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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line May 06. 2024

크로스포인트

3. 인과연

 세상에는 참 많은 운동이 있다. 축구, 농구, 테니스, 골프, 헬스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자신의 운동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항상 이야기해 준다. 자신만의 운동을 찾으라고. 자신의 운동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게 무슨 운동이 됐든 상관없다. 그 운동으로 인해 재미를 느끼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는 크로스핏이 그랬다. 아니, 어쩌면 이 길로 이끄는 사람들이 그랬다. 솔직히 이 운동 힘들다. 재미를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데 다하는데 까지 시간도 얼마나 걸리는가. 또 이 기록을 단축시키는 것이 크로스핏의 궁극적인 목표니 적응이라는 것이 없다. 적응도 되지 않는다. 적응되는 와드가 없다. 타켓으로 하는 부위가 아릴 정도로 아프다. 하지만, 나를 이 운동으로 이끈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이 운동을 한다. 

 부산에서 크로스핏을 시작한 박스에서는 헤드코치님이 내 첫 크로스핏 인연이었다. 물론 같이 운동한 형들도 인연이다. 다들 크로스핏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시간표를 보면 점심시간은 OPEN GYM이라고 되어있고 이 시간은 비어있다. 이 시간에 코치님들이 운동한다.

 어느 날이었다. 1년 차였는지 2년 차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누군가에 이끌려 코치님과 형들과 운동을 했다. 그때 알았다. 와드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앞에는 스트렝스라고 하는 근력운동이 껴있고 그다음 컨디셔닝(와드)을 하고 마무리로 액세서리라고 하는 보강운동을 한다. 뭣도 모르는 처음에는 따라가기 바빴다. 학생인 신분이었으니 시간은 넉넉했다. 적힌 와드를 보고 그냥 움직였다. 지금에야 매일 그런 방식으로 하니 익숙해졌지만 그때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 자세도 처참했다.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목표치는 달성한 것이었다.

 매일 힘든 운동의 연속이었다. 지겨운 운동의 반복이었다. 반복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 날 들어본 그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그 무게로 와드를 해낸다. 어느새 나도 버터플라이 풀업을 한다. 이제는 머슬업도 하나씩 해낸다. 기록도 나쁘지 않다. 물론 내가 항상 꼴찌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항상 운동이 끝나면 가지는 식사타임, 커피타임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1년이 갔다.

 모든 인연이 그렇다. 평생 함께 갈 순 없다. 물론 반론도 있다.


 ‘나는 영원하던데?’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생각보다 영원하게 이어지는 관계는 별로 없다. 센터도 영원하지 않다. 믿고 따랐던 코치님이 떠나니 센터에 대한 애정도 떨어졌다.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센터로 옮겼다. 

 나의 두 번째 인연은 시작됐다. 바로 그 센터 코치님들이었다. 대학가인지라 다들 내 또래였다. 다들 운동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더 재밌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쉬는 날이면 그곳에 가 코치님들과 함께 운동했다. 그때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공부에는 관심 없었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밍기적거리다 점심쯤에 운동을 간다. 다들 모여 커피를 한잔 하는 동안 헤드코치님이 그날의 프로그램을 짜주신다. 

 그때는 프로그램도 잘 없었다. 정보의 편차가 심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지금에야 다양한 곳에서 각자의 프로그램을 팔고 있고 생각보다 각자의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그때는 그 당시 나와있던 프로그램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나 보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대학생이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그날에 적힌 프로그램대로 움직인다. 프로그램을 다 하고 나면 저녁수업시간이 시작된다. 나는 구석으로 가 매트를 편다. 몸을 쭉쭉 찢어주고 폼롤러로 돌려준다. 한 30분. 스트레칭이 끝나면 그제야 집으로 간다. 센터에 들어가 나오기까지 4시간 정도가 걸렸다. 나는 운동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운동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나는 운동에 미쳐 살았고 운동에 대한 성장을 이뤄냈던 것 같다.

 그때는 코로나가 심한 시기였다. 나는 서울로 넘어왔다. 고속철도를 탔을 때, 내가 탄 칸에 나 혼자였고 서울로 와 지하철을 탔을 때도 그 안에는 나 혼자였다. 정말 편하게 왔다. 

