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그리고 잡담
어떤 사람에 대해 파악할 때 그의 패션만큼 직관적인 요소는 없을 것이다. 옷차림만으로도 그 사람의 직업군, 나이대, 성격, 가치관 등이 대략 읽힌다.
이렇게 보면, 많은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고민은 크게 둘로 양분되지 않을까. 첫째는 사회적 고민, 즉 사회적으로 어떻게 무난하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이다. 둘째는 개성적 고민, 오직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다.
물론 이 분류에 모든 고민이 포함되지는 않겠지만, 패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겪은 경험은 있을 것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살펴보자. 주인공 안드레아는 패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저널리스트 지망생이다. 어쩌다가 유명 패션지의 편집장 아래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패션에 대해 무감각하다며 지적받지만, 그의 눈에는 똑같이 생긴 벨트 두 개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 바닥 사람들이 웃기기만 하다.
아마 이맘때 안드레아에게 있어서 사회적 고민, 개성적 고민 모두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적당히 저널리스트다운 단정하고 편안한 옷이면 그만이다. 옷을 고를 때에 자기만의 개성적 고민이 조금은 들어가겠지만 그런 데에 시간을 오래 투자했을 가능성은 적다.
그렇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안드레아의 고민은 점점 커진다. 여기서 커지는 고민의 많은 비중은 사회적 고민이다. 이 영화에서 패션지 회사의 직원들은 (실제로는 어떻든 간에)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다.
하이힐을 벗으면 편집장 미란다에게 눈총을 받고, 언제나 그 시즌의 최신 트렌드와 아이템으로 치장하고 다닌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안드레아의 평범한 패션은 그야말로 '튀는' 것이 된다.
무난하게 패션업계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안드레아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신을 치장한다. 이런 노력으로 직원들에게 적당히 인정받는 패션이 되고 나서, 영화 후반쯤 가서는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디자이너도 칭찬할 만한 스타일링을 스스로 할 줄 알게 된다.
영화에서는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는 아마 자신이 속한 집단에 적응하고 나자 개성적 고민을 시작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저 패션지 직원 누구가 아니라, 그 중에서도 유독 괜찮은 스타일링을 하기 위한 고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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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벗어나 나의 경우를 보자면, 두 가지 고민의 비중이 여러 번 바뀌어 왔다. 그 이유는 역시 나의 외부적인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참 트렌드에 예민했던 중학생 시절과 입시에 몰입해야 했던 고등학생 시절이 달랐고, '대학생다운 패션'을 검색하곤 했던 새내기 시절과 나만의 스타일을 탐구해 나가던 고학년 시절이 달랐다. 그리고 지금은 자유로운 휴학생의 신분과 조심스러운 취준생의 신분 사이에서 갈등한다.
뿐만 아니라 나의 자존감의 차이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떨어지면 이 무서운 세상에서 나를 감추기 위해 지극히 평범한 옷을 입기도 하고, 반대로 옷으로라도 나를 강하게 표현하고자 하기도 한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그냥 그 날 그날 끌리는 옷을 입는다. 당당할 때는 오히려 남들에게 억지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각인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패션은 이런 점에서 참 재밌다. 옷은 누구나 입어야 하는 것이기에 생활의 영역이기도 하면서, 탐구하면 할수록 예술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이보다 이중적인 분야는 또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좋든 싫든 아침마다 그날의 스타일링을 고민한다. 무난하게 갈 것인가? 특별하게 갈 것인가? 두 가지 고민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느라 나는 오늘도 옷장 앞에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