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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27. 2022

말라깽이 손녀 살 찌우기 프로젝트

할미의 취미는 사육

두 달만에 5kg이 넘게 빠졌다. 표준을 살짝 밑도는 몸무게인데, 할미 눈에는 말라깽이가 따로 없다. 오랜만에 본 사람들은 허리가 잘록해졌다, 다리가 얇아졌다, 얼굴이 작아졌다 등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데, 사육이 취미인 할미에게 지금의 나는 '비정상 인간'이다.


"왤케 말랐냐? 이래 가지고 일이나 하겠냐?"


할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녀의 몸 이곳저곳을 정성스레 매만졌다. 거칠지만 온정이 담긴 손이 지나간 자리가 따듯하다. 몸에 온기가 스밀 때마다 염려의 말도 한마디씩 덧붙여진다. 손목에 살갗만 붙었다, 피죽도 못 쑤어 먹은 얼굴이다, 얼굴이 빼쭈룩하다. 나를 향한 할미의 애타는 마음이 녹아있다. 하긴 나도 20대 중반 이후로는 볼 수 없었던 '4'라는 숫자를 체중계 위에서 본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었던지! 원했던 숫자에 너무도 쉽게 도달하자, '왜 그렇게 힘들게 빼려고 했나' 그간의 노력이 허망할 정도다.


이별의 순기능은 살이 빠진다는 것. 게임에 치트키를 쓴 것처럼, 내 삶에 '이별'을 입력했을 뿐인데 지방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매일 입던 바지가 헐렁해졌다는 게 왠지 모를 만족감을 줬고, 옷을 입으면 다른 때보다 태가 나는 것 같다.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지방은 부위별 선택적 감량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잘록하다'는 말은 몸에 한해서 좋은 말이다. 이를 얼굴에 적용하면? 광대와 턱 사이 깊고 깊은 골짜기 하나가 푹 팬다. 할미 말처럼 피죽도 못 먹은 곪은 이 하나가 서있다. 눈과 코는 퉁퉁 부었는데, 볼은 푹 들어갔고, 뾰족한 사각턱은 각도기로 잴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참 희한하게 생겼다' 거울을 볼 때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 요상하게 뒤틀린 나를 마주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할미는 쉼 없이 음식을 돌렸다. 할미 표 코스요리가 시작된 것이다. 회전 초밥집에 온 것도 아닌데, 음식이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짜파게티로 시작해 호박전, 과자와 요플레, 과일까지. 음식은 몸 가장 아래부터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턱 밑에까지 차올랐다. 그럼에도 난 '맛만 봐라'는 할미의 한 마디에 조건 반사하듯 삼켰다. 진짜 딱 맛만 보려고 했는데, 젓가락이 훑고 간 자리가 꽤 청결하다.


그렇게 이틀을 먹고, 자고,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팔자 좋은 나날을 지냈다. 할미는 헨젤과 그레텔의 마녀처럼 방안에 콕 박혀 있는 내게, 정해진 시간마다 먹을 걸 내주었다. 그리고 내가 잠든 새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팔과 다리에 살이 붙었는지 확인하고 가고는 했다.


"안 되겠다. 보약 지러 가자."

"응? 할미 돈 없잖아."

"돈이 중하디? 이래 가지고는 못 써."


나만 보면 돈 없다 돈 없다 노래를 부르던 할미였는데, 거금을 쓰겠다니.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번 더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할미가 사줄 거야?" "그럼 거짓말 하간디?" 돈에는 스크루지 영감보다 더 지독한 할미가 꽁으로 뭘 사주겠다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할미를 향해 확신의 눈빛을 보이며 꼭 가자는 다짐을 표한다. 얻어먹는 게 기분이 좋다. 한약방 가서 최고 좋은 약재를 써달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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