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1929-)은 1986년 출간된 저서「Biophilia」에서, 인간은 생명을 사랑하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든 아니든, 인간이 생명, 특히 동물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우리 인류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시나 소설 등의 문학 작품,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 작품 등이다. 그동안 인류는 동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많은 문학 및 예술 작품들을 창작해 왔다.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하여 사자, 백조 등의 모습을 찬미했고, 어니스트 시튼(Ernest Seton, 1860-1946)이 동물에게서 영감을 받아 기술한 소설들은 아직까지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무엇보다 인류 최초의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굴벽화에도 동물들의 모습이 잦은 빈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에도 인류가 동물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또한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동물원에 데려가며, 어린아이들은 동물들을 동경한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보며 자랐으며, 개미, 물고기, 새 등 주변 동물들의 행동에 호기심을 가지며 성장했다. 앞서 인류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말했는데, 내가 동물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은 동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동물이 가지고 있는 비밀의 허물들을 하나하나 벗기는 것이다. 개미의 사회생활에 대해 알게 된 후 개미의 행동을 관찰하니 개미가 더욱 경이롭고 느껴졌고, 새가 노래하는 이유를 알게 된 후 새의 노래가 더욱 아름답고 들렸다. 동물의 행동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들의 행동은 더욱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껴진다. 또한 동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많아지고, 동물의 행동 및 동물 그 자체에 더욱 매료된다.
동물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동물행동학(ethlogy, behavioral biology)이라고 한다. 나는 동물행동학의 연구 성과 덕분에 지금까지 동물들의 행동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동물에 더욱 빠져들었다. 또한 앞으로 동물의 행동과 생태에 대해서 연구하고,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꿈과 계획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동물행동학을 과학적 학문으로 정립한 것은 니콜라스 틴베르헌(Nikolaas Tinbergen, 1907-1988)과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다. 이들은 동물행동학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공로로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 1886-1982)와 함께 197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나는 이들 중 특히 콘라트 로렌츠의 삶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동물의 행동에 대한 연구는 미국의 찰스 휘트먼(Charles Whitman, 1842-1910)과 월리스 크레이그(Wallce Craig, 1876-1954) 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휘트먼의 주 관심 분야는 진화와 유전이었고, 동물 행동에 관한 논문은 2편에 불과했다. 크레이그는 스스로는 생물학자라고 생각했으나 심리학과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지적으로 고립되고 말았다. 물론 심리학계에도 동물의 행동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가 있었으나, 이들은 주로 동물의 심리에 치중하였으며, 동물 행동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동물의 행동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계와 심리학계의 공존으로 이루어졌다. 생물학계와 심리학계는 1911년 학술지 「Journal of Animal Behavior」을 창간하는 등 소통을 위해 힘썼지만 이 학술지는 오래가지 못했으며, 생물학계와 심리학계 어느 쪽에서도 동물행동 연구에 대한 통합적 시선과 학문으로서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콘라트 로렌츠는 이렇게 동물행동 연구가 태동하던 190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형외과 의사로 성공했고, 그를 통해 축적한 부로 별장을 로렌츠가 태어나는 해에 완성하였다. 별장의 마당에는 두루미와 오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새들이 있었고, 새장에는 앵무새, 카나리아 등이 있었다. 수조 또한 집안에 가득했고, 로렌츠는 어릴 때부터 동물들 사이에서 자랐다. 로렌츠는 자연스럽게 동물에 매료되었다. 로렌츠는 김나지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어릴 때부터 그를 매료시킨 동물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동물학과 고생물학을 전공하기를 희망했지만, 금전적인 문제를 우려한 아버지에 의해 미국에서 의학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영어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아버지의 별장 또한 그리워진 로렌츠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전공은 여전히 의학이었지만, 별장으로 돌아온 로렌츠는 다시 동물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관찰일기 작성에도 몰두했다. 1927년, 친구들이 몰래 그의 관찰일기를 정리하여 학회에 몰래 보냈고, 이 원고는 학회지에 논문으로 실리게 된다. 이 논문 덕분에 로렌츠는 평생 동안의 스승 어윈 슈트레제만(Erwin Stresemann, 1889-1972)과 오스카 하인로트(Oscar Heinroth, 1871-1945)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1934년, 로렌츠는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되는데, 바로 의학과 동물학의 갈림길이었다. 해부학 조교로 일하는 도중, 담당교수가 해부학 조교 이외의 모든 활동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로렌츠는 고민 끝에 슈트레제만의 조언을 얻어, 동물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콘라트 로렌츠를 동물행동 연구 분야의 핵심으로 만든 논문이 있는데, 1935년에 나온「Der Kumpan in der Umwelt des Vogels」이다. 이 논문은 새의 행동에 대해 기술하고 있었는데, 동물행동학의 정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논문의 핵심은 유발자극(specific releasing stimulus) 이론이다. 본능은 특수한 유발자극을 필요로 하고, 종 특이성과 고정된 행위 양상을 가지며, 진화적으로 볼 때 생존에 이득을 준다는 특성이 있다. 특수한 유발자극은 본능을 반사운동 등과 구별하는 데 쓰이는데, 본능의 다른 특성들은 반사운동 등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물은 특수한 유발자극에 대해 보통 선천적으로 반응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몇 년 후 유발자극에 대한 획기적인 발견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그 발견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 결과적으로 동물행동학의 학문적 정립을 낳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일부 유발자극에 대한 반응 방법을 타고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방법을 일생 초기에 특수한 시기에 배울 때 이를 각인(imprinting) 현상이라고 하며, 이 특수한 시기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고 한다. 