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지우기 Jan 11. 2022

'네가 좋아서' 보다는 '기억을 만들고 싶어서'

셰익스피어 소네트 3

A  거울을 바라보며 거기 비친 얼굴에게

B  또 하나의 얼굴을 만들 때라고 해요.

A  새 모습을 지금 다시 안 만든다면

B  세상을 기만하고 모성을 거절해서,


C  어떤 예쁜 여자의 갈지 않은 자궁이

D  당신의 농사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C  어떤 못난 사람이 자기한테 무덤이 돼서

D  후손을 막을 만큼 어리석게 되겠나요?


E  당신은 모친의 거울이라 당신을 보고

F  모친은 자신의 예쁜 사월을 보겠군요.

E  그래서 당신은 주름살도 아랑곳없이

F  노년의 창을 통해 황금기를 보겠지만,


    G  사는 동안 기억을 남기지 못한다면

    G  당신과 함께 그 모습도 죽어버려요.



우리는 언젠간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중 하나다. 우리를 세상에 남기는 것은 우리를 기억하는 누군가다. 그게 자손일 수도 있고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일 수도 있고 영상이나 미술작품으로 나를 기억시킬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이 세상에 남겨 놓은 기억을 통해 미래와 공명한다.



기억을 소재로 한 SF 장르물이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고레이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1999) 다. 죽은 사람들이 일주일간 머물며 이승을 완전히 떠나기 전 살아생전 가장 소중한 기억 한 가지를 선택해 가져 간다는 판타지적 줄거리와는 상반되게 영화의 톤은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인터뷰가 대부분이며 그들의 기억을 준비하는 관리자들의 모습은 보통의 영화 제작사처럼 묘사한다.



애절한 사랑도, 긴장감 넘치는 스릴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그 잔잔한 호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그것은 아마도 기억이 가진 힘, 우리를 공명 시키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기억이지만 그것이 언젠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그것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뭉클해질 때 느껴지는 그 힘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젊은 귀족 청년과 결혼을 하려는 여인의 입을 통해 연륜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한다. 자신의 젊음에 흠뻑 빠져 아무것도 모를 그 시기에 잊어선 안 되는 것. 황금 같은 그 시간들이 기억되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요즘 프러포즈할 때는 어떤 편지를 쓸까? 그 편지에 담긴 편지는 어떤 이미지 일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 줄게', '내 반쪽이 되어줄래?' 같은 전형적인 반복일까? 아니면 아예 포기해버려 시도조차 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결혼까진 아니더라도 '너와 함께 좋은 기억을 만들고 싶어'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