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파트가 뭐길래

by 펑예

지난주에는 큰일이 있었다. 바로 새 집, 그것도 아파트를 계약한 것이다.


고망이가 태어나고서 몇 개월 후 우리는 주머니를 털고 난생처음 주담대를 받아 지금 살고 있는 빌라로 이사 왔다. 시댁에서 분가를 한 것이었다. 나는 본시 '내 집'에 대한 욕구가 없는 사람이라 집을 따로 장만할 여력이 안 되니 당연히 직장에서 멀지 않은 시댁으로 들어가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어머니와 사소하게 육아관이 충돌하고 아기짐이 점점 많아져 다른 곳으로 떠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우선으로 생각하는 컨디션이면서 싸게 나온 매물을 잡은 것이다.


기왕지사 사려면 무리를 해서라도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말은 뭐 숱하게 들었고 친구들이나 어린이집 엄마들, 동아리 사람들도 다수가 아파트 거주민이다 보니(어째서?) 놀이터에서 가끔 빌라 거주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갑기까지 했다.

J의 말, "자기는 아파트가 싫다고 했잖아."

그렇다. 사회의식 있는 척하는 병이 있는 나는 집을 거주 대상이라기보다 노골적인 투자 대상으로 보는 게 거부감 들었고, 모두가 똑같은 틀 속에서 다닥다닥 모여 살면서 정작 그리 서로 호의적이지 않고 이곳을 성역화해서 외부 사람들을 묘하게 배척하는 분위기도 꼴 보기 싫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서울 살이의 질을 아파트 대단지가 망친다는 골자의 다큐를 봤다. 서울이 런던이나 파리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지 않단다. 그리고 녹지 면적이 적지도 않고. 근데 왜 그토록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하며 주말에 녹지 공간으로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멀까. 바로 도심 속 많고 많은 아파트 대단지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이라네? 게다가 아파트 거주민들도 그곳을 나가는 길이 멀고 멀기에 지역 사회와 어울리고 주변 거리를 활보하는 즐거움은 잃어버리고 있단다.


여하튼. 그래서 나는 그런 재미없는, 닭장 같은, 모두가 미쳐있는 '아파트'를 무시하고 창문으로 나무가 보이는 전원주택 형 집에서 살고 싶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창문으로 나무가 좀 보이는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시세 차익, 투자 가치, 여타의 편리함 앞에 소신들이 무색하게 후들후들 흔들렸고 질색하던 무리한 대출 신청을 결심해 홀린 듯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마음껏 비웃으세요. 나도 별 수없는 자본의 노예.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선배 언니 중에 여행하면서 마음에 드는 도시가 있으면 고민 없이 그곳에 집을 구해 눌러앉는 사람이 있었다. 집은 발 뻗어 누울 수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였고 엄청난 미니멀리스트에 비혼주의자라 그것이 가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주 강정 마을로 흘러들어 돌연 강정마을 지킴이로 살다가 10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결국 새 생명이 잉태한 관계로 노마드 삶이 중단되었다. 본인은 그 결말을 다소 슬퍼했지만 감히 내가 갈 수 없는 길이라 그런지 그 삶이 참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10대 시절 나는 성년이 되면 당연히 고향을 떠야겠다고 생각했고 여행하며 사는 인생을 꿈꿨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 수도 있었을까. 최소한 서울에 아파트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것 같다. 프리랜서로활동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덜 경쟁적인 지방에서 좀 더 여유 있게 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어제는 시아버님이 방문하신 관계로 고망이가 잠든 후 J와 한밤중의 외식을 즐겼다. 야밤에 야키토리 집에 오다니 감개가 무량하고 음식도 맛있어서 흥이 잔뜩 올랐다. 대출과 이사에 대해 논의하며 비록 은행 지분이 상당하지만 어쨌거나 가능하다는 것은 그간 우리가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 아니겠냐며 서로를 치하했다.


그건 그렇고 과연 그 출혈만큼 삶의 질이 나아질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마카세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