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힘 Mar 26. 2023

완벽주의 : 관계(3)

일을 놓을 수 없는 완벽주의자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혼자 글을 쓰는 작가나 번역가도 옆에서 잔소리하고 격려해 주는 편집자나 매니저가 딸려 있다. 큰 조직에서는 대부분의 업무가 팀 단위로 진행된다. 효율적인 관리나 성취를 위해서 팀이 잘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효율적인 팀운영은 쉽지 않고,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엔론 사태나 리먼 브라더스의 경우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팀이 과도한 위험 감수를 부추기도록 했던 기업 문화도 한몫했다고 한다. 


완벽주의자는 맡겨진 일은 완벽하게 잘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은 어렵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협업,  권한이나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이 어렵게 한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먼저 타인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다. 

완벽주의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 높은 기준을 적용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실수가 없어야 하고 높은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런 동료나 부하 직원은 주변에 없어 보인다. 일을 맡기게 되면 자신의 불안 때문에 수시로 확인을 하거나 재촉하게 된다. 일을 마쳐도 그가 보기에는 완성본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정보의 비대칭도 존재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은 정보의 질과 양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일을 시킬 때 그런 점을 일일이 다 얘기해 줄 수는 없다. 혹은 정보 제공을 하더라도 아랫사람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야 알 수 있는 정보를 참조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한번 들으면 안다고 남들도 그런 게 아닌데 그런 부족한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보 비대칭이 극복되지 않는다. 슈퍼스타 출신의 운동선수가 좋은 감독이 되기 힘든 스포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눈높이 조정도 잘 안된다. 정보 공유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취지와 다른 작업이 주어지거나, 구체적인 내용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믿지 못하는 문제에다 실제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일을 맡기기 힘들어진다. 


두 번째는 불안감이다. 아랫사람이 일을 잘 못한다고 해도 눈앞의 업무 수행과 아랫사람의 성장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리더 밑에서 일을 하면 오늘 출발점은 똑같아도 6개월이나 1년 후에는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완벽주의의 성취 지향적인 성향에다 내면의 불안이 더해지면 부족한 동료나 아랫사람을 기다려주기 힘들다. 외부적인 압박까지 더해지거나 마감이 임박한 시기가 되면 그의 불안은 코비드-19 만큼이나 전염력이 높아서 팀 내에 금방 전달된다. 불안의 문제는 일이 되게 하는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방어적으로 욕먹지 않는 걸 최우선 순위에 두게 만든다. 


세 번째는 대인관계 기술의 결핍이다. 앞선 글에서 거절을 못해서 힘들어지는 완벽주의자들의 모습을 제시했는데,  전반적인 대인관계 자체가 완벽주의자의 전체 능력치 중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이다.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일을 양도하기 힘들고 부담스럽다. 일몇 번 시켜보면 결국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나뉜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아니라도, ‘이걸 왜 제가 해야 해요?’는 식으로 일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고개가 절래 절래 흔들어진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서 하는 완벽주의자 주니어에게 일을 맡기는 게 편하다. 모든 건 부익부빈익빈의 원리에 따라서 일을 잘하고 잘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일이 더 많이 할당되고, 안 하는 사람은 직급이 낮아도 괴도 루팡 같은 우아한 모습으로 회사생활을 즐긴다. 


의사소통 문제도 있다.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항상 누군가와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그 조율이라는 게 쉽지 않다. 실제로 업무상의 의견 차이는 감정적인 차원으로 전이가 되고, 이후에는 ‘네가 말하니까 반대야’ 모드가 된다. 초파리라는 두뇌라고는 없어 보이는 파리의 사촌쯤 되는 벌레가 있다. 이 벌레에게 특정 냄새가 나는 곳에 불쾌한 자극을 주니 나중에 거긴 피하더라는 거다. 말 못 하는 짐승 정도가 아닌 파리도 이렇게 싫은 건 피하는데 사람은 오죽하랴. 이 실험을 보고 사람 사이에서 화해란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어지간하면 서로 거리 두고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녹색 통에 전기 자극을 주고(위에서 세 번째 그림) 시간이 지나서 양쪽을 선택하게 하면 파리가 녹색으로는 안 간다. (아래서 두 번째 그림) 유전자 조작을 해서 기억을 변형시키면 다시 간다. (30년 경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 몇 개 중 하나)


네 번째는 효율성이다. 못하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그걸 봐주고 다시 가져오고 하는 시간은 항상 그냥 자기가 해버리고 말 때보다 더 크다. 아인슈타인 할아버지가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한 걸 깨달은 바로 그 통찰력으로 완벽주의자들은 일이 아직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일을 주고 그걸 봐주고 다시 하는 과정이 보여주는 효율성 저하를 배우지 않고도, 태어날 때부터 아는 생득적 통찰력으로 알아차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일을 배우지 못한다. 분명 이렇게 직장 생활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하고, 자신이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되면 존재의 이유를 의심하게 되니 팀이나 조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인정욕구와 여기서 생기는 불안, 앞의 불안과는 또 다른 불안 시즌2이다. 어떤 작은 회사에 회계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 그 선임은 20년 이상 위인 사람이었는데 자신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내용을 들어보니 일은 못할 만한 일은 아닌데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혼자 한다는 것이다. 이 분은 잡일만 했다. 일이 많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편하긴 한데 그렇다고 무슨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없으니 멍하니 있는 시간이 답답했다. 나중에 보니 결국은 그분은 20년 이상 근속을 하고 자신 같은 사람들은 한 두해 일하다가 그만둔다고 했다. 너무 어렵지 않은 그 일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게 되면 자신의 존재가치가 위협을 받고, 급여가 낮은 다른 사람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꼭 그렇게 해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20년 연상의 선임의 존재 가치 확인과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그가 일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는 지난번에 얘기한 부채의식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시키면 그게 부담스럽고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하고 갚아야 하니, 큰일이 아니면 그냥 혼자 하는 게 더 편하다. 


이런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서 일을 남에게 주지 못하고 혼자서 하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완벽주의자에게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것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문제도 아니다. 또 기업이나 조직 문화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완벽주의자가 독박책임을 질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이런 문제들이 조금 더 심각하게, 그리고 변화가 어렵도록 경직된 태도를 지니게 한다. 


해결책은 나중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항상 첫걸음은 정확한 현실 파악이다. 상황을 파악해 보면, 마음 편하게 일을 덜 수 있는 경우도 있었고, ‘일단은 그냥 그렇게 사셔야겠네요’라는 식으로 결론이 난 적이 있다. 변화가 오는 경우에는 자기 안테나에 걸린 게 있었다. 즉 머리로는 아는데 막상 하려니 안 되는 경우라면 우선 자기가 봐도 심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일을 줘가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본다. 이게 그리 큰 비중이 아니어도 좋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절대화되고 고정불변할 것 같은 그 상황이 변화가 가능한 유동적인 상태라는 걸 서로 공유하는 의미가 있고, 흔들리면 더 흔들어서 밀어버릴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 : 관계(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