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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쌤 Nov 17. 2024

폭력의 시대

내가 가진 생각만이 정의일까?

1.

고민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어설프게 난 중간에서 중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간 양쪽으로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분명 그걸 안다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보내기도 참 아쉽다. 사람들은 과연 이러한 세상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뭐 특정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교묘하게 피해봐야지. 


2.

11월 답지 않은 날씨는 도대체 기후변화가 어느 정도로 심각해 지는지 가늠조차도 할 수 없다. 어제 비가 오고 나서 드디어 좀 쌀쌀해졌지만, 수능날 이렇게 따뜻한 기온이 있었는지. 뭐 이상기온으로 꽃들도 계절을 헷갈려 한다는 토픽들을 가끔 보게 되지만 꽃이라서 금새 잊을 뿐이다. 그게 아마도 사람들이 먹어야 할 과일이나 곡식이 생산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경각심이 들었을 텐데. 물론 이런 이야기도 정파적으로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3.

정파적이라는 건 무조건적인 충성만을 외쳐야 하는 건지. 세력이 무너지는 꼴을 면하자고 '합리성'을 무시해도 되는지. 뭐 우리 나라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으로 다 그렇지. 유엔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세계 평화보다 그들의 질서 유지에 더 힘을 쓰는 것도 많이 봤으니. 전쟁이 일어나도 시큰둥. 민간인들이 많이 죽어도 못 본 척.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결국 국가나 개인이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들이 인기가 아닌가 싶다.


4.

힘이 있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상인가?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행복해 지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는 있다만, 순간순간 보게 되는 SNS나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로 자존감이 서서히 깎아지는 게 느껴진다. 안보면 될 것 아닌가를 외치겠지만 인터넷 세상에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큰 흐름에 저항하기엔 개인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 그렇기에 사람들은 학벌에 성적에 돈과 부동산, 코인 뭐 그런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게 아닌지.


5.

집착이 심해지니 아픈 부분을 건드리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 내가 가진 정의가 남들이 가진 정의와 다를 수도 있는데, 나만 옳고 남은 틀렸다고 하니 싸우게 된다. 양자택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틀렸다고 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더라도 폭력은 좋지 않다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한 때는 약자에게는 폭력도 최후의 저항 수단이라고 말하곤 했지. 과거 군사정권과 학생운동이 만연했었던 그 시절에서 통했던 논리가 여전히 유효한 것일지 의문스럽지만 함부로 말하기에도 부담스럽다. 마치 누구의 편을 드는 행위같아지니.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도 결국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핀잔을 듣겠지?


6.

결국 휘말리기 싫어서 사람들은 무관심을 택하게 된다. 그 무관심이 더해질수록 성향이 뚜렷한 이들이 - 때론 절반을 살짝 넘긴 사람들이 - 모든 문제를 해결할 힘을 갖게 된다. 옳지 않다고 생각해도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게 법에 규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법도 결국 사람이 만든게 아닌지. 어찌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균형의 추를 맞추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여론이라는 건 꽤나 중요하고 (물론 그것조차도 다 옳은 건 아니다만) 사람들이 평균적이고 정의로운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의무 교육들은 더욱 더 중요하다.


7.

그러고 보니, 나는 꽤 중요한 일을 하는 최전선에 있었군. 


하고 있는 일 열심히 해야 겠다.


더 나아갔다간 나도 나의 생각을 제어할 수 없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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