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으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
책을 읽는 건 무얼까?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고, 아닌 아이들도 있고. 무조건 주구장창 읽게만 하는게 무슨 득이 있나 싶기도 하다. 뭐 스마트폰만 끼고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쥐어주는 걸로 큰 위안을 삼아야 하는건가? 하지만 이젠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세상인걸.
책이라는 물건을 빼보자. '무언가를 읽고 생각하는 것'을 독서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지. 식당에서 메뉴판을 읽거나 각종 영상 미디어에서 활자들을 읽고 단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을 독서라고 보기엔 좀 애매할 것 같다. 생각을 한다는 점에 초점을 두면 그것이 꼭 책을 활용한 독서로 제한할 필요는 없겠지. 영상 속에서도 많은 생각들을 읽을 수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활용하면 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세대에 꼭 '책'으로의 독서를 고집하는 게 얼마나 진부한가? 어려운 철학책도 쉽게 읽히는 만화로 나오는 세상에 자꾸 접근성과 편의성이 떨어지는 '책'이라는 도구로 교육을 한정한다는 게 시대에 좀 뒤떨어져 보이긴 하다. 하지만 생각은 사골처럼 오래 곱씹을수록 진국이 되는 법이라 시간을 덜 투자하게 되는 영상 미디어는 쉽게 소비되어 버리기에 교육적 도구로 쓰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강렬하고 쉽게 눈에 꽂히지만 그 곱씹은 의미를 사유하는 시간이 짧아 잊기에도 아주 편한 구조. 뭐 이것도 나의 편협한 생각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만.
무작정 책만 읽으면 좋은건가? 무작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때문이기도 하고, 그 어떤 활동도 그렇게 하면 의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 일거다. 무작정 읽지 말고 생각하면서 읽는 게 맞지. 읽으면서 그 무언가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기에 자꾸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책을 읽었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면.. 그건 책을 읽으나 마나인거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열심히 보는 걸 권장하지 않는 거다. 작은 정보 얻는 거에 너무 기뻐하지 마시길. 아이들은 결코 그 정보를 알고 싶어서 그 책을 읽는 게 아니다. 남여 주인공들의 투닥대는 모습이 재미있을 뿐.
그래서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라고 하는데,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으니 독후감이 시덥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그냥 줄거리 요약본. (그거라도 잘 하면 다행이기 까지..) 학습만화를 읽고 쓰려면 더욱 더 그렇다. 생각할거리가 부족하다보니 기억 남는 감상도 부족한 법. 어설픈 재료로 맛있는 요리가 나올 수 없듯이 다루기 좀 어려운 재료를 주고 잘 요리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게 중요하다.
책을 그냥 읽으라고 하면 안된다. 잘 소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독후감 같은 산문일 수 있지만 때로는 신문 형식, 포스터 형식, 책광고, 책의 한 장면으로 만든 연극이나 꽁트일수도 있다. 독후감보다는 그 뒤쪽의 이야기들이 더 화려하고 아이들도 흥미있어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속에서 책을 읽은 공감의 정도가 나타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책의 한 장면을 그대로 그리고, 책과는 상관없는 광고를 하고 (어떤 책을 넣어도 어울리는..) 책을 단순하게 따라하는 시트콤들은 생각이 없는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결국은 그걸 어떻게 소화하냐의 문제겠지?
혼자서 잘 읽는 아이들은 그걸 혼자서 잘 소화하는 게 아닐까? 책을 읽어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걸 소화할 만큼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책이 너무 어려운 걸 거고. 그런 아이들에게 무식하게 책 독후감 하나 써오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그 책에 나온 일부분이라도 생각하고 이야기하라고 하고 싶다. 그게 무슨 내용이든지 좋다. 일반 상식에 대한 이야기도 좋고, 누구의 처지에 관한 이야기도 좋고. 그렇게 하다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쌓이면 그걸 토해내겠지.
학교에 있다보면 늘 반 전체 아이들에게 일괄적으로 그런 일들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된다. 몇몇 아이들에게만 피드백 주기도 어렵고. 전체에 피드백 하기에는 너무 지치기도 하고.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핑계대는 것 같아 창피하네..) 그리고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얄팍한 지식만 있는데 그게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확신이 안서는 거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읽는 필독도서라는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보면서 생각하고 있다.
-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좋을텐데
- 아이들의 모습이 이 책에 얼마나 나타나 있나? 이건 어른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기 좋겠는걸?
- 책을 읽고 소화시키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 주면 좋을까? 내가 다시 부모가 된다면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텐데..
나 또한 책을 읽고 생각한 꺼리들을 적어보려 한다.
일종의 이 브런치북의 프롤로그가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