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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힘 Mar 05. 2023

완벽주의의 문제

마음이 다치고 관계에서 치이고 성취도 손해 보는.

완벽주의,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완벽주의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잘해놓고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해 자신을 비판하는 장면이 완벽주의자의 클리세(cliche)이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높은 기준에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와 같다. 이카로스는 양초와 비슷한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더 높이 날려고 하다가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 떨어져 죽은 인물이다. 완벽주의라는 날개를 달고 완벽에 다가가면 갈수록 더욱 힘들어진다. 언제 녹아 없어질지 모르는 날개처럼 자신의 능력은 믿음직하지 못하고 완벽에 다가갈수록 태양열에 녹아 없어질 날개처럼 자기 능력의 한계가 드러날 것 같아 완벽에 다가갈수록 더 불안해지는 역설의 함정에 빠져 있다.    

 

더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 때문에 삶의 여러 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문제만 일으키는 고쳐야 할 나쁜 습성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한 완벽주의도 있다. 완벽주의 중에도 그대로 놔둘 수 없는 완벽주의,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데리고 살만한 완벽주의, 오히려 필요한 완벽주의도 있다. 좋은 완벽주의와 나쁜 완벽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기준은 현실성이다. 현실에서 요구하는지? 자신의 능력의 한계 안에 있거나 그 한계를 넓혀서 도달한 범위 내의 기대인지? 이 두 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이 나온다면 그 완벽주의는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꼭 데리고 있어야 한다. 


완벽주의가 현실에서 필요하다면 그 현실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류가 생겨서는 안 되는 보안 분야, 의료, 환율 관리 등 완벽해야 하는  분야에서는 철저한 완벽주의가 필요하다. 몇 년 전 천만명이 넘는 회원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된 대형 웹사이트의 사례에서는 전 국민의 민감한 정보를 도둑맞아서 한국사람들의 신상정보가 해커의 나라에서 싼값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불쾌한 소문도 돌았다. 이런 분야의 완벽주의는 필요한 완벽주의이다. 


데리고 살만한 완벽주의는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분명히 그 사람의 삶에 기여하고 단점도 치명적이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안 되는 완벽주의이다. 완벽주의가 좋은 점은 동기부여와 적절한 긴장감의 유지 정도이다. 동기부여를 통해서 발전의 목표와 이를 위한 노력이 가능하다. 작은 성취에 만족하면서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쉬운 모습이 될 수 있다.  적절한 긴장은 인지기능에도 도움이 된다. 너무 심한 긴장은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서 멀쩡하게 똑똑하던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어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심하지 않은 긴긴 장감은 그 사람을 깨어 있게 만들고 한걸음 더 나가게 만들어준다. 데리고 살만하다고 판단할 핵심적인 기준은 그 사람의 삶에 잘 녹아들어 가 있는지의 여부이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삶에 너무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잘 데리고 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완벽주의의 문제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을 만났을 때 공통적인 특성은 막연함이다. ‘뭔가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이게 꼭 최선은 아닌 것 같은데 뭘 어떻게 더 해야힐지 모르겠고’, ‘그냥 막연히 부담스럽다’는 표현으로 막연함이 나타난다. 반대로 좋아졌을 경우에는 ‘꼬집어서 얘기하긴 힘들지만, 뭔지 모르게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의 어떤 분은 오히려 낯설어서 불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면담 시에도 완벽주의의 기원이나 ‘왜’라는 질문으로 다가가면 질문을 받는 분들의 머리가 하얗게 되고 말문이 막힌다. ‘그냥’이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들었고, 이런저런 애기들이 나오지만 그 얘기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한 번에 50분씩 수년간 이어지는 정신분석적 면담이 아니라면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힘들다. 이 보다는 감정이나 삶에 남기는 큰 흔적을 다루는 것이 더 나았다. 


그 흔적도 데이터가 많이 쌓이다 보니 크게 마음, 성취, 관계의 세 가지 분야로  나뉘었다. 그런데 한 사람과 면담을 할 때는 세 가지 분야가 서로 뒤엉켜서 얘기가 이어진다. 그럴 경우 갈피를 못 잡아 면담이 끝날 무렵에는 뭔가 좋은 얘기를 한 것 같지만,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완벽주의의 문제가 우리와 숨바꼭질 하는 방식은 막연함과 얽힘이고, 구체적 사례를 가지고 그에 집중해서 다루는 게 완벽주의 개선에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다. 


완벽주의의 문제의 분야 

완벽주의는 여러 면에서 문제를 유발한다. 완벽이라는 뜻과는 반대로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없게 한다. 대인관계에서도 있지도 않은 타인의 기대와 비판을 의식하다 보니 희생을 하거나 상대를 잘못 만나거나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도 잘못 길들여서 착취를 당하기도 한다. 성취와 대인관계에서 불편한데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자존감도 저하되고 우울이나 불안 같은 증상이 따라온다. 


