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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씨네 Jun 30. 2020

<톰보이>, 셀린시아마(2011)

I love you always

I love you always


Comment tu t’appelles?
Je m’appelle Laure.


한 소년이―소녀인가?―바람을 가른다. 아빠 차에 타서 몸을 반쯤 바깥으로 내밀고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의지하여 바람을 느낀다. 이윽고 화면에 Tomboy라는 제목이 파랑, 빨강의 색감이 교차하며 나타난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그의 성장 영화 3부작 중 하나인 <톰보이>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소년의 모습을 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로레는 우연히 동네 친구 리사를 사귀게 된다. 첫 만남에 리사는 로레를 남자아이로 오해하고, 로레는 자신을 미카엘이라 소개하며 남자아이라고 속이게 된다. 그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친구들에게 폭로되고 만다.

*리사가 로레에게 “새로 이사 왔니?”라고 말한 대사는 원어로 “T’es nouveau?”였는데, 리사는 로레를 남자아이로 지칭했다. 로레의 거짓말이 리사의 말로 인해 시작되었단 사실을 한글 자막을 보고는 알 수 없기에 자막 번역이 아쉬운 부분이다.


잘 못 꿰어진 단추처럼 시작된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로레, 아니 미카엘은 어쩐지 더 자유로워 보인다. 남자아이들을 따라 웃통을 벗기도 하고 침도 뱉어본다. 물론 남자아이들이 서서 소변을 볼 때 로레는 저 멀리 숲 속으로 숨어 소변을 봐야 하고, 여자인 게 들킬까 수영복에 찰흙도 넣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로레는 미카엘로 지내는 게 더 좋다. 


성별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자유와 억압


남자아이인 미카엘은 바지를 입고 다닌다. 여자 아이인 리사는 치마를 입고 다닌다. 미카엘은 웃통을 벗고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 리사는 친구들이 축구 게임에 껴주지 않는다. 미카엘은 경기를 뛰어다니고, 리사는 친구들이 마실 물을 들고 서서 경기를 구경한다. 미카엘은 친구들과 힘 겨루기를 하고,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를 때려주기도 한다. 남자아이가 자유 속에서 성장할 때, 여자 아이는 억압 속에서 성장한다.


로레를 단순히 남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싶은 여자 아이만으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렇다. 영화 속 아이들이 노는 장면에서 로레(미카엘)와 리사의 행동만 보아도,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은 자유를 갖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로레가 수영복에 남근 형상의 찰흙을 넣었던 것은 그 자체가 갖고 싶어서가 아닌, 이 찰흙 하나로 남자아이들의 전유물과도 같은 자유를 쟁취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로레가 찰흙을 유치 보관통에 넣는 장면은, 이 찰흙이 유치처럼 성장하는 동안 거쳐가는 시기의 산물이자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남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에서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로레 역시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거짓말이었지만 ‘미카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 정의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자라는 정체성으로 자기 자신을 억압과 제약 속에 가두는 대신 자신이 만든 새로운 인물 안에서 로레는 더욱 자유로워진다. 


로레와 미카엘에 대한 가족의 시선


영화 <톰보이>의 한 스틸컷, 엄마 몰래 로레의 머리를 잘라주는 잔


가족들 중에 가장 먼저 미카엘의 존재를 알게 된 잔은 부모에게 다 말하려 했지만 자기 친구들과 함께 놀게 해 주겠다는 로레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의 거짓말에 함께 하게 된다. 미카엘의 존재를 알게 된 잔은 로레가 친구들과 노는 곳에 데려가 주는 것을 보니 ‘언니보다 오빠가 더 좋은 것 같’ 기도 하다. 잔은 로레가 자기와 놀아주는 게 중요할 뿐 로레가 밖에 나가서 여자 아이처럼 굴거나 남자아이처럼 굴거나,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로레의 존재가 중요하지, 로레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다.


반면, 로레가 이전 동네에서 남자아이들과 놀러 다니고 매일 바지만 입고 돌아다녀도 쿨 해 보이던 엄마는 사실 로레에게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계속 전달해왔다. 로레가 동네 여자 아이와 친해졌다는 말을 듣고 그간 남자아이들과만 놀더니 잘 되었다는 말과 화장한 로레의 모습을 보고 잘 어울린다는 말이 그렇다. 로레에게 집 열쇠를 줄 때에도 엄마는 분홍색 끈에 열쇠를 매달아 주었다. 엄마의 세계에서는 로레의 방 벽지를 파란색으로 하는 것까지만 허용되었던 것이다. 로레가 남자아이인 척 행동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로레에게 파란색 원피스를 입히고 로레의 친구들 집을 찾아간다.


영화 오프닝에서부터 보여주었던 아빠와의 유대 관계와 달리 엄마는 이 가족 안에서 악마 아닌 악마 역할인 듯하다. 마음 아프지만 곧 있을 개학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엄마의 변명이지만, 로레에게 꼭 원피스를 입혀야만 했을까? 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전부터 내포해왔던 그의 메시지는 이 원피스로 더욱 강렬해졌다. 엄마는 소녀 모습의,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기르고 얼굴을 가꾸는 로레의 모습을 원한다. 로레는 리사의 집에서 뛰쳐나와 혼자 숲으로 들어가고, 로레가 떠난 자리에는 로레의 파란색 원피스만이 걸려있다.



I love you always


영화 <톰보이>의 한 스틸컷, 로레(미카엘)와 리사


로레가 리사의 집에 놀러 간 날 들었던 노래는 곧 이들의 관계성에 대한 메시지가 된다. 남자아이라고 생각한 로레를 좋아하게 된 리사는 그가 여자임을 알게 되고 멀어진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첫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나무 아래에서 리사는 다시 한번 로레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이름이 뭐냐고 묻는 리사의 용기 있는 물음에 로레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용기 있게 말한다. ‘I love you always’, 너를 항상 사랑하겠다는 말처럼 리사는 지난 일들과 상관없이 다시 또 그와 친구가 되려 한다. 로레의 입가에는 미소가 남는다.










*영화 제목에 얽힌 일화*
프랑스어로 tomboy는 garçon manqué라 한다. garçon manqué는 우리나라 말로 '모자란/부족한 소년'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가 싫어 영어 단어를 제목으로 차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톰보이는 실패한 존재가 아니며 성공할 수 있는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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