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초토화시키고 그들의 가정까지 집어삼킨 독감의 광풍을 헤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가벼웁게 이사하면서 들인, 혹은 가치를 재발견한 물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리의 공간 한켠에서 가치를 발하는 물건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지겹디 지겨운, 눈을 뜨면 차곡차곡 쌓이는 집안일이라는 놈을 할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얼마나 소중한 조력자인지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물론 이 온화한 기분이란 고망이의 어린이집 등원 재개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1.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저 통 안에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평소엔 자면서 체력을 보충하다가 음식물 쓰레기가 들어오면 맹렬히 분해한다. 제품 설명에 의하면 95% 정도 분해한다네? 모든 생명이 죽어 없어지면 미생물에 의해 흙으로 돌아가는 그 이치를 확인할 수 있다. 6년 전쯤 선물 받은 건데 그때는 불가피하게 주방과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생성된 흙은 수시로 처리해줘야 하는데 그 방도를 몰라 거의 5년 가까이 방치해 두었다. 그 흙은 화단에 퇴비로 써도 좋다고는 들었는데 시댁 화단에 뿌렸다가 벌레가 들끓는 민폐를 끼친 후로는 엄두를 못 냈다.
근데 이사 와서 주방 가까이에 둘 수 있게 되자 요 녀석이 조력자로 변신했다. 생성된 흙은 그냥 일반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리면 된다는 유용한 정보를 접한 것도 한몫했다. 사과 깎아 먹고 껍질 그대로 슉~, 마라샹궈 시켜 먹고 남은 찌꺼기 그대로 탈탈~ 하면 끝. 일쓰처럼 버리면 된다. 역한 냄새가 안 나니 그걸로도 최고!(물론 발생하는 가스로 추정되는 약한 악취가 나긴 하는데 비할 바가 아님)
당근으로 안 팔아버리고 전기 아낀다고 코드 안 뽑아버리고 미생물 살려둔 내 귀찮니즘에 만세! 다만 한 가지, 양이 많으면 소화를 못 시켜 땀을 빨빨 흘리는데(진짜 뚜껑까지 물이 주르륵) 소화불량일 때 하루 이틀 단식하면 좋아지듯 며칠 문 열지 않고 그대로 두면 회복한다.
2. 전동 청소솔
출산 후 허리가 아파서 화장실 청소 편하게 하려고 산 것이다. 앞쪽에 붙은 솔이 왱 돌아간다. 그런데 두 번이나 썼을까 손으로 하는 것보다 시원치 않고 욕실 평수가 크지도 않으니 점차 방치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사 와서 베란다 구석구석을 좀 닦을 일이 생겨서 한번 꺼내봤다. 5년 전에 충전된 배터리가 아직 살아 있는 것도 놀라웠다.(하도 안 써서?) 앞이 뾰족한 솔과 납닥한 솔을 용도에 맞게 교체할 수 있어서 필요에 맞게 바꿔가며 청소를 쉽게 했다. 아 뭐야? 쓸 만하네? 그리고 내친김에 변기랑 욕조 청소도 해봤다. 왜 여기 쓸 생각을 못하고 바닥 청소만 몇 번 해보다 말았는지. 허리 안 아프게 청소할 수 있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하얗게 광이 나네? 그리고 락스 물에 담그고 돌리니 솔도 깨끗이 관리되고 너무 좋잖아?
3. 리클라이너 소파
양쪽으로 두 좌석이 리클라인 기능이 있는 소파다. 원 체어 리클라이너는 고가 제품이 많아서 엄두 못 냈는데 오히려 3~4인 소파 자체에 들어간 것은 가성비 제품이 많네?
소파 용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거실 가운데 떡 하니 놓으면 이미 인테리어가 정리되는 '편한' 가구이긴 한데 늘 활용이 아쉬워서. 나란히 앉아 TV밖에 더 보냐고? 세컨드 침대용? 아무리 생각해도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정도가 효용성인데 그렇다면 한껏 편해야지. 그리고 가운데 홈바 때문에 비즈니스석 타는 기분을 낼 수도 있다. 단점은 고망이가 트램펄린으로 자주 애용하기 때문에 저 기능의 수명이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는 거다.
4. 히노끼 욕실 발판
이사 오면서 남편과 의기투합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건식 욕실을 만들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바닥이 젖어 있으면 정말 들어가기도 싫은 데다 표준보다 왕발(300미리) 남편은 슬리퍼를 신지도 않고 다녔고 고망이도 안 신고 성미 급하게 들어가다 꽈당하는 사태가 벌어져서 좀 넌더리가 났던 터다.
일단 샤워커튼을 욕조 안으로 들여서 물이 튀지 않게 조치를 취했고 바닥에 깔 것으로 뭐가 좋을까 하다가 PICK 했는데 결과는 대만족. 여러 크기로 나온 것을 조립하듯 까는 타입인 데다 뒤는 실리콘으로 가볍게 이어놔서 바닥이 젖었을 때 후딱후딱 벽에 세워두기 쉽다. 히노끼는 본시 물을 잘 흡수해 버린다. 게다가 화룡점정은 물에 젖으면 향이 더 발산된다는 것이다. J가 우당탕 샤워로, 샤워커튼을 부주의하게 들이지 않아서 물이 대거 튀고, 스퀴즈로 그마저도 닦지 않고 내빼도 히노끼 향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5. 구름 모양 스탠드
분리 수면을 시도하면서 들인 고망이 방 스탠드다. 조도 조절도 되고 색상 조정도 된다. 불을 밝혀둘 테니 꿈나라로 가자고, 구름이가 가는 길을 밝혀준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양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요즘 말로 감다살.
그리고 그 외... 나는 집이면 좀 따뜻한 맛이 있어야 된다는 주의라 세련되게 말하면 웜톤, 우리 엄마식으로 말하면 누리끼리한 색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싱크대, 소파, 쓰레기통이고 뭐시고 간에 거의 크림 내지 베이지로 꾸몄는데 몇 가지는 좀 더 나아가서 버터색으로 들였다. 이 연한 옐로, 계란색? 했을 때는 잘 모르겠다 싶었는데 상품 소개에 '버터색'으로 명명해 주니 마음에 쫙 들어차는 건 내 안에 사대주의가 있기 때문일까. 여하튼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나 버터색 좋아하네. 그리고 간단한 물건이라도 좋아하는 색으로 바꿔놓으니 기분이 한결 산뜻해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