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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Rachel Apr 09. 2021

o o 님, '1년 전 오늘' 입니다.

잊을만 하면 울리는 사진 알람 기능이 주는 추억과 기억.




눈을 부비적 대며 아침에 깨서 가장 먼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시계를 본답시고 켜진 핸드폰은 그 길로 뉴스를 한번 쭉 훑다가 메일 함도 한 번씩 들여다본다. 눈을 가장 먼저 뜨고 하는 일치곤 핸드폰이 여전히 일 순위 여서 이건 아니다 싶지만 그래도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 번은 눈을 뜨고 메일함 알림을 확인하는데 클라우드 사진 함 박스에서 '1년 전 오늘'이 뜬다. 들어가서 사진을 봤더니 1년이라는 시간이 참 오래전 일 같으면서도 꽤나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을 문득했다. 


때는 2020년 3월 막바지 어느 날이었다. 태국에서 데이 오프만 뜨면 늘 가까운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가까운 동기들은 다 나와 성향이 비슷했다. 특히 여행을 하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세상 부지런해지는 사람들이었다. 삶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다양한 방식의 가치들이 존재하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이 주변에 함께할 수 있고 또 수많은 여행을 같이 하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더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부분은 내가 태국에서 살고 일하면서 얻은 소중한 것이기도 했다. 태국에서 살면서 좋았던 점은 그러한 것들을 좋아하는 우리에겐 태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가장 재미있는 장소였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와 도착한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태국은 내게 또 다른 여행지에서 여행을 시작하게 하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이러한 특별한 느낌은 다른 나라를 베이스로 두고 근무하는 외국항공사 승무원이 누릴 수 있는 작은 일탈이기도 했다. 


그렇게 잠시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을 잊으면 안 돼! 하고 외치듯이 또 어떤 날은 핸드폰 깊숙이 저장돼있던 아이폰 자동 사진 모음 기능이 '2020년 봄'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는 이번엔 친절하게 자동 영상까지 만들어 보여준다. 

이렇게 잊을만하면 뜨는 알림 때문일지 몰라도 타국에 다시 정착하면서도 태국에서 지낸 시간은 늘 잊을 수가 없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패기 어리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부딪치며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해보고 , 또 외국인이라는 약간은 가벼운 마음으로 진짜 '살아' 본 곳이 태국 방콕이 처음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잊지 마, 잊으면 안 돼!' 하고 상기시켜주는 핸드폰 속의 사진들을 보며 지난해 봄 오늘에는 그 여행이란 것을 나만큼 좋아하는 동기 언니와 함께 태국 '카오야이'에 있었구나 했다. 


카오야이 숙소에서 해가 뜨는 풍경 바라보기, 숙소 건너편에는 개인 별장도.


워낙 사진을 찍고 남기고 보길 좋아하는 나와 동기 언니는 자체 '사진 동아리' 회원이라고 외치며 둘이서 2박 3일간 카오야이 여행을 하며 하루에 몇백 장씩 사진을 남기고 주고받고 했다. 

태국 카오야이는 태국어 '카오' 산, '야이 ' 크다. '큰 산'이라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이 태국을 방문하면 가장 친숙하게 먼저 찾아보는 곳이라고 하면 태국 근교에서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파타야', 태국 남부에는 '푸껫', '끄라비', 북부엔 '치앙마이', '치앙라이' , 신혼여행으로 방문한다면 '코사무이' 정도가 있을 것이다. 태국 여행을 더 많이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그 외에도 태국에는 보석같이 숨어 있는 곳이 참 많은 걸 알 것이다. 


태국 카오야이 국립공원 산과 폭포수.

카오야이는 태국에서 차로 2시간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바다와 섬이 주가 되는 휴양지가 대부분인 태국 휴양지들과 달리 유일하게 태국에 존재하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대자연의 휴양지 모습을 보여주는, 어쩌면 타 여행지에 비해 여행객들 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즐겨 찾는 곳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 방문하러 숙소나 맛집 같은 것을 알아볼 때도 타 태국의 휴양지에 비해 선택지가 많지는 않았지만, 카오야이 와이너리와 국립공원 방문이 주 목적인 우리에겐 그냥 떠나는 것 자체가 기쁨인 여행이었다. 