이런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얽힌 실타래 같다. 푸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해 보인다. 완벽주의가 주는 장점도 많기 때문에 얽힌 실타래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이 그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쉽게 알 수 없다.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하지만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러나 희망도 있다. 나가는 길을 찾으려면 꼬불꼬불한 미로를 이해해야 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애써 외면해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반추를 통해서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도전을 회피해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다. 이 한 문장에 완벽주의의 문제가 담겨 있다. 반대로 답도 이 문장 안에 담겨 있으며  문제를 뒤집기만 하면 된다. 해결책은 거울을 보듯 직면하고, 상상이 아니라 현실을 직접 봄으로써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고, 쉬운 단계부터 시작하면 된다. 너무 단순하고 약간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 완벽주의의 정교하고 복잡한 심리를 희화화시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다. 지적 수준, 사회적 성취와 무관하게 회피하고, 상상으로 문제를 키우고, 주저하면서 완벽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지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거울 보고 얼굴에 묻는 티를 떼어내듯 하면 된다. 


문제의 영역들 


1) 성취


완벽주의는 성취 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완벽주의자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높은 성취를 이루지만 스스로를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하지만 완벽주의에 포함된다고 해도 인지능력이나 노력에 따라서 성취의 정도가 다르다. 성취의 정도가 어디에 있든 자기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목표가 있다면, 내가 손을 뻗으면 그 목표는 더 멀리 가버린다면 성취의 그래프에서 어디에 있든 그는 완벽주의자이다. 


완벽주의는 그 이미지와 달리 성취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성취를 방해한다. 완벽주의자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깔려 있다. 이 불안은 심하지 않으면 사람을 자극하고,  각성시키고 동기부여를 해서 멍하니 늘어져 있을 때보다는 성취도를 향상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지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더 잘하려고 하는 완벽에 대한 추구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더 나은 성취를 방해하며 이는 그 원인이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완벽주의에 내재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 능력이 있고 뛰어난 사람도 완벽주의의 방해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완벽주의의 정도가 조절이 되면 오히려 성취도가 상승할 수 있다. 


2) 관계 


완벽주의는 비판적이다. 마음속의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니 비판적이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비판적이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을 그렇게 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투사라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내가 봐도 이렇게 한심한데 남들도 그렇게 볼 것이다'라는 마음이니 약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피부 트러블을 감추기 위해서 화장을 진하게 하듯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한다. 여기서 함정은 없는 피부트러블을 감추기 위한 화장이라는 거. 


완벽주의자들은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한다. 꼰대를 놓고 보자. 대놓고 꼰대질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꼰대 아저씨들 내면에서는 자신은 그래도 순한 꼰대라는 마음으로 산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순한 맛 꼰대가 매운맛 꼰대하고 차이가 전혀 없지만 그 사람은 많이 애쓴 거다. 그러니까 남들은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하지만 스스로는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나의 노력과 타인의 불인정이 더해지면 서운함이 싹튼다. 간단하게 거절하면 될 부탁도 밤을 새우고 고민한다. 30초짜리 장면을 위해서 100번 정도 촬영을 반복하는 감독처럼 고민한다. 에너지가 소진된다. 기가 막히지만 그 부탁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도 해서 타인에게 넘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눈 앞의 사람들의 눈치가 아니라 마음 속 사람들(내적 대상)의 눈치를 더 보니까 이런 일이 생긴다. 


관계에서도  내 나름의 완벽주의 잣대가 기준이 되니까 상대의 사정이나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는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렌즈처럼 일이 어긋날 때도 많다. 그러면 그 모든 건 내 탓이다. 물론 겉으로는 내 탓이지만, 꼭 그만큼의 원망도 무의식적으로 내면에 적립된다. 중간중간 사전 조율이라도 하면 이런 원망이 조절되겠지만 그 절차가 생략되니 피로감과 원망, 자책이 범벅이 되어서 번아웃이 온다. 정리도 완벽해야 하니 어느 날 갑자기 손절하는 식이다. 중간에 싫은 소리 하기 싫어서 참다가 터트리는 거니까, 마지막에도 시시콜콜 사정 다 얘기하기 힘들다. 물론 실제로는 완벽주의자들이 독박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의 처리과정이나 결말은 '조용히 있다가 느닷없는' 식이니까 억울하게 관계의 책임을 뒤집어쓴다.  


3) 심리적 문제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높으니까 성취는 그 아래이다. 그러니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우울하다. 자존감도 상대적으로 낮다. 비록 40대가 되면 학원에서 애들을 상대하거나 동네 치킨 집 사장님으로 전업하는 분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물리학과에는 워낙 천재들이 많아서 예일대의 교수님이 "그래도 여기 올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아"라고 자존감이 저하된 천재급 학생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낮은 성취를 또다시 반복할 것 같으면 그건 불안이다. 불안은 위험을 경고하는 경보장치이다.  영화를 보면 화재 센서가 작동하면 천장에서 물이 나오고 방화벽이 닫힌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데 계속해서 비상벨이 울리고, 물이 쏟아져서 다 젖는다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완벽주의로 시달리면 그 사람의 내면은 이런 식이다. 불안이 화재경보기라면 자율신경계 증상은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답답하고 어질어질하다. 근육에 힘이 들어가니까 머리도 아프고 여기저기 결리고 아프다. 


만성적으로 이러면 사람이 살 수 없다.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줄리아 로버츠 누나의 영화처럼 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먹고(폭식) 마시고(알코올 문제) 게임하는 데 중독이 된다.  


이런 문제들이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똑같이 나타는 건 아니다. 완벽주의적 성향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성취는 무난한데 관계에서만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도 있다. 정도면에서도 심하지 않아서 무난한 사람도 있지만 한계에 도달해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대략적으로 문제의 분야를 살펴보았는데,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자세히 들여다봐야 문제도 해답도 수긍이 갈만하게 제시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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