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단단해지고 있는 당신을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면 접수를 하고 예약된 진료과로 향한다. 접수창구를 기점으로 임신을 한 자와 임신을 바라는 자가 향하는 곳은 딱 정반대다. 한 손으로는 산모수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왼쪽 방향으로 향하는 임산부들을 볼 때마다 내 안의 감정들은 뒤죽박죽 뒤섞여 나를 괴롭혔다. 왜 하필 같은 층에 양쪽 세계를 배치해두었는지. 병원 설계를 한 사람을 당장 찾아내서 따지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오른쪽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임신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배는 얼마나 무거울까. 저 뱃속 아이의 성별은 뭘까.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임신의 세계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결혼한 지 3년 차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신혼 생활을 제대로 즐겼으니 아이를 가지는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다. 배란테스트기까지 동원해 주기를 체크하며 임신이 되길 기다렸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혹시나 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생길 무렵, 비슷한 시기에 준비를 한 지인들의 임신 소식까지 들려오면서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난임센터를 찾아가 각종 검사를 받았는데,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런데도 임신이 되지 않아 당장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만 35세 미만 여성이 원인불명의 난임일 경우 결혼생활이 만 3년이 지나기 전에는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 시도조차 하지 못하다니.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에 인공수정은 시도할 수 있었다. 자연임신과 같은 원리라 확률이 크게 높은 것은 아니지만 임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큰 소득은 없었다. 자연임신 시도와 인공수정 시술을 번갈아가며 몸과 마음이 힘들어질 때쯤 만 3년이 도래했고, 우리는 고민할 것 없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은 준비과정부터 시술 때까지 몸과 마음이 몇 배나 더 힘들다는 말이 정말 딱 맞았다. 여러 개의 난자를 배란시키려면 배란유도제가 들어간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직장을 다니면서 매일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갈 수 없으니 처방을 받은 주사를 직접 배에다가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야 하다 보니 평일에는 회사에서 숨죽이며 주사를 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시술 전에 배란이 되지 않도록 하는 호르몬 주사도 엉덩이에 맞아야 했는데, 스스로 주사를 놓을 수가 없어서 남편이 도와주었다. 겁이 많아 주사 바늘을 쳐다보지도 못했던 남편이 주사와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를 보며 용기를 내주었다.
시술을 하기 3일 전은 난자를 채취하는 배란일이다. 일반적으로는 한 개의 난자가 성숙한 뒤 배란이 되어야 하지만, 시술을 해야 하는 사람의 성숙한 난자의 수는 꽤 많다. 채취를 하기 위해서는 수면마취로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크다. 3일 뒤 수정과 배양을 거친 배아를 이식하면 시술은 끝나고, 배아가 자궁에 잘 착상되도록 안정을 취하며 기다리면 된다. 나는 이 과정을 꼬박 세 번을 진행했다. 첫 번째 시도는 착상에서 실패했고, 두 번째 시도는 착상은 했으나 유지가 되지 않아 화학적 유산을 겪었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에서 마침내 임신에 성공했다. 시술을 받고 나서는 일정 간격으로 피검사를 해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데, 임신이 되면 그 수치가 급격히 올라간다. 피검사를 하는 날에는 병원에 들렀다가 출근을 했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일단 간호사 목소리와 어조부터 살폈다. 한마디만 들어도 결과를 알아챌 수 있는데 밝은 어조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들으니 이번에는 예감이 좋았다. 수치가 올라갔다며 나만큼이나 기뻐하는 간호사의 말에 눈물이 펑펑 났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가 임신테스트기로 한번 더 확인했는데, 그토록 바랬던 선명한 두줄이 나타났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과 함께 병원에 들러 아기집이 생긴 것을 확인했고, 진료실 문 밖을 나오니 어느새 내 호칭은 산모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나와 함께 마음고생을 같이한 남편은 환한 미소로 우리의 임신을 축하해주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그동안 힘들었던 과정들이 눈 앞을 스쳐가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진료실 밖 복도를 따라 로비로 나오는 동안 기분이 얼떨떨했다. 그동안 이 복도를 드나들며 나는 언제쯤 임신을 할 수 있을까, 임신을 못하면 어떡하지, 기대와 불안을 수도 없이 겪었는데 이렇게 임신을 하고 나니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안도감과 기쁨이 천천히 차올랐다. 이게 바로 임산부의 기분이구나, 나 이제 정말 기뻐해도 되는 거구나.
지금도 어디에선가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더 힘든 과정을 겪으며 임신을 시도하고, 시험관 아기 시술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두렵고, 시술을 받더라도 몇 번째에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기에 걱정도 되고, 이 상황을 주변에 알리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난임을 인정하고 가족과 친한 지인들에게 털어놓기까지 오래 걸렸다. 본래 힘든 것이 있으면 스스로 어떻게든 짊어지고 이겨내 보려는 성향 탓도 있지만, 나를 향한 그들의 걱정과 위로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은 생각에 일부러 피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거듭될수록 이 상황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이 힘에 부쳤다. 결국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응원과 위로도 열심히 받으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어차피 힘든 상황은 바꿀 수 없으니 심플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임신이 어려운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냐고, 어차피 임신은 신의 영역인데 언젠가 신도 내 간절한 기도를 듣지 않겠냐고 말이다. 이 과정을 함께 겪어내고 있는 남편과도 임신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랑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임신이 잘 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조금은 지쳤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힘들어도 언젠가는 임신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을 함께 겪어내며 우린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조용한 응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