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이면에 숨겨진 안타까운 현실
작년의 키워드였던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서 가장 우려되었던 부분은 개인의 정체성이 보다 다양해지고 그 정체성이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있어 그 개인에 대한 정체성의 기반이 약해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올해 ‘레이블링 게임’은 이에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본인을 어떠한 방법으로 정의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트렌드라고 ‘트렌드 코리아 2021’은 언급한다. 요즘 MZ세대의 사람들 중 대부분이 본인의 개성과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에서 디지털 공간의 자기 진단 테스트를 찾아다닌다는 설명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설명이다.
그러나 살짝 다른 시각에서 이 ‘레이블링 게임’의 트렌드가 왜 나타났는지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레이블링 게임’ 트렌드는 MZ세대의 ‘관계 형성에 대한 니즈’가 표출된 현상이다. 흔히 알고 있는 MBTI, 꽃 MBTI 등의 놀이를 진짜 ‘나’를 찾기 위해 한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이러한 놀이에 빠지는 것은 그 놀이를 통해 친구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싶은 욕구와 더 유관하다. 우리가 가장 익숙한 레이블링 게임인 ‘MBTI 검사’의 예를 들면, 한창 이 검사가 유행할 때,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이 검사의 결과를 SNS에 올려
공유하고 서로의 MBTI 유형이 각자에게 어울리는지 이야기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서로의 ‘MBTI 궁합’을 확인하는 것이 유행하며 MBTI의 결과 자체보다는 타인과의 관계가 어떠한 지에 대해 더 주목하고 있었다. 이후 ‘꽃 MBTI’와 같이 인기를 끌었던 레이블링 게임 역시 검사 결과에 환상의 궁합과 파국인 궁합의 꽃을 같이 공개하며 본인과 타인의 검사를 통해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한 비대면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언택트 기술의 발달로 사회적인 결속력은 점점 약해지고 어릴 때부터 디지털 기기가 익숙한 현세대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코로나 사태로 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마음 편히 놀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디지털 세상 속의 놀이를 통해서라도 친구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SNS 속의 본인을 유지하려는 MZ 세대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레이블링 게임’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는 현재 온라인 패션 플랫폼, 금융권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홍보 및 추천 서비스를 해주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우선 기업의 서비스와 관련된 ‘레이블링 게임’을 만들고 그것이 바이럴이 되면 SNS상에서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기에 비교적 적은 인풋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2021년 올해 역시 이러한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요즘 MZ세대의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결국 더 새롭고 재밌는 콘텐츠가 나오면 이러한 유행도 점점 약해질 것이다. 또한 이미 ‘레이블링 게임’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자가 복제를 한 듯한 비슷한 콘텐츠가 쌓여가고 있고, 자연스럽게 그 콘텐츠의 참신함과 신뢰성 역시 떨어질 것이다. 요즘 등장하는 레이블링 게임들을 봐도, 더 이상 의미 있는 ‘레이블링’을 하기 어려워 재미만을 추구하는 일회성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MZ세대들의 흥미를 더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나 그들의 내재된 관계 형성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콘텐츠가 각광을 받을 것이라 예상된다.
사실 ‘레이블링 게임’은 트렌드 코리아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트렌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게 했던 주제이다. 항상 그저 이러한 트렌드가 있구나, 이런 트렌드가 올해는 부상할 것이구나 정도로 비판적인 자세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였다. 그러나 ‘레이블링 게임’에 대해 읽고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겼는지 되짚어보니 본인(글쓴이)을 포함한 현재 젊은 세대의 사람들이 겪는 불안감에 보다 더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욱 심해진 취업난, 줄어드는 인간관계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즐길 거리의 부족 등 어느 세대나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현재 20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이다. 따라서 본인은 ‘레이블링 게임’과 같은 트렌드를 그저 받아들이기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모색해 보고 더 올바른 방향의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트렌드 코리아 2021’이 저자는 코로나 사태로 바뀌는 것은 트렌드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라고 했지만 그 트렌드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 앞으로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MBTI와 같은 성격유형검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MBTI가 특정한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된 과학적인 방법으로 많은 기관에서 사용할 정도로 신뢰성이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을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등의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 단순화된 방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마치 무지개를 보고 세상에는 7가지의 색 밖에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실 빨간색과 주황색 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색이 존재하듯이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과 성격의 사람이 존재한다. 현재 본인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본인을 원색으로 정의하지 말고, 세상의 수많은 색 중 본인만의 색깔을 찾기를 바라며, 그것을 돕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방향에 맞는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이 더 필요한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