툭툭이나 택시를 잡기가 어려운 카오야이에서 방콕에서 예약하고 카오야이에서 택시 투어를 하기로 결정한 언니와 나는 택시를 타고 가다 예뻐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멈춰 푸릇푸릇 초록이 가득한 배경으로 아무도 없는 (?)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 구글 지도에 설명이 별로 없어 가봐도 될까 싶지만 별다른 대안책이 없어 호텔 근교에서 우연히 찾은 음식점에서 다행히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고는 기쁨에 소리를 지르고, 태국 국립공원 안에서 마주한 근육질 가득한 원숭이를 보며 택시 안에서 깔깔 대기도 했다. 

다양한 국적이 존재해서 이곳이 태국일까 유럽일까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태국 수도 방콕과는 달리 카오야이는 정말 현지 사람들만이 주말에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근교로 나와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태국이라는 나라 그것 자체를 보여주는 보석 같은 도시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화려하고, 시끄럽고 사람들에 둘러싸여야 여행의 제맛이 나는 도시가 있는 반면, 철저히 그런 것들과 동떨어져 있을 때 '진짜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도시들도 있다. 

카오야이가 그런 곳이었다. 그 여행에서 카오야이는 나에게 앞으로만 가지 말고 멈춰서 주변을 한 번 둘러보는 건 어떠냐고 말을 걸어 주는 도시였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카오야이가 사실 별다른 액티비티를 할만한 게 타 도시에 비해 부족해서 호텔 자체를 참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기도 했다. 


아기자기한 태국 카오야이 숙소 풍경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호텔 주변 한 바퀴를 돌며 둘러보니 이 곳만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태국 방콕은 시간 혹은 사람들의 마인드에 '여유가 있다'.라는 통념이 있지만 태국 방콕보다 더 여유가 있는 곳이 카오야이였다. 비행이 좋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가끔은 그런 것들로부터 철저히 떠나서 머물러 있고 싶기도 했다.  방콕도 충분히 내가 한국에서 놓치고 지낼만한 부분을 채워주는 도시이지만 어느덧 방콕이 또 상대적으로 빠른 도시라고 느껴질 때쯤 찾은 카오야이에서의 2박 3일은 그 어느 때 보다 '쉬다'라는 의미로 보다 느리게, 순간에 머무르고 자연을 함께하며 마음을 꽉 채운 여행이었다.


태국 그라몬테 와이너리 체험


그렇게 또 동기 언니와 나는 오직 둘만 초대된(?) (우리가 갔을 때 비수기이도 했다.) 와이너리에서 저렴한 값에 와인을 마시고 태국 가족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를 툭툭이보다 조금 큰 미니 오픈 버스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이렇게 신나게 아무런 방해도 없는 철저히 휴식을 위한 카오야이 여행을 즐기던 참에 여행 끝무렵쯤 들려오는 소식은 불청객 코로나였다. 확산 방지를 위해 방콕과 근교의 경계를 순차적으로 락다운 시킬 것이라는 뉴스가 슬금슬금 나오면서 우리는 더 머물고 싶은 것을 꾹 누르고 다시 돌아올 채비를 빠르게 해야 했다. 그렇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길로 그 여행은 코로나 이전 마지막 태국 여행이 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1년 후 핸드폰 안에서 반짝이는 카오야이 풍경 사진들과 언니와 나의 마스크 없이 활짝 웃는 모습은 눈부실만큼 그립고 빛났다. 




지금쯤 한국은 벚꽃이 만개하고, 다채로운 제주는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고, 국내 많은 근교들은 그 어느 나라의 근교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태국은 일 년 중 가장 더운 4월 송크란 연휴에 맞춰 날이 이제 슬슬 더워져 사람들이 시원한 물을 서로 쏘며 더위를 식히는 태국 최대 이벤트가 곧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에 잊을만하면 울리는 '몇 년 전 오늘입니다'가 또 갑자기 짠 하고 뜨면서 언젠가 핸드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사진을 다시 보여주면서 내게 추억하라고 부추길지 모를 일이다. 

시간은 상대적이지만 1년이라는 그 빨랐던 시간의 흐름을 보면서 이렇게 늘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만 생각하는 삶에서 잠깐 멈추고 가끔 핸드폰 알림으로 과거 어느 곳으로 시계를 돌려볼 수 있게끔 해주는 그 알림에 좀 더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언젠가 오늘의 어느 한순간이 미래의 어느 날 '몇 년 전 오늘입니다' 하고 뜰 때 아 그때 내가 거기서 그런 감정으로 있었구나 회상하며 그 순간이 좋았던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난 또 미래가 될 오늘을 위해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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