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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주호 May 24. 2021

나의 피터팬 이야기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피터팬

 

 한때 나는 내가 피터팬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당시의 나는 아주 어려 <아기공룡 둘리>를 본 후엔 둘리였고 <미운 오리 새끼>를 읽은 후엔 백조였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소년은 평생 소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른다. 가끔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머리가 꽤 굵은 후, 소년의 자격을 잃기 직전이 되어 주위에서 슬슬 어른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하며 내가 절대 피터팬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피터팬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른이 되지 않고 싶었다.

 

어른의 의미

 

 그러던 사이 시간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다. 법적으로 여러 가지 제약이 풀려 술과 복권 등을 살 수 있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 효력이 생기고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법적으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나는 법적으로 어른이다.

 국어사전에서 ‘어른‘이라는 단어를 보면 다섯 개 정도의 뜻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두 개는 단순히 나이나 항렬 등으로 윗사람이거나 타인의 아버지를 높일 때 사용된다. 그것을 제외하고, 어른의 사전적인 의미 셋 중 하나가 ‘결혼을 한 사람’이다. 본래 어른이라는 말은 ‘얼운‘에서 나왔고, 이 말 자체가 ‘짝을 이룬’ 것을 이른다. 어원을 생각하면 가장 근본적인 의미라고 할 수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어른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양상과는 가장 동떨어진 의미이다.


어른의 ‘진짜‘ 의미와 피터팬 증후군

  최근에 <피터팬 증후군>과 같은 단어가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피터팬처럼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고 싶어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나와 그들이 피하고자 했던 어른은 위에서 말한 법적이나 사전적 의미는 아닐 것이다. 법적으로 권리가 생긴다는 것은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법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어른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뜻 중 가장 주된 것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책임이 생기고 여러 가지 신경쓰고 걱정해야 할 것이 많아지는 어른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보통 여기에 있어 자신 내부의 원인보다 외부의 원인에 좌우되는 비율이 커진다. ‘돈’이나 ‘명예‘라든가 ‘현실’과 같은, 어린 시절엔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해야 하지도 않았던 내 외부의 것들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피터팬

 

 솔직히 내 욕구는 피터팬처럼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피터팬처럼 ‘계속 소년이고 싶다’에 가깝다. 나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 사회적으로 ‘어른이 되어라‘는 말은 ‘이제는 꿈의 크기를 줄여야 할 때이다’나 ‘포기하는 법을 배워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것 같다. 흔히들 어린 시절에 가지고 있던 순수함과 반대되는 의미다. ‘어른이니까’라는 말에는 많은 말들이 함축되어 있고, 그 말에 둘러쌓이다 보면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돈을 위해‘ 등이다. 자의로 포기하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지만,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게 된 사람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결국 어른이 되는 건가

 

 나의 두 번째 대입 시험이 끝나고 어쩌다 보니 의과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의대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내게 가깝고 먼 친척들과 지인들이 여러 설득의 말을 건넸다. 말은 제각각이었지만 놀랍도록 비슷했다. 설득의 근거에 ‘나‘는 없었다. 다들 나의 특성이 아닌, ‘사회적 지위’라거나 ‘평균 소득‘, 심지어 ‘결혼 시장’까지 세속의 기준에 맞는 이유를 댔다. 동물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망에 고집을 부려 끝내 수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 이후로 예닐곱 정도 계절이 지났다. 이제 나는 내 내부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 야생동물 보전에 대한 꿈이 간혹 더 윤택하고 명성있는 길인 반려동물 진료업 등에 위협받는 기분이 든다. 어느 사이에 나도 어른이 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이제 나는 내가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의 논리에 의해 내가 가장 큰 울림을 느끼는 야생동물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찌 보면 시간이 흐르며 사회경험이 많아지다 보면 내부 원인보다 외부 원인에 영향받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외부 원인을 파악하는 것에 더 익숙해질 것이고,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내 꿈에 더 가까워지는 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의 통찰력을 이용해서 소년의 꿈을 이루고 싶다. 사실 어른과 소년은 양립불가능하지 않다. 어른에 대해 아주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소설 <어린 왕자>를 보면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소년일 때를 기억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소년의 꿈을 간직해 어른으로서 이뤄나갈 것이다.

 한편, 앞서 말하지 않았던 국어사전상 어른의 마지막 의미를 말하려 한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바로 어른의 마지막 뜻이다. 존경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내가 꿈을 잃지 않고 정진하면 사전적 어른도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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