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힘 Mar 04. 2023

완벽주의 심리 분석

완벽주의자들의 내면세계

완벽하려는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을 곧잘 하면서도 마음은 편하지 못하다. 대표적인 특성은 높은 기준과 실수에 대한 무관용이다.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이지만 다른 특성들도 많고, 이런 심리가 그물망처럼 치밀하게 엮여 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짜인 심리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완벽주의 성향을 오죽 완벽하게 잘 연구했을까? 어지간한 충고나 걱정은 완벽주의에 작은 흠집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방어 시스템은 굳건하다. 미사일도 튕겨내는 외계인들의 비행선에도 약점은 있었다. 물론 그 약점은 영화에서나 완벽주의를 다루는 현장에서나 깊이 들여다봐야 보인다.

 

  1. 너무 높은 기준/ 실수 방지

완벽주의는 높은 기준과 무결점의 추구가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다. 이런 추구는 대체로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다. 부모의 사랑이나 인정을 위해서든, 잘못하면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든 기본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잘해서 상 받자는 심리라기보다는 못해서 벌 받지 말자는 심리이다. 객관적인 성취와 무관하게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옆에서 보면 엄살은 다 부리는데 막상 잘한다. 옆에서 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당사자는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 객관적 성취보다는 내적 기준이 중요하니까 타인을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은 애당초 없다. 잘해도 '이번에만', '우연히', '큰 의미 없는 시험/프로젝트' 같은 식으로 평가절하한다. 이번에만 우연히 큰 의미가 없는 일을 잘했으니 다음에 더 중요한 일을 잘 치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불안이 친구 하자고 온다. 아니 불안은 몇 안 되는 오랜 친구다.  


이처럼 완벽의 추구는 더 나은, 완벽함의 추구가 아니라 실제로는 아닌데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에 대한 보상이다. 이런 보상은 현실적인 필요성을 넘어서기 때문에 과잉보상이 된다. 극단적인 완벽주의자 한 사람은 '아줌마들도 다 붙는 운전면허 시험을 떨어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운전면허 시험을 두 달이나 고시 공부하듯 했다. 그는 당연히 만점을 받고 박수를 받았다. 남들은 2,3일 정도 공부하고 60점 이상이면 통과되는 운전면허 시험을 두 달이나 공부하게 했던 동력은 운전면허 시험을 잘 보자는 긍정적인 마음이 아니라, 비현실적으로 지나치게 의미 부여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매우 드물겠지만 과잉보상 자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완벽주의자들에게서도 일상적으로 보는 장면이다. 지나친 걱정과 과잉보상. 그리고 이로 인한 자원의 소모. 이런 과잉보상은 무결점의 추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점의 정도나 의미가 확대해석되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보완작업을 더 해야 한다. 과잉 보상 못지않게 더 흔한 문제는 이런 부담 때문에 아예 시작을 못 하거나 미루기이다. 


  2. 반추 : 끊이지 않는 생각의 연쇄


완벽추구와 실수 방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준다. 부정적인 것에 더 눈길이 가고 기억에 남는다. 그럼 두 가지 이유로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첫 번째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생각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침투한다고 표현한다. (침투적 사고; intrussive thought) 그런데 침투라기보다는 불안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비유를 들어 보면, 선거철만 되면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는 선거꾼들이 나타난다. 습관적 출마주의자부터 선거 때가 대목인 선거운동종사자들이다. 선거- 선거꾼들은 서로 결합되어 있어서 하나가 오면 다른 하나가 따라온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불안하지 않을 때는 존재도 모르게 조용히 있던 잠재된 생각들이 불안하면 떠오른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 '밤새 그 생각하다가 지쳐서야 잔다'는 표현을 할 정도이다. 게다가 생각은 하면 할수록 나쁜 것만 더 생각이 난다. 완벽해지기 위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완전한 것들이 더 눈에 띄고 마음은 더 불안해지니 더 부정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진다.  


생각이 끊이지 않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의식적인 생각이다. 뭔가를 잘못했으니, 그 상황을 마음속에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고쳐 써가면서 계속 생각한다. 자기 혼자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연관이 되는 모임이 특히 힘들다. 모임이 끝나고 오면 했던 말 하나라도 다 챙겨서 점검을 하고, 완벽하지 않으면(완벽이란 게 있을 수 없으니 사실상 자기가 했던 모든 말이다) 다시 재생한다. 특정한 날이 매일 반복되는 시간여행 영화 같다. 하지만 시간여행 영화에서 주인공이 과거에 개입을 한다고 해도 과거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생각들도 좋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데도 문제시하여 더 완벽하게 하려고 하니 뭘 달리 말했어야 할지도 막연하다.


이런 식으로 침투사고와 의식적인 수정이 이어지면 '기가 빨린다'라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이 아니라도 자신의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실체도 불분명한 완벽하지 않음이나 했을 법한 실수를 찾는 과정의 결과는 피로감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니 보통 피로가 아닌 만성피로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노력을 함으로써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깊이 빠지는 생각은 이렇듯 완벽주에서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3. 규칙, 통제의 세계  

변화는 불안정이 따라온다. 아예 추운 한 겨울보다는 날씨가 변화가 많은 환절기에 감기가 유행한다. 회사나 조직이 새로 생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고 항상 새로운 일에 대비를 해야 한다. 회사든 어떤 조직이든 안정되면 변화가 적고, 예상이 가능하다. 관료사회가 대표적이다. 


