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이 반이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크로스핏. 진짜 힘든 운동이라는 얘기만 들었다. 내가 말년시절 후임에게 불현듯 전역을 하고 나면 크로스핏을 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나 전역하면 크로스핏할 거야.”
“저 그거 해봤는데 첫날하고 토하고 다시는 안 합니다.”
그의 말이 나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먼 얘기였다. 우리들의 아버지가
“나 진짜 술 끊을 거야.”
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전역을 하고 복학을 했다. 근 3년 만에 돌아간 학교. 친구들은 그때 그대로일 줄 알았고 북적거리던 학교도 그때 그대로일 줄 알았다. 돌아간 학교는 달랐다. 그때와는 다른 친구들이었다. 대화는 하지만 감정은 없는 느낌. 이상한 거리감이 들었다. 전과는 다른 싸한 학교, 거리감이 들었다.
2학기가 들어 학교 성적에는 관심 없었다. 편입하려면 토익성적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공부할 생각이니 돈을 달라는 말을 한 것이. 왠지 민폐를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철이 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학원은 내가 있던 대학교 기숙사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서면이었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크로스핏을 찾았다. 그래도 한번은 경험해 보고 싶었나 보다. 나를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부산에 있는 크로스핏 체육관(줄여 박스라고 부른다.)을 찾았다. 내가 알기로는 2015년 당시에는 부산에는 박스가 한자리 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6개가 안 됐을 건데… 검증된 곳을 쉽게 찾는 법은 지금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드시 크로스핏이라는 말이 붙어있어야 한다고 했고 리복에서 인증하는 크로스핏이 가장 검증된 곳이라고 했다. 지금은 리복이 크로스핏의 메인 스폰서가 아니라서 따로 리복이라 적힌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산에는 리복 크로스핏이 두 군데가 있었다. 서면과 센텀. 당연히 서면이지.
수업 예약을 했다. 네이버 카페로 예약을 했던 것 같다. 수업 전날까지 이름과 연락처 예약 시간을 적으면 나중에 댓글로 수업 예약이 되었다는 댓글이 적힌다. 그럼 예약이 된거다.
막상 크로스핏을 하려니 그렇게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아님 내 자체가 긴장 그 자체가 된 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긴장이 내가 되고 내가 긴장이 된, 긴아일체의 경지. 어색함도 장난 아니었다. 나는 원체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낯선 공간에 들어서면 구석에 앉아 쭈굴이처럼 앉아있는 편이다. 그날도 그랬다. 코치님이 탈의실을 알려줬고 옷을 조심스럽게 갈아입고 조심스럽게 앉아있었다.
수업 시간이 되면 어딘가에 있던 코치님이 나오신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내 첫 수업은 시작되었다.
첫날의 와드(Workout Of the Day)는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셔틀런(왕복 달리기)가 있었고 로잉을 타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흔히들 다이어트핏, 부트캠프 정도 됐던 것 같다. 동작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땀은 칼에 찔린 듯 철철 흘렀다. 첫날의 나는 처참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작도 많이 못 하고 옆 사람들 눈치만 보기 바빴다. 지금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On Off 형(일정 시간 동안 움직이고 일정 시간 동안 쉬는 운동. 정확한 명칭은 모르나 나는 OnOff형이라 부른다) 운동은 꾸준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 운동인데 나는 내 수준도 모르고 무조건 빨리 움직이려했으니 체력이 남아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운동에게 처참한 패배를 하고 말았다. 그 맛은 너무나도 썼다. 내가 운동신경이 없지 않은 편인데 고작 이런 운동에 굴복해야하다니. 운동이 끝나고 샤워장에서 땀을 씻어내며 허탈감만 느꼈다. 그러다 분노가 치밀었다. 나에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나는 그래서 나오자마자 바로 3달을 등록해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는 없었다.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했다. 공부를 하고 학원에 가고 학원이 끝나면 바로 박스로 갔다. 그때는 박스라는 단어도 모를 때였다. 그때를 생각하면 운동이라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는 한 것 같다. 운동을 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으니 다른 말로 하면 뇌에 쉬는 시간을 부여한 것과 같은 것이다.
나의 시작은 비록 보잘것없었다. 이 운동이 무슨 운동인지도 모른 체 약 20분간 구른 것이 전부다. 그 짧은 20분이 나에게는 전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서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의 내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아니지만. 쉽사리 어떤 일을 도전할 수가 없다.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먼저 나를 덮쳐온다. 하지만 정말 시작이 반.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미래를 볼 수도 없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비록 내가 이 운동 때문에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팔꿈치가 아파 역도 동작을 하기 전에 스트레칭에 더욱 힘을 들이지만, 나는 이 운동을 선택할 것 같다. 나는 핸드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하듯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