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은 숙소 등급의 척도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숙소를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위치를, 어떤 사람은 조식을, 어떤 사람은 청결도를, 또 어떤 사람은 (특히 일본에서는) 방의 크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중 숙소의 '위치'와 '청결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요소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가고 싶은 곳들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시설은 좀 낡았어도 청결한 숙소를 좋아한다. 물론 이러한 여러 요소들을 한꺼번에 간편하게 충족시키는 숙소를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값비싼 5성급 호텔에 묵는 것이다. 그러한 곳은 대체로 깨끗한 것은 기본이고, 위치도 좋고 조식도 훌륭하며 번듯한 건물에 다양한 편의 시설도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나는 중국 정딩(正定)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15위안에 숙소를 구한 적도 있다. 혼자 쓰는 번듯한 방에다가 무려 아침에 목욕탕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 <투게더>에서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려 지방에서 북경에 처음 온 아버지가 목욕탕 건달들에게 둘러싸여 "그러니까 20위안에 목욕과 침대를, 맞나요?" 했던 그 숙소보다 더 저렴한 곳이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곳은 아니었지만.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항상 좋은 숙소에서만 지내면 곧이어 좋은 숙소에 대한 감을 잃게 된다. 항상 좋은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살게 되면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감이 없어지고 좋은 경치 속에서만 살다 보면 자신이 좋은 풍경 안에 있다는 것을 쉽사리 잊어버리는 것처럼. 모름지기 그래서 다양한 숙소에서 지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나는 금전적 문제 때문에 항상 좋은 숙소에서 묵을 수만은 없었다. 싸구려 숙소를 전전하다가 어쩌다 한 번 좋은 숙소에 묵고는 했던 것이다. '아, 이제 고단한 여행을 그만두고 잠시 좀 푹 쉬어야겠어' 하는 생각이 떠오를 즈음이면 말이다.
좋은 숙소 여러 곳에서 묵어 보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좋은 숙소는 포르투갈 리스본의 'Avenida Palace' 호텔이다. 조금 낡은 건물이지만 전통과 품위가 느껴지는 그러한 호텔이었다. 내가 여행 중 머물렀던 수많은 호텔 중 유독 이 호텔이 기억나는 것은, 이곳이 아주 비싼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숙박 요금은 생각보다 그다지 비싸지는 않았다. 이곳은, 그러니까 아주 좋은 수건이 있는 호텔이었다. 이 호텔에 묵으면서 나는 이른바 '수건론'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여행지 숙소에 들를 때마다 이 이론을 적용해 보았으며, 아직까지 이 가설에 어긋나는 사례가 없어 거의 이론으로 굳어지기 직전이다.
'그 숙소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 내지 척도가 되는 것은 수건', 이라는 것이 나의 수건론의 요지다. 호텔의 시설이 어떠한지, 특히 청결도가 어떠한지는 이 수건으로 결정된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이는 첫인상을 주는 숙소라도 조금 지내다 보면 드러내는 문제점들, 허점이 많으면 예외 없이 그곳 수건도 별로였던 것이다.
좋은 호텔의 수건은 도탑고 희며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특히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섬유유연제와 같은 어떤 향도 나지 않는다. 그저 희고 부드러운 수건일 뿐이다. 좋은 수건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라고 말하는 듯 희고 도탑고 보드라우며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것은 수건의 본질에 충실한 바로 그러한 수건인 것이다.
이 이론은 꼭 해외 숙소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숙박업소도 마찬가지다. 수건은 그 숙소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럼 수건이 좋은 숙소는 어떻게 찾나요? 투숙하기 전에 아는 방법이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묵기 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란 고작해야 숙소 리뷰에서 저마다 언급한 수건 상태를 참고하는 것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태까지 숙소 리뷰에서 수건 상태를 집중적으로 다룬 글은 못 보았다. 그렇다고 숙소에 도착해서 '잠깐만요, 묵기 전에 먼저 수건 좀 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물을 수도 없고.
이 수건론이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면 수건으로 숙소 광고를 하는 사례도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