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난 클래식에 있어서는 문외한 중에서도 문외한에 속하는 사람이다. 클래식의 참맛을 깨우치고 말겠다며 책도 사서 읽고, 바르게 앉아 선율과 악기들의 음색이 주는 감동에 젖어보려고 한두 번 노력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고, 아직까지도 클래식은 나에게 기가 막힌 효과를 보장하는 수면 음악 이상의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 리뷰를 적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대체 나 같은 진성 ‘클알못’이 무슨 패기로 이 공연의 리뷰를 적겠다고 나섰던가? 클래식을 너무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분명 넘쳐날 것이고, 이 공연 역시도 주로 그런 사람들이 찾아왔을 것이다. 나 때문에 괜히 다른 에디터들의 기회만 뺏긴 것은 아닐까 싶은 죄책감과, 그래서 대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면 좋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틀여간 이어졌다.
결론은 필연적이었다.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자. 나는 도저히 본 공연의 악곡별, 악장별로 디테일한 감상 후기를 들려줄 수 없다. 혹시나 그런 전문적인 리뷰를 바라는 독자라면 정말 죄송하지만, 아마 당장 포털 사이트에 공연 이름을 검색하면 충분히 만족할 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클래식 공연 방문 자체가 처음인 어느 초짜 에디터의 “클래식 도전기”라고 보시면 되겠다.
클알못도 아는 바로 그 곡, 베토벤의 <월광>이 바로 첫 곡이었다. 사실 본 공연을 통틀어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이기도 한 그 때에, 정적 속에서 고개를 푹 숙인 그가 1악장의 연주를 시작했다. 나에게 그려졌던 모습은 달빛이 비치는 풍경 이전에 어떤 사람의 모습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 없는 고독하고 극도로 소심한 은둔자가 처음으로 입을 여는 순간. 그러나 2악장이 시작하자 드디어 세상 속에 어울려 살게 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소심하지만 이제 더는 어둠 속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기쁨과 긍정으로 가득한 멜로디.
3악장에서는 세상의 실체, 즉 혼란을 경험한 그의 카오스가 느껴졌다. 그의 연주에서는 원곡에서의 긍정과 부정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격정의 결정체보다는, 오로지 분노와 절규만이 느껴졌다. 거의 광기에 가까운 감정의 혼란.
두 번째 무대였던 라흐마니노프 연주에서는 그야말로 위기가 찾아왔다. 베토벤의 곡만큼 명료한 어떤 인상이 떠오르지 않아, 나의 상상력이 단순히 파편적인 장면밖에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 사실 이는 예상된 수순이었는데, 내가 라흐마니노프 곡의 감상에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별로 하고픈 말은 없지만 입을 열기 위해 말을 하는 사람처럼, 의식의 흐름으로 가득 찬 느낌.
그러나 콜로덴코의 연주는 다소 정돈된 느낌이었다. 악장마다 전해지는 감정이 조금씩 달라졌고, 뒤로 갈수록 맥락 없이 현란하기만 한 말솜씨가 조금씩 정리되는 듯했다. 거장의 악곡에 이런 평가밖에 내리지 못하는 나라서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연주자의 훌륭한 기교를 보여주기에 좋은 작곡가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1부의 마지막 곡이자 앵콜곡으로 연주한 곡은 나에게도 굉장히 익숙한 곡이었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라는 곡으로. 연주자의 실력과 해석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콜로덴코는 저는 일 없이 완벽하게 연주를 해 냈고, 아마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진심으로 감탄하며 박수세례를 보냈다. 그의 솔로 무대가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2부에서는 드디어 알레나 바에바와 바딤 콜로덴코가 함께 등장했다. 베토벤 소나타 5번 <봄>. 봄이라는 제목처럼 그들의 연주도 푸릇푸릇한 색감이 느껴졌다. 바에바의 바이올린 연주는 힘차기보다는 활기차다는 표현이 어울렸으며, 그러면서도 우아했다. 협연을 자주 들어본 사람은 아니기에 둘의 합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어렵겠지만,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각자의 색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느껴졌는데 그것이 줄다리기와 같은 긴장감보다는 프로들의 능숙한 공놀이 같았다.
이어진 생상스의 곡과 차이코프스키의 곡에서는 개인적으로 더 큰 감명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이들의 조합은 이렇게 분위기 있는 곡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바에바는 현란한 기교도 훌륭하게 구사해냈고 음악에 완전히 빠져든 그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생상스의 곡이 좀더 서정적이고 구슬픈 느낌이었다면 차이코프스키는 또 달랐다. 예습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이기도 한 이 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왈츠 스케르초 Op.34>는 마치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처럼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그들의 협주는 점점 더 매력을 더해갔다.
만일 나처럼 클래식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음악이 들려오면 반사적으로 그에 젖어드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해당 장르를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상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첫 클래식 공연을 이처럼 멋진 두 연주자의 협연으로 포문을 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