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조금만 더 - 4학년 권장도서
시공주니어 도서다. 아무래도 책을 볼 때 출판사를 유심히 보는 경향이 생겼다. 일단 믿고 볼 만한 출판사 레벨이기도 하고, 독서 레벨이라고 해서 적정 연령을 표시해 주기도 한다. 이 책은 독서레벨 2. 3학년 이상. 지난 번에 읽었던 '슬플 땐 매운 떡볶이'가 과연 4학년 권장도서일까? - 아, 우리 학교 분류이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4학년이 읽기엔 좀 쉽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은 책.
할아버지와 윌리, 그리고 번개라는 개, 이렇게 세 명이 살고 있는 농장의 이야기다.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윌리의 입장만큼만 알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고, 그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른이 보기에는 좀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들의 시선으로는 적당하겠다 싶다. 할아버지가 누워계시는데 그 병명이 뭐가 중요하며, 왜 세금이 미납되었고 그 얼음 거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런게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500달러가 우리 화폐로 치면 얼마나 될 지를 계산하는 내가 조금은 한심스럽게 여겨졌다. 그래, 그런 것들은 다 넘겨놓고 보자.
시작부터 할아버지는 누워 계시고, 윌리의 고군분투가 계속 전개된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고사리 손으로 이겨내려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다. 그 한계 속에서 세금이라는 위기가 찾아오고 결국 썰매대회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16키로에 달하는 경주. 개 한마리로 출전하는 윌리와 사모예드 5마리로 달리는 얼음 거인이라는 절대자와의 경주. 뒷 부분은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무리가 정말 순식간에 되었다. 뒷 부분이 더 있지 않을까 계속 찾아봐야 할 정도로.
일반 소설의 끝맺음이 이랬다면 과연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그런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충격적인 최후의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번개의 최후가 겨우 2줄로 이야기 되다니. 그리고, 문장들은 정말 건조하게 마무리 된다.
윌리는 번개를 끌고 마지막 3미터를 걸어 결승선을 지났다.
결국 온갖 상상력으로 뒷부분을 채워야 한다. 아니 마지막 결승점에 거의 도달하게 되는 마지막 장의 5쪽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서 머리 속에 그려야 한다. 윌리의 모습, 번개의 모습. 그리고 그 앞에 도착한 얼음 거인과 그가 차갑게 내뱉는 말들, 그걸 전부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때로는 슬로비디오가 되기도 하고, 드론샷으로 찍히기도 하며 윌리를 근접샷으로 번개와 같이 투샷으로, 얼음 거인은 아래에서 찍는 부감샷으로 잡기도 한다. 그래서 내 머리 속에 그 장면을 그리게 된다. 갑자기 밀려오는 눈물들. 아, 불친절하다는 건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구나.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대회에 아이가 이긴다는 판타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윌리가 이겨내는 과정이 침착함과 대범함, 때로는 무모함으로 섞여 있어 오히려 아이들에겐 멋지게 보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래, 일단 하고 봐야지. 혹시나 실패한다면 그건 어른들의 몫인 거다.
그래서 스미스 선생님이 해 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대충 요약하면,
니가 대학 갈 돈을 경주에 참가하는 데 썼는데 그건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일이지. 그러니 이제 격려하고 싶구나.
온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실행하는 아이들의 발목을 잡지 않는 어른.
충분히 고민해 보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결국 선택은 아이가 하게 도와주는 어른.
이런 어른이 되어야 할텐데. 가끔 그 시기가 너무 지나버린 건지 후회될 때가 있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나도 조금만, 조금만 더 힘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