로렌츠는 새끼 회색기러기에게서 이 각인 현상의 한 예를 경험했다. 갓 부화한 새끼 회색기러기들을 어미에게 옮겨 주려 했더니, 새끼들이 소리를 지르며 거부했다. 회색기러기의 본능은 태어나서 본 첫 번째로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때 유발자극은 첫 번째로 움직이는 물체이다. 회색기러기 새끼는 로렌츠를 제 어미로 각인한 것이다. 로렌츠는 이후 이 현상을 더 연구하여, 각인은 결정적 시기 동안에만 형성되며 한번 형성되고 나면 그 대상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로렌츠는 자신을 어미로 각인한 이 회색기러기 새끼를 어떻게 했을까? 그는 이 회색기러기에게 마르티나에게서 이름을 지어 주고, 어디를 가든지 데리고 다녔다. 마르티나는 로렌츠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로렌츠는, 마르티나를 관찰하면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37년, 로렌츠와 틴베르헌의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다. 둘은 서로 달랐다. 로렌츠는 직접 키운 동물들을 관찰했다. 그는 실험을 싫어했으며, 오로지 관찰을 통해 연구 성과를 냈다. 틴베르헌은 자연 상태의 동물을 탐구하는 것을 즐겼으며, 필요하다면 실험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둘의 이런 차이는 놀랍게도 서로를 훌륭히 보충해 주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마르티나를 비롯한 회색기러기를 연구했다. 회색기러기가 알을 굴리는 방법을 선천적으로 알고 태어난다는 것을 발견했고, 알을 굴리고 있는 도중에 알을 빼내도 계속해서 알을 굴리는 동작을 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두 과학자는 이 현상을 본능적 동작과 외부 자극에 의한 동작으로 분리하여 서술한 논문「Taxis und Instinkthandlung in der Eirollbewegung der Graugans」를 발표한다. 이 논문은 두 사람의 다른 탐구 방법이 합쳐져, 자연 상태와 사육 상태, 관찰과 실험이라는 동물행동학의 방법론이 모두 어우러져 있었다. 따라서 동물행동학은 이 논문을 통하여 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을 통하여 동물행동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이후 동물행동학의 본격적 시조라는 공로로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받는다.
자연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감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한다. 따라서, 자신의 연구 대상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로렌츠의 경우에도 그러하였고, 동물들을 지키는 방법은 생태계 자체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로렌츠는 생태계를 보호하려고 힘썼다.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배수 구덩이를 만들면서 한 습지를 없애 버리자, 로렌츠는 배수 구덩이를 도로 메워 습지를 복원하였다. 또한 호르토바지 대초원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보호하는 데 기여하는 등 많은 생태계 보호 활동을 했고, 한편으로는 연설 등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생태계 보호에 대한 생각을 전파했다.
나는 로렌츠가 정립한 동물행동학으로부터, 동물 행동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동물 행동에 대한 호기심을 동물 행동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함으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로렌츠의 생태계 보호 운동에서부터 생물학 연구자는 자신이 연구하는 생물 및 전체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여러모로 나는 로렌츠의 삶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앞으로 동물의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꿈을 얻음으로써 좋은 생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쌓았다. 나는 실로 로렌츠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로렌츠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동물행동학 연구 결과는 타 과학 분야에 비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동물행동학을 통해 사람들이 동물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됨으로써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게 된다면, 스스로 동물들과 생태계를 지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로렌츠는 동물행동학을 정립하고 스스로 생태계 보호에 힘씀으로써 본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동물 및 생태계 보호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고, 알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로렌츠의 삶을 따라가며 느낀 것이 하나 더 있다. 생물학에서도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사이의 학문적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지만, 로렌츠와 틴베르헌, 프리슈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은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거시생물학 분야에서의 수상이다. 동물행동, 진화, 생태 등의 주제가 노벨생리의학상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인간과 공동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인간이 아직까지 선사 시대에 최적화된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물의 행동과 진화를 연구하는 것이 인간을 비추는 거울로서 인간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이 생태계의 일원이며 현재 생태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이라는 점이나, 인간이 생태계와 생물자원으로부터 삶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단하면, 생물다양성이나 생태계에 인간이 끼친 영향 등을 연구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인류의 운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노벨생리의학상은 생리학 및 의학 분야를 발전시켰거나 해당 학문을 이용하여 인류에게 이득을 안긴 학자에게 수여된다. 거시생물학은 인간 생리를 이해하는 다른 관점을 제공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인류에게 존속 여부를 포함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거시생물학 분야의 연구자에게 노벨생리의학상을 안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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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0041&cid=42433&categoryId=42433).
13. 원재훈, 콘라트 로렌츠,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176),
2016. 2016-08-12.
※이 글은 2016년에 쓰여진 글로써, 브런치 작가신청을 위해 제출된 글입니다. 공개적으로 읽히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습작처럼 쓴 글이라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많이 영글지 못한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