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한 여백
나는 여행길에서 주로 걷는다.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가끔 타기도 하지만 마을이나 도시에 도착하면 내 발걸음으로 나만의 지도를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걷는다. 걷고 걷다 보면 발걸음이 멈추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면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숨을 죽인 후 셔터를 눌러 그 풍경을 담는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그 사진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뜻밖의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 중국 스촨 쿤밍의 어느 시장 어귀에서 인파를 담은 사진에서는, 사진 찍을 당시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웬 아저씨가 카메라 바로 앞에서 나를 향해 활짝 웃어주고 있었고 쿠바 아바나의 어느 길거리에서 찍은 자동차 사진 속에는 두 대 중 한 대의 주인인 듯한 아저씨가 또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다. 문이 열려 있는 2층에서는 또 누군가가 빨래가 말라가기를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물론 내가 모르고 찍었던, 사진 속 존재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마냥 웃어만 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장의 카슈가르 어느 사원 앞에서 꼬마는, 내가 기하의 문을 물끄러미 담았던 것처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앉아 있기도 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는 길을 걸으며 마음에 들어온 풍경을 담아 왔는데, 돌아와서 유심히 보니 다른 곳에서 찍은 두 장의 사진에 같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에 다녀오는 것이었을까, 혹은 소일거리로 자전거를 타다가 이방인의 시선에 자꾸 가닿고 싶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어쩌면 그저 하나의 배경으로 담았을지 모르는 여행지의 사람들이 사진으로 담겨 내게 두고두고 말을 건네는 건 참 신비롭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정말 몰랐던 사람, 나중에 보고는 정말 다시 그때로 찾아갈 수 있으면 다가가 손이라도 잡아주고 인사 건네고픈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 산티아고 데 쿠바 횡단보도에서 컬러풀한 웃음을 선사하신 어느 분은 모르는 사람인데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여행 당시 내가 보지 못했던 그들은 과거에서, 여행길에서 지금 이곳의 나를 찾아온 것일까. 혹은 여행에서 놓친 것들을 내가 데리고 돌아와 두고두고 보며 여행을 계속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