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아남은 아이] 리뷰
‘2002’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숫자다. 축구는 남자아이들이 시끄럽게 공 차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월드컵은 기쁨을, 꿈을,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축구 이야기는 어딜 가나 빠질 수 없는 단골 소재였다. 사람들은 "축구 봤어?"라는 말로 아침을 시작해, 환호성을 지르며 뜨겁게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16강, 8강, 4강. 숫자는 가파르게 올라갔다. 선수들의 기세가 타오를수록 거리는 점점 더 빨갛게 물들었고 ‘꿈은 이루어진다’는 우리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모두의 간절함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들의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반짝였다.
모든 것이 반짝거리던 그해, 나의 별은 세상을 졌다. 깜깜한 하늘, 바닥에 부딪히던 세찬 빗방울, 곳곳에 울리던 통곡 소리.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거운 공기가 주변을 메웠다. 새까맣던 날씨보다 더 어두운 사람들의 표정. 모두가 분위기에 짓눌려 하나같이 고개를 떨궜다.
그날 나는 별이 비에 젖을까, 흘러 사라질까, 품에 꼭 안고 빗속을 걸었다. 내게는 너무 큰, 날 가장 사랑해 주던 한 사람의 무게는 가벼웠고 발밑에 철벅거리는 빗물은 한 발짝도 뗄 수 없을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존재가 곁을 떠나던 날, 소리 내어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숙여진 고개 사이로 흐르는 눈물이 내리는 비만큼이나 많게 느껴졌다. 그렇게 엄마는 빗소리를 음악 삼아 사람들의 울음을 인사 삼아 먼 여행을 떠났다.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의 아들 은찬이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어제만 해도 “엄마, 아빠!”를 부르며 살아 숨 쉬던 아이는 이제 부부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는 아이가 됐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했던 은찬이와 함께하던 일상은 부부가 평생 그리워해야 하는 순간이 됐다. 아이가 떠난 자리에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지독한 그리움과 헛헛함이 남았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이를 그린다. 성철은 옳은 일을 하다 죽은 아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의사자 서류를 낸다. “아주 꼼꼼하게 준비하셨네요.” 서류 담당자가 무심히 던진 아픈 말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슬프고 그리운 감정들을 마음 깊은 곳에 묻는 듯하다. 그와 달리 미진은 아이의 흔적을 찾는다. 아이의 친구를 찾아가 생전 그가 어땠는지 묻기도 하고 그와 닮은 동생을 바라며 인공수정을 한다.
은찬이의 존재로 가득 채워졌던 일상은 그의 죽음 이후 달라졌다. 평소와 같이 하던 일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집 안에 한 공간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꼭 삶에 구멍이 나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변함이 없다. 매일 같이 해는 뜨고 각자 할 일을 찾아 바쁘게 움직인다. 부부도 그런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하며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때마다 들려오는 무심한 듯 날카로운 말들이 상처를 건드린다.
“보상은 넉넉할 겁니다.”
“보상금, 얼마야?”
“밝아 보여요. 좋아 보이네요.”
시간이 지났다고 덜 아파지는 일이 아닌데 사람들의 반응은 이상했다. 아직 아픔이 정리되지 않은, 어쩌면 평생 정리되지 않고 남아있을 이들에게는 결코 가벼운 안부 인사로 치부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가볍게 웃고 지나갔던 말들은 상처를 덧나게 하더니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아픔을 토해내듯 울고 만다.
엄마가 하늘로 간 다음 날도 참 맑았다. 먹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였고 할머니는 밭일을 갔다. 동생과 나는 평소처럼 텔레비전을 켜고 밥을 먹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평소에는 웃으며 보던 만화가 재미있지 않았고 밥을 먹어도 이상하게 허기가 느껴졌다. 문득 이 공허를 채워 줄 달달한 것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 초콜릿 먹을래? 누나가 사 올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달달함이 마음의 빈자리를 잊게 해 주길 바라며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이요.”
“엄마는 잘 보내드렸니?”
“네.”
“잘 돌아가신 거야. 할머니가 어떻게 너희 둘에 아픈 사람까지 돌보겠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잔돈을 챙겨 재빨리 가게를 나왔다. '잘 돌아가신 거야.'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잘 죽은 죽음'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수없이 꼬리를 물던 물음표를 제쳐두고 집에 돌아와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무는데 동생이 말했다. “누나, 초콜릿 맛이 너무 이상해.” 유통기한을 보니 이미 3개월이 훌쩍 지나있었다. 망설임 없이 초콜릿을 내다 버렸다. 어쩌면 난 상한 초콜릿이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계속 생각나는 이상한 말을 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지 20년이 지났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시간이다. 그만큼 당신의 얼굴은 기억 속에서 많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꽃을 볼 때마다 작은 목소리로 '예쁘다' 읊조리던 당신이, 청자켓을 입을 때마다 청자켓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그려진다.
예상치 못한 순간 당신의 말투와 행동, 해사하게 웃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날은 괜히 고개를 돌려본다. 어디선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아서, 함께했던 여느 날처럼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아서. 당신의 빈자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메워지지 않는 채 그대로 있다. 나는 아직도, 문득 당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