완벽주의는 완벽을 추구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조금 덜 완벽한 것은 없다. 흑백논리라는 사고 패턴 때문에 완벽이 아닌 모든 건 0점에 가까운 잘못이다. 완벽하기로 미리 계획을 세워 놓은 만큼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완벽하지 않아 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변화는 완벽주의와 맞지 않는다. 완벽주의는 일상의 매 순간마다 변화 없이 예측 가능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일어나서 해야 할 하루를 시작하는 절차, 일을 하는 순서, 일을 마치고 취하는 휴식까지 모든 게 다 일정해야 한다. 이렇게 일정한 반복은 규칙이다. 생각을 하고, 결심을 해서는 안된다. 생각은 복잡해지고 결심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뇌에 각인되어 저절로 되어야 한다. 

물병을 정렬하는 나달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모든 게 규칙대로 되지 않는다. 불확실, 불안정한 게 요즘 시대의 특성이다. 트렌드는 하루하루 바뀐다. 사람도 바뀐다. 이런 변화는 완벽주의자에게 고통이다. 완벽주의자가 일궈놓은 완벽의 규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변수를 줄이고, 하나하나를 다 자기가 통제를 해야 한다. 이러다 보면 효율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일이나 권한을 넘기지 못한다. 넘긴다 해도 결국은 자신이 확인을 해야 한다. 조직이 작을 때는 혼자서 많은 일을 맡아도 되지만,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그렇기 하기 힘들다.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비효율과 갈등이 예정되어 있고,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완벽주의자는 타인에게 결정권이나 일을 넘기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아서. 


이러다 보면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주로 작은 조직을 이끈다. 아니면 독자적으로 일을 하는 작가나 독재적인 권력행사가 가능한 영화감독이나 보수적인 교수사회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완벽주의로 유명했던 스티브 잡스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 조차도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 치러야 했던 비용도 컸다. 적이 많아서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고 거의 다 된 계획을 엎어버리거나 사람을 자르고 새로 구하는 비용도 컸다. 그가 완벽해서 애플이 컸고, 애플 같은 수익이 큰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가 계속 완벽할 수 있었다.  


  4. 가상의 청중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과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현실의 인물이 아닌 그 사람과 싸우기도 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힘든 일도 한다. 그 사람이 강한 인상을 남겼으면 그 사람 마음속에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내게 트라우마를 준 가해자는 거의 평생 동안 내 마음에서 나하고 싸울 수도 있다. 이렇게 내 마음속에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내적 대상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강한 인상을 주니, 내 마음속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나를 웃기고 울린다.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이 사람들 즉 내적 대상은 때로는 현실의 인물보다 더 큰 영향을 준다.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평생 영향을 끼쳐서 아무도 믿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현재 눈앞의 인물이 아무리 잘해도 오래전에 자신을 배신한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을 열지 못했다. 꼭 배신이 아니어도 좋다. 처음에는 너무 잘 해준 남자친구를 둔 20대 여성은 두 번 결별을 하게 되자 누군가 잘해주어도 그 잘해줌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믿을 수 없었다.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각인된 인물들이 내적 대상이 되는데, 부모는 거의 모든 경우에 중요한 내적대상이다. 부모가 내 마음속에 살면서, 실제로 만나면 싸우지만 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보면 부모에게 들은 대로 한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게 이 경우이다. 

내적 대상의 다른 특징은 현실의 인물에서 출발했지만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변화된다. 한집에서 살았던 형제가 바라보는 부모가 다른 경우가 많다. 첫째에겐 너무 가혹했던 부모가 둘째는 막내라고 관대하게 볼 수 있다. 첫째가 일곱 살이 되면 벌써 일곱 살이나 되는 거지만 둘째가 아홉 살이 되면 이제 겨우 아홉 살이라고 한다. 이런 식이면 첫째의 마음속에 사는 부모와 둘째의 마음속에 사는 부모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즉 같은 부모라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관계에 따라서 다른 내적대상으로 변화된다. 동일선상에서 출발했던 현실의 인물과 내면의 인물이 나중에는 많이 달라진다. 장성한 아들이 이제는 늙고 꼬부라진 아버지가 여전히 무서울 수 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늙은 현실의 아버지와 다른 젊은 시절의 아버지, 어린 그에게는 너무 거대하게 보였던 아버지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어려운 얘기가 이어지는데, 내적 대상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처음에는 인물이었는데 나중에는 그게 사고방식이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부모가 나중에는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으로 전환된다. 내적 대상은 남처럼 여겨지는데, 이게 사고방식이 되면 내 것처럼 된다. 내게 되는 순간 버리기가 힘들다. 


복잡한 얘기지만 한마디로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데 그 사람과 사랑하고 싸운다. 그런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수록 영향력이 크고 그 사람 마음속에서 실제 인물과 다르게 진화한다. 나중에는 사람이 사고방식으로 변신한다. 

가혹한 부모

완벽주의자들의 마음속에도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더 가혹하고 힘들게 한다. 실제로 가혹할 수도 있지만, 아이의 마음속에서만 실제로 달리 가혹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 꼭 부모가 너무 가혹한 기준을 세우고 실수에 매몰차게 대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다.  실제로 그렇든, 아이의 착각이나 오해로 가혹하게 보든 결과는 아이에게 높은 기준과 실수에 대한 무관용을 강요한다. 좋은 댓글 100개보다는 악성댓글 하나가 더 신경 쓰이듯, 잘한다고 인정해 주는 실제의 인물보다는 매몰차게 대하는 마음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더 의식한다. 현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칭찬해도 마음속의 그 인물이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즉 이런 가상의 청중들이 그 사람을 항상 감시하고 평가하고 질책을 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완벽주의가 있다면, 마음속에는 누가, 어떤 식으로 더 엄격한 쪽으로 치우쳐서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