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까마궤이
오전에 슬슬 걸어 산 후안 광장에 갔다. 까마궤이, 아니 쿠바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광장. 광장을 어슬렁거리는데 패션으로 말하는(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으며, 밥 말리 닮은 안토니오가 말을 걸어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들이 지나가고 한 소년이 다가왔다. 그런데 이 녀석, 뭔가 돈을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무척이나 수줍고도 소심하게 내 앞에서 쭈뼛거린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요구는 묵살하고서 조금 가라앉은 햇빛 알레르기 증상이 악화될까 염려하며 천천히 걸어 비아술 버스터미널에 갔다. 다음 날 산타 루시아에 갈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서였다.
숙소에 돌아와 쉬고 있자니 내내 녀석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그런 녀석을 가볍게 뿌리치고 온 내가 참 모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2시경, 내 짐을 뒤적였다. 뭔가 녀석에게 줄 만한 것이 있을까? 연필이라도 가져올걸 그랬다. 줄 게 없어서 시리얼바 두 개, 스프레이 모기약, 그리고 비상용으로 챙겨온 케첩과 딸기잼을 챙겼다. 광장에 녀석이 없으면 어떡하지?
다시 산 후안 광장에 가니 멀리 녀석이 보인다. 잠시 후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 녀석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
“저… 저 꼬마에게 사진을 보내주고 싶은데, 주소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
남자는 말이 없이 그저 웃고만 있었다. 알고 보니 남자는 녀석의 아빠가 아닌, 형이었다.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녀석의 이름은 루웰. 루웰에게 시리얼바 두 개를 건네주니 조용히 ‘감사해요’라고 말하고 착한 형에게 하나를 건넨다.
이번에는 주소를 알려달라며 루웰에게 직접 펜을 쥐어주었다. 내 수첩에 뭔가를 끄적인다. 그런데 그건 알파벳이 아닌, 녀석만 알고 있는 문자였다. 아니, 녀석도 모르는 낙서였다. 녀석은 글씨를 쓸 줄 몰랐던 것이다. 갑자기 무언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까마궤이를 떠나던 날, 다시 루웰의 집에 들렀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오후에 다시 가니 루웰이 집앞에 나와 자전거 위에 올라가 놀고 있었다. 아마도 아빠의 짐 싣는 자전거인 듯한데 루웰은 그 자전거를 운전하고 싶은가 보다. 루웰에게 시리얼바 두 개를 주고, 망설이다가 사발면(은 루웰에게 너무 자극적인 음식이었다) 두 개를 주었다. 사발면을 주니 갑자기 그걸 들고 집으로 들어간다. 곧이어 녀석의 아빠가 나와서 고맙다고 한다. 착한 녀석이구나, 뭘 주면 꼭 형과 나누어 먹으려 하고, 자기 혼자 먹으려 하지 않는다. 아빠가 나와서 루웰에게,
“이분께 감사하다고 했니?”
하고 물으며 루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