 이사를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크로스핏 센터를 찾는 일이었다. 네이버지도를 켜 검색칸에 크로스핏을 친다. 다양한 곳이 뜬다. 하나하나 다 들어가 봤다. 센터를 보고 나면 바로 인스타그램으로 그 센터를 검색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나니 크로스핏이 적혀있다고 해서 다 좋은 센터가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다. 어떤 센터는 기구의 종류가 많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센터는 코치님의 실력이 생각보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코칭은 수업을 들으면 알지만 센터 내 시설은 인스타그램으로 보면 대충 보인다. 회원들은 코치님의 거울이다.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센터는 없었다. 그러다 한 센터를 찾았고 체험신청을 했다. 하지만 때마침 체육시설 폐쇄령이 떨어졌고 나의 체험은 뒤로 밀렸다. 

 지금 다니고 있는 센터를 방문했을 때 일단 높은 층고에 놀랐고 크로스핏에 사용하는 머신이 다 있었다. 물론 전부라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센터에 없는 것은 정말 필요 없는 것들 뿐이었다. 예를 들어 대회영상을 보면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 다니는 기구인 요크라던지 정말 1년에 몇 번 나올까 말까 한 것들만 없었다. 아니, 아예 필요 없는 도구들만 없었다. 코치님도 훌륭하신 분이었다. 나의 크로스핏은 아직 마치지 못한 문장이었다. 마침표는 없었다. 

 이 센터에서 느낀 점은 핀포인트레슨이었다. 코치님은 경력도 좋았고 개인적인 역량도 너무 훌륭한 분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키포인트로 하나씩 집어주는 것은 나에게는 정말 1시간의 수업보다 좋았다.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어썰트바이크를 타는 법도 잘 몰랐다. 이전에는 센터에 하나씩 있어서 생각보다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을 물어봤을 때도 코치님은 손잡이를 당기는 것이 아닌 미는 것이라 알려주셨다. 로프를 타는 법도 이곳에서 배웠다. 로프를 상체만으로 하는 운동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생각이상으로 하체도 정말 중요하다. 내가 발을 거는 높이에 따라 상체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달라진다. 나는 이 모든 것은 코치님에게 배우고 코치님을 보며 배웠다. 

 이 센터를 다니며 정말 감사했던 것은 자유였다. 다른 센터들은 수업을 듣지 않고 개인운동하는 것을 보통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은 수업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떻게 운동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편한 시간에 길고 긴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수업시간에 사용한 공간을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사람이 차지하고 있으니…

 혼자 운동을 하던 중 나를 제외하고 모여 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 거는 것도 싫어하고 누군가가 먼저 다가오는 것도 생각보다 경계심이 심하다. 그래도 뭔가 무리에 끼고 싶은 그 느낌…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는 그 느낌…그중 한 형이 나에게 같이 운동하자고 말을 걸어줬고 그렇게 나는 새로운 인연을 시작했다. 그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나는 여기서 내 모든 자세들은 깎아나갔다. 역도도 그렇고 정말 자세를 많이 고쳤다. 특히 역도 자세의 경우에는 정말 좋아졌다. 그 덕분에 다른 곳에 드롭인을 가도 욕을 수준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9년이라는 세월을 달리고 있다. 운동이라는 것은 이젠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의 큰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 운동으로 마음을 달래고 생각이 많을 때, 운동으로 생각을 일시정지하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운동으로 그 희열을 다시 올린다. 러너스 하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나는 와드가 끝나면 같은 기분을 느낀다. 몸에 수도꼭지를 켠 듯 땀을 콸콸 흘리며 누워 눈을 감고 숨만 깔딱깔딱 쉬고 있는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이유 모를 곳에서 올라오는 희열감을 느낀다. 나는 여기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여러분도 자전거를 타든, 축구를 하든, 테니스를 치든, 요가를 하든, 명상을 하든 어떤 운동이든 상관없다. 다양한 운동을 해보시고 인연을 만났으면 좋겠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나의 의지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다가오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나도 모르게 다가가는 것인 것 같다. 정말 전자의 이끌림처럼. 자연의 법칙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인연을 만날 확률을 높여야 한다. 다양한 운동을 해보자. 중간에 관둬도 이야깃거리는 생기는 거니 그것만을 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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