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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튤 Nov 03. 2020

그때의 촌도시

나는 작은 촌도시의 전학생이었다

나는 작은 촌도시의 전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늘 애들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녀야 했다. 그러다 보면 집과 정반대 방향인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그 촌도시의 청소년들이 놀 곳이라고는 걸어서 삼십 분이  걸리는 시내뿐이었기 때문이다. 시내로 향하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철도 옆에 나란히 펼쳐진 논두렁을 걸어가는 길과 철도 위로 난 아치 모양의 작은 대교를 올라가는 길이었다. 우린 그때그때 기분에 어울리는 길을 선택해 걸었다. 논두렁은 뛰기 좋은 길이었다. 벼 대신 잡초만 무성히 난 논두렁을 지나가다 보면 종종 기차가 우릴  뒤따라오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린 기차가 내는 엄청난 소음에 맞서기 위해 이상한 괴물 소리를 내며 달렸다. 여고생 서너 명이서 두 을 위아래로 흔들고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일렬종대로 달리는 모습은 정말 이상했을 것이다. 무심히 지나쳐가는 기차를 그냥 지켜볼 수 없다는 양 굴었는데, 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에 비해 아치 모양의 대교를 걸어 올라가는 길은 어쩐지 눈물겨운 구석이 있었다. 경사도가 가파른 대교를 느릿느릿 통과하는 여고생 무리는 흡사 막 태어난 바다거북 같았다.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하는 새끼 거북처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학교로부터 도망치듯 대교를 열심히 넘었다. 거친 숨과 욕을 내뱉으며 올라간 대교의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소도시의 풍경은 별 볼 일 없었다. 그렇지만 대교의 가장 정상에 서 있을 땐 어떤 정복감 같은 게 들었다. 노래방에 가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대교의 가장 힘든 구간을 넘어섰다는 그런 알량한 정복감.


고생스럽게 아낀 버스비로 산 싸구려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노래방엘 갔다. 우린 매주 순위가 바뀌는 1위 곡을 불렀고 탬버린으로 엉덩이를 치며 춤을 췄다. 쥐꼬리만 한 노래방 서비스가 들어오면 우린 그 시간을 아끼고 아껴 마지막까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목이 쉬었고 배고파했다. 하도 엉덩이를 때리느라 멍든 애도, 치마가 찢어진 애도 있었다. 무엇보다 넥타이를 자주 잃어버렸는데 그런 특이사항은 다음날 등교를 준비하며 알았다. 열정적인 시간을 보낸 우린 떡볶이를 사 먹고 조금 수다를 떨다 각자의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논두렁이 아니면 아치 대교를 지나 다시 집으로 향했다. 홀로 향하는 길이 외로워 쉰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방에서 넥타이를 잃어버린 것보다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스물여덟이 되었다. 노래방에 갈 여력조차 없는 어른이 되었지만 교복 입은 학생들을 마주치는 순간순간 교복을 입고 시내를 누비던 십 년 전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 전부 그 촌도시에 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넥타이가 끼어있을 소파 뒤에, 구슬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오른 아치 대교 정상에, 논두렁에 찍힌 신발 자국 아래에. 잃어버린 것 전부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겨우 삼 년 밖에 살지 않은 그 촌도시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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