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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꿈에 나왔다

휘성을 추모하며

by 펑예

최애? 그러고 보면 나의 '최애'라는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은 지 오래. 좋아하는 아티스트라면 물론 여럿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의 행보를 훑고 작품을 사 모으고 하는 적극적인 활동은 이제 없다. 하지만 지나간 최애라면 한 사람 떠오르는 이가 있다. 그리고 그가 엊그제 내 꿈에 나왔다. 바로 휘성이다.


꿈속에서도 그는 뭔가 안 좋은 일을 겪고 재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 같은 일반인과 동호회 자리에서 어울리는 지경이 되었다. 가수 아우라 같은 건 다 사라지고 기운이 쏙 빠진 모습이었지만 나에게 꽤나 호의적이었다.(구체적으로 어떻게 호의적이었나는 모르겠지만) 나는 와 나한테 이런 호의를 베풀다니 실제로 좋은 사람이네,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오래 알고 지낸 지인처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올드패션하게 돌아가려고. 작은 공연이나 오프라인 활동 위주로 하면서."


응, 그것도 나쁘지 않지. 난 그런 공연들 더 좋아해,라고 생각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멍한 머리로 몇 분간 휘성이 꿈에 다 나왔네, 그랬다. 그러다 현실 감각이 먼저 든 입이 그러는 거다.


"죽었지, 참."


맞아. 몇 달 전, 비보를 듣던 그 상황도 정확히 기억한다. 가게에서 디너 서브를 하고 있었고 손님 중 한 분이 옆에 있던 일행에게 눈이 동그래져서는 그랬다. "휘성 알지? 죽었대." 순간 머리가 아찔했다. 그런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최애였던 시절이 오래전이라서였을까? 꽤나 많은 죽음을 접한 나이가 돼서 마음이 그렇게 무뎌졌나.

어쩌면 희미하게 예감하고 있었나? 사실 나는 프로포폴 문제가 크게 터졌을 때 이미 '그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했었다. 내가 봐온 그는 '참 간절히도' 노래하는 사람이었고 더 잘하고 더 잘되지 못해 괴로운 사람이었다. 수년 전 히든싱어로 다시 각광받았을 때 그의 절친 거미도 그런 말을 했다. 잘하고 있는 데도 더 잘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그게 걱정된다고. 뭔가 꿰뚫어 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유리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 간절함이 그의 소울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곡을 만들고 명성을 만들었겠지만 그를 좌절하게 만든 것도 그것이다. 그리고 좌절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섰다는 참으로 바라왔던 스토리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간절함으로 노래하라는 건 많은 가수들이 흔히 말하는 가수로서의 바른 자세다. 그런데 모르겠다. 간절한 게 이제 좀 무섭다.


고망이의 긴긴 수족구 방학과 이사 준비 등으로 바쁜 와중 이 꿈은 나를 잠시 멈춰서게 했다. 나의 애도 기간은 지금에서야 왔다. 오랜만에 팬클럽 카페에 들렀다. 아직도 활성화 중이다. 실시간으로 좋았던 공연 영상과 소장했던, 멋지다고 생각했던 사진들이 올라오고 찬사와 감상평이 이어진다. 라디오에서 방금 그의 곡이 나왔다고 소식을 알리기도 한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까닭인지 무겁고 슬픈 분위기는 걷히고 그가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분위기다. 하긴 그렇다. 좀 먼 곳에 있을 뿐이고 그의 노래나 모습은 얼마든지 볼 수 있잖나. 뭘 하나 해도 허투루 하는 법 없이 간절히 부른 그의 노래는 아주 오랫동안 현생의 시공간에 울려 퍼질 것이니까. 나의 최애는 그렇게 생을 이어간다. 그걸 당신도 알길.



*다시 보는 추모 투어


서태지와아이들10주년공연영상

처음 듣고는 거의 R켈리 아들인가 싶을 정도로 그 계열의 음색이라서 그리고 진짜 흑인 같아서 놀랐던 <I Believe I Can Fly>와 R&B에 빠져들게 한 <안되나요>, 1집 수록곡에 있던 커버곡 <Incomplete>. 옛 영상이라 음질이 좋진 않지만 늘 감탄하는 라이브 영상.


24년크리스마스이브공연<안되나요>

이건 너무 슬프다, 진짜.


유스케영상<미인>

영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으로 이루어진 1집 <Like movie>에 이어 더 대박 난 2집 <It's Realslow>의 수록곡 <미인>을 유스케에서 부른 영상. 줄줄이 좋은 트랙 중에 <With Me>와 함께 최고로 꼽는 발라드곡.


환희와듀엣

<더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함께한 <Moonnight Blues>. 보컬 명문 아현직업학교 동창 환희와 오랜만에 끈적한 리듬앤블루스 한번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곡. 크게 흥행하진 못했던 것 같지만 두 보컬의 콜라보, 귀하다.


최애곡<일년이면>

MTV 트루뮤직에서 부른 <일년이면>. 저 자리에 갔고 마지막에 하이파이브까지 했던, 가장 가까이서 만났던 공연이었다.


20대시절모공연영상

어느 공연 앵콜곡이라 기억된다. 우리의 20대 시절 인기곡 미니 리퍼튼의 <Loving You>를 참 감미롭게도 불렀다. 돌고래 소리 파트를 휘파람으로 표현한 것이 백미. 한 시즌 동안 밤마다 듣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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