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사랑이 되겠어요
부스스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아직 꿈결인 나른한 얼굴로 엉거주춤 창문을 연다. 조심스레 밖으로 얼굴을 내밀자 깨끗하고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와 남아있던 졸음을 흐트러 버린다.
파우더 슈가를 뿌린 것처럼 세상이 하얗다. 추워. 이불을 끌어와 걸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작고 청아한 눈송이들. 마치 눈꽃 옷을 입은 요정들처럼 대기를 가득 메운 채 사뿐사뿐 지상으로 내려온다. 바람이 불자 산들산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가볍게 흔들린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였다. 새소리도 자동차 경적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위가 고요한 아침.
스웨터를 입고 텀블러에 조용히 커피 한잔을 내려온다. 창문은 그대로 열어놓은 채, 차가운 바람과 눈송이를 맞으며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아름다운 겨울산에 눈이 내린다.
발그레하게 어렸던 시절에는 눈이 오면 꼭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 연인, 때로는 엄마에게도 "엄마! 눈 와!"하고 설렌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어, 정말 눈이 오네!" 하고 화답을 받으면 모든 순간에 함께인 것 같아 왠지 좋았다. 이제 나는 우리 집 고양이를 안고 혼자서 조용히 눈 내리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것을 나누지 못해도 쓸쓸하지 않은 것. 외롭지 않은 것. 또는 외로워도 괜찮은 것. 혼자 살아갈 자격 같은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건 회사를 다니면서부터였다. 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15만 원의 작은 원룸. 겨울엔 춥고 여름엔 눅눅하고 체리 색의 낡은 풀옵션 가구들은 작은 서랍 한 칸을 여닫을 때도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아침엔 사당에서 강남으로 가는 지옥철을 견뎠고 늦은 밤에 혼자 밥을 먹었다. 이후 돈을 조금 모아 잠실로 이사 갔을 때는 주말마다 한강공원에 갔다. 음악을 듣고 나무에 기대앉아 책을 읽고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을 물끄러미 보기도 했다. 사회생활에서 빼앗긴 에너지를 혼자 쉬며 충전했고 혼자인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연스러운 나의 형태라는 느낌. 그때부터였을까, 혼자 살아가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나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을 차마 하지는 못했다. 회식, 동창회, 친목 모임, 세상의 많은 일들이 '여럿'을 중심으로 돌아갔고 그런 것들을 즐길 줄 알아야 사회적인 사람. 사회적인 사람이 곧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식되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안에서 나는 조금 다른, 언제나 미묘하게 약간씩 어긋나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연애는 4년 전이었다. 겨울 어느 날, 그에게 '혼자인 게 좋아'라고 했다. 그는 유쾌하고 활달했으며 임원이 되고 싶어 열심히 일하는 야망 있는 청년이었다. 말끔한 슈트와 세련된 물건이 잘 어울리는 도시의 모범생. 그는 다정했고 우리는 즐거웠지만 반면에 나는 자주 불안했고 초조했다. 사회적 성취에 의미를 두지 않는 내가, 야망이 없는 내가, 그와는 자꾸 다른 곳을 보는 내가 어딘가 잘못된 사람처럼 초라하고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함께 길을 걷는데 각자 다른 곳이 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또한 많이 답답했을 테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기 위해 우리는 헤어졌다.
요즘은 누구에게든 혼자인 시간이 좋다고 자연스레 이야기를 한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혼자인 게 편해서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때로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고 오랜 친구는 늘 보고 싶고 결이 비슷한 이들을 만나면 반갑고 즐겁다. 하지만 혼자여도 괜찮은 것, 굳이 함께하려 하지 않는 것. 그렇게 나의 날들이 흘러가고 있다.
돌아보면 혼자인 날들을 헤치며 나 자신이 되었다. 타인과 밖을 보던 시야가 사라지고 어두워진 무대에 홀로 섰을 때, 비로소 내 안의 빛이 보였다. 지금의 마음이 변할 수도, 어느 날 문득 두려워질 수 도 있지만 무엇이든 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묵묵히 나를 따라가는 걸음은 언제든 나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