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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우기 Dec 14. 2021

167만 유튜버를 만나다.

"여기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직원은 나를 앉혀 놓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167만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사무실, 그 한복판에 나 혼자 앉아 있었다. 넓은 오피스텔 한가운데 네모 반듯한 책상 4개가 붙어 있었고, 주변에 보이는 몇몇 자기 계발 책들 그리고 책상마다 모니터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사무실 치고 생각보다 깔끔했다. 이곳에 매일 나와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했다. 그들이 쓰는 컴퓨터나 마우스 키보드를 보며 나도 나만의 데스크 인테리어를 상상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을 살펴봤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엔 모니터 대신 물과 과자가 세팅되어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이 최종면접에 붙으면 바로 이 자리에 앉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며칠 전부터 떨리던 심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자기 계발이나 경제 쪽 관련해서 유튜브를 보는 사람은 <신사임당>이라면 눈이 동그레 진다. 자수성가한 평범한 부자, 성실한 사람, 165만을 넘은 구독자. 내가 아는 부자 중에서 살아있고 배울 것이 있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곧 있으면 만난다. 이 면접을 잘 보면 나도 그쪽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생 반지하 인생을 살아온 내가 올라갈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건 면접에 대한 떨림과 팬으로서 스타를 만나는 설렘, 그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게 꼬인 전선처럼 잔뜩 뭉쳐있는 마음이었다. 너무 떨려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일기장을 폈다. 나는 면접장에서 일기를 쓰는 남자다...



'면접을 기다리고 있다.'



첫 줄을 쓰자마자 직원이 나왔다. 그 뒤로 모든 건 순식간에 흘러갔다. 방 안엔 신사임당 님과 직원 두 분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유튜브를 통해 매일 듣던 목소리라 그런지 너무 익숙했다. 마치 게스트로 출연한 듯했다. 뭔 말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조리 있게 말하기 위해 불필요한 어미나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 단문을 말했다. 이곳에 내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하게 어필하기 위해서. 사실 자기소개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말하는 나도 듣는 그들도 자기소개가 궁금해 보이진 않았다. 이번에도 그들은 한 귀로 내 소개를 듣고 한 귀로는 나에 대해 평가할 주요 포인트를 복기하는 것 같았다. 



 "글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최종면접을 오기 전 1차, 2차 테스트가 있었다. 1차 테스트는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 2,000자 한편'이었고, 2차 테스트는 '기획안 3개'였다. 나는 1차와 2차를 통과했고 그래서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이 모집에 몇 명이 지원했는지 아세요?"

"아니요."

"1,000명이에요."

"정말요?"

"네. 그리고 그중에 지욱 씨 글이 가장 좋았고, 독특했어요."



그는 2차 기획안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1차 기획안인 2,000자 글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면접이라기보다 내 글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내는 자리 같았다.



"글이 뭐랄까... 정말 아름다웠고, 유일하게 영상으로 만들고 싶은 글이었어요. 이런 글은 가르친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쓰시죠? 일기 18년 쓰셨다고 했죠? 일기 쓰면 이렇게 되나?"



내가 했던 것은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이거나 손으로 무릎을 비비는 것 말곤 없었다. 이게 잘 돌아가는 상황인지 나쁘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내 글을 가지고 여러 가지 상상과 아이디어들이 오고 갔다. 새로운 느낌의 프로그램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정작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직원들과 사장은 그들만의 프로젝트를 상상하며 나와의 가능성을 맞춰보는 것 같았다. 마치 춤은 춰보지도 않고 내 몸만 보고 어떤 음악에 어떤 스타일이 어울릴지 상상으로 안무를 짜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없는 면접이 끝났고 면접이 마무리될 때쯤 신사임당 님은 본인의 폰을 꺼내 내 번호를 물어보셨다. 나는 내 면접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내 번호와 이름을 그의 휴대폰에 저장했고, 공손히 인사를 한 뒤 나왔다. 시간을 보니 내가 문을 들어가고 나서 정확히 27분이 지났다. 



27분이 270분 같았다. 건물을 나와 집으로 가며 면접 때의 상황을 복기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내 글을 좋게 봤다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제야 기쁨이 올라왔다.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왔던 읽기와 쓰기가 드디어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한 달에 이 정도 번다면,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해서 진급한다면 이 정도 모을 수 있고, 그럼 몇 년이면 반지하는 벗어나겠구나...' 돌아오는 전철에서 설레고 기쁜 마음에 앉지도 못한 채 내내 서서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집에 왔다.



"죄송합니다... "



문자는 1시간 전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면접의 흥미진진한 상황을 전화로 H에게 털어놓는 사이, 혼자 일기 몇 줄을 쓰고 설레는 상상을 이어서 조금 하던 사이, 자축을 위해 치킨을 시키는 사이 탈락 문자는 이미 와 있었다.



몇 번을 읽었다. 문자가 잘못 온 거 아닐까? 다른 사람과 나를 헷갈린 게 아닐까? 분명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 특히 대표인 신사임당이 내 글을 그렇게 칭찬했는데... 충격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곧 면접 상황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밝았던 대표님의 얼굴과 다르게 덤덤했던 직원들. 2명을 뽑아야 하는데 지욱 씨와 함께 할 분을 뽑는 게 어려워서 고민이 된다는 신사임당 님의 말... 



그렇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일할 직원 2명을 뽑는 게 중요했다. 기존의 직원들과 잘 섞여 일을 잘할 수 있는 직원 2명. 실력 있고 못 어울리는 한 명이 아니라 어울릴 수 있는 직원 2명. 글이 뛰어나든 아름답던 나는 그 2명 중에 들어갈 순 없던 것이다.



달콤했던 하루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자축을 위한 치킨은 순식간에 위로의 치킨이 되었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억울하지도 않고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저 씁쓸했다. 



토요일 저녁.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고, 내 앞엔 뜨겁고 빨간 양념이 발린 치킨을 놓여있다. 포크로 쿡 쑤셔 가장 큰 한 조각을 들어 콱 뜯었다. 내 마음이 어떻든, 면접이 어떻든 치킨은 달콤했다. 작지만 그 순간 당장 필요한 위로였다.



상상하던 미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남은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내가 선택한 책 읽기와 글쓰기가 타인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남았다. 최종면접에 '불러줄 만큼'은 쓴다는 것이니까. 다음엔 최종면접에 '합격할 만큼' 쓰면 되는 것이다. 그래. 더 실력을 쌓으면 되는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이건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다. 그저 과정이다.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한 여름밤의 꿈같았던 27분간의 만남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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