃을 사기에 충분한 금액이었다. 시간은 흘러갔다.
등이 켜진 개선문에 다다라 잠시 벤치에 앉았다. 밤 기운이 편안해 여자 친구의 다리를 베고 한번 누워보았다. 우리는 파리의 가스등 아래서 대화를 나눴다.
"호주 생활은 어땠던 것 같아?"
그녀에게 물었다.
"그냥, 알잖아."
"어떻게 알겠어. 본인이 아니면 알 수가 없지. 함께 있는 이 시간도 각자에겐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데."
"그냥, 많이 외로웠어. 좋은 일도 많았고 나쁜 일도 많았고."
그녀는 항상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길 좋아했다. 그녀의 넓은 이해심과 수용력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나면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힘들었던 신상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극소수의 여자들 중 여왕이다.
"6년 전 호주 애들레이드의 글레네르 비치에서 내게 먼저 말을 걸었던 한 할머니가 있었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나와 함께 얘길 나누며 선착장을 걸어주셨어. 6년이 지난 오늘 문득 그 할머니가 이미 돌아가셨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 그냥 내 느낌이야." 그러자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좋은 시간도 잠시, 이내 성가신 파리 같은 이탈리아 놈들이 붙어 돌체 앤 가바나라며 어디서 노끈 같은 것을 여자 친구의 손목에 걸어주고는 돈을 달라고 한다. 당장 그 손목에서 손을 떼라, 파리들아.
파리의 지하철이 더럽다는 편견은 잘못되었다. 오줌 냄새도 소변기보다는 심하게 나지 않는다.
114년이나 되었다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굽이치는 열차길 위에서 지하철이 양옆으로 왔다 갔다 춤을 춘다. 잠시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댄다. 113년 전에 누군가가 거기에 머리를 기댔다. 일 년 전에도, 어제도 누군가는 거기에 머리를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