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llad of Darren"
그들이 노래가 나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바로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게 바로 SNS의 효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억보다 망각이 빠른 것. 여하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 어쩌다 듣게 된 blur의 앨범입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장르는 따지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많은 노래를 들어놓아야 나중에 좁은 세상에 갇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조금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알았던 가수라던가 요즘 대세라고 하는 노래가 있으면 일단 좋든 싫든 들어봅니다. 그렇지만 너무 뻔한 노래는 싫어합니다. 뭔가 클리셰가 분명한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 분명히 상황에서는 이럴 것이다. 그런데 그 장면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경우 말이죠. 왠지 내가 미래를 보고 온 느낌이 들 때 말입니다. 영화는 그래도 1시간이나 2시간이 뒤를 보지만, 음악은 3분 뒤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런 음악들은 넘겨버립니다.
물론 넘겨버린 노래들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갑작스럽게 저도 좋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아, 내가 이제는 모든 트렌드를 다 따라잡을 수는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한탄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잡을 수 있는 건 잡아야죠.
저는 3가지의 음악 어플을 사용합니다. 사운드클라우드, 유투브뮤직, 스포티파이.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사운드클라우드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믹스라던지 작업 중인 노래를 듣는 용도, 유투브 뮤직은 한국음악을 들을 때나 유투브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음악을 듣는 용도, 주력인 스포티파이는 외국 노래나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때 사용합니다. 이는 각자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에 모두 놓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항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다닙니다. 유목민과 같다고 볼 수 있죠. 스포티파이는 그런 점이 참 불편했습니다. 알고리즘은 항상 기똥차게 만들어주는데 새로운 장르, 노래는 빠르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해야합니다. 아티스트를 팔로우해놓으면 이따금씩 새로운 노래가 나왔다고 알려주나, 팔로우하지 않은 아티스트들은 도통 소식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투브 뮤직으로 새로운 노래를 들어봅니다. 이를 통해 최근에 들었던 노래들은 선우정아, pink sweats 등이 있었습니다. 아래로 쭉쭉 내리다 보니 blur의 음반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blur가 최근에 내놓은 앨범 “The Ballad of Darren”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제가 그들의 노래를 듣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노래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저는 브릿팝에 빠져있었습니다. 브릿팝하면 대표적인 밴드들이 있죠. OASIS, RADIOHEAD, COLDPLAY, VERVE, SUEDE, TRAVIS 등이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 blur도 있습니다. 저도 검색해서 들을 시절이라 명반이나 명곡이라 하면 다 들었습니다. 그중 TRAVIS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뭔가 제 마음을 흔드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겨울에 참 어울립니다. 제가 고등학생 시절 눈이 왔던 날이었습니다. 독서실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아이팟 클래식을 중고로 사서 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안에 들어있던 TRAVIS의 “The Man Who”의 첫 번째 트랙인 Writing To Reach You가 들렸습니다. 저는 눈이 와 미끄러운 다리를 건너며 느꼈던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blur의 앨범도 듣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노래인 “Boy and girls”나 “song2”가 가장 유명한 노래죠. 그들의 독특한 사운드와 에너지가 한 번 에 느껴지는 노래들입니다. 하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브릿팝을 들었던 시기에는 몇 번 플레이스트에 젖어 제 귓속으로 들어온 적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갑고는 했죠. 그러다 금방 제 머릿속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러고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들의 앨범이 이렇게나 많이 나와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아마 The Ballad of Darren 앨범이 아니었으면 그들의 존재를 저는 아직도 까먹고 있었겠죠.
뭔가 힘이 빠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반의 음악들은 그들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통통 튀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는 잘 들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 저변에는 조용한 음악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음악을 좋아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가사 없는 음악도 종종 찾아듣곤 합니다.
그들의 음악은 베테랑들의 음악이었습니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힘을 빼는 대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죠.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오랫동안 수련을 하다 보면 몸이 그 동작을 기억하고 있어서 굳이 힘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릅니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앨범을 그랬습니다. 저는 더 듣기 좋았습니다. 그들이 비운 자리에 제가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낡지 않고 늙는다는 표현이 생각나는 앨범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