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
아주 예전에 번역을 하던 책에서 본 문장이다. 너무 와닿아서 아직도 생생하다.
"사는 건 건강에 해롭다."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이 편하지만 우리 삶을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이끈다는 주제의 책이었는데, 앞의 '어떻게'에 해당되는 수식어를 다 빼니 결국 사는 건 건강에 해롭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건강해지려면 죽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도 하루에도 열 번은 듣는 것 같다. 사는 게 건강에 해로우니 정신건강에도 당연히 해로울 것이다. 정말 사는 건 골치 아픈 일 투성이다. 인생은 고해라고 한 석가모니의 말이 정말 와닿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처치곤란인데 아이들이라면 더 괴로울 것이다. 어른들에 비해서 해결책이 훨씬 더 빈약하니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주로 문제는 어른들하고의 문제이다. 아이가 어른들과의 갈등에서 어른을 이길 수 없다. 현실은 아이 맘대로 할 수 없다. 딱 하나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자기 마음이다. 현실이 아닌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아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그 마음을 어떻게 해서 괴로움을 해결하는 게 아이들, 즉 우리 모두의 해결책이다.
여우를 피해서 머리를 박고 있는 타조. 나한테 안 보이면 되는 거다. 좀 있다가 여우 뱃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소한 단점은 있지만.
프로이트 할아버지는 이렇게 어떻게 맘대로 안 되는 현실을 놔두고 마음이라도 편하도록 하는 방법을 방어기제라고 했다. 방어기제는 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점차 더 자주 쓴다. 쓰다 보면 익숙한 것만 찾는다. 사람에 따라서 쓰는 게 약간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방어기제를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고도 한다.
완벽주의도 정신건강에 지장을 준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어린 시절부터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 완벽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완벽주의가 시작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은 ADHD인 사람이 의대를 가서 외과의사가 되는 경우처럼 특수한 경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완벽주의에 시달리면 우울, 불안, 강박 등과 같은 정서적인 문제에 더 많이 노출되고 대인관계도 피곤하다.
이런 심리적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방어기제를 사용해야 한다. 방어기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완벽주의에서 특히 더 자주 관찰되었던 방어기제는 부인(denial), 회피(avoidance), 합리화 등이 있다.
부인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속이는 것이기도 하다. 거짓말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행동이라면 부인은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을 속인다. 자기도 속아야 부인(denial)이다. 완벽주의에서 비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실수에 대한 비현실적인 불관용을 하려면 무리가 따르고 이런 무리를 지속하려면 그게 현실에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해야 한다. 물론 이런 설득은 의식적인 차원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는 차원에서 일어난다.
부인보다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안 보면 된다. 눈만 꽉 감고 있으면 된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나중에'라고 하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아, 몰라'라고 주문을 외우면 된다. 약간 찜찜하면 '어떻게 되겠지, 뭐'라고 추가하면 된다. 현실이 조금 이상해지는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마음은 편하다. 다이어트는 원래 내일부터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오늘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살은 아주 조~금(부인) 짜긴 하겠지만. 회피하는 마음대로 된다면 시험은 천재지변으로 연기되고, 부담스러운 약속은 다른 사정으로 알아서 취소가 되고, 발표 PPT는 전날 기적적으로 완성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는 조금 어린 나이에 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할 수는 없다. 조금 더 자기를 설득해야 한다. 합리화다. 우리가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데는 항상 좋은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건 여우가 먹지 않은 그 포도가 신포도가 아니었던 것처럼 가짜 이유이다. 좋긴 한데 사실과 다른 가짜 이유다. 짝퉁도 아니고, 그냥 가짜다. 여우의 정신건강에 자기가 키가 작은 거보다는 포도가 신맛이 나는 게 더 좋은 것처럼 가짜이유라도 동원해야 한다. 어린 완벽주의자에게 현실은 키가 닿지 않았던 여우의 포도보다 훨씬 더 높고 어마어마해 보였을 것이기에.
이 3종세트는 위력이 만만치 않다. 머리 좋고 치밀한 완벽주의자들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는 것만 봐도 성능이 괜찮아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무엇이나 천적이 있듯, 이 3 좀 세트에도 천적이 있다. 바로 직면이다.
직면은 마주 보기이다. 눈을 감고(부인), 외면하고(회피), 그럴듯한 말로 속이는 3종 세트를 대항하는 효과적이면서도 약간은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는 수단이다.
직면은 감은 눈을 뜨고, 피하고자 했던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득권 세력이 그렇듯,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낯설고 괴롭다."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다. "
"그냥 다음부터 하고 싶다. "
"꼭 이럴 필요는 없지 싶다. "
"너무 극단적으로 하다 보면 부작용이 우려가 되기도 한다. "
제일 요사스럽고, 단수가 높은 것이,
"그래도 그동안 많이 도움도 받았으면서, 이럴 수가 있냐?"이다.
이런 식으로 반발해 온다. 우리가 독일군도 아닌데, 레지스탕스처럼 한다고 해서 저항이라고 한다. 이런 저항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rule)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서 하면 잘 안 되는 이유가 그 3종세트가 오죽 많은 도전을 받고도 살아남았음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교묘하고 설득력 있는 말로 우리를 현혹시킨다. 신기루를 만들어서 현혹시키고, 약속도 잘한다. 다음부터 잘하겠다는 각서도 문학작품 수준으로 쓴다. 특히 한 때 도움을 받았다면 의리상 버리기 힘들다. 비록 그 도움이라는 게 궁극적으로는 건강하지 않다고 해도, 그게 내 삶의 일부이고, 그게 나일 수도 있으니까.
면담을 해보면 자주 경험한다. 변화에 대한 동기가 생기는 경우는 그 사람의 무의식에 담겨 있던 출생의 비밀 수준의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 아는 내용을 직면을 해보니 다르게 보이는 새로운 관점의 제시로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일상생활의 예를 들면, 이달에 내가 소비를 좀 많이 한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과 카드 명세서 적힌 항목의 숫자와 내야 할 총액을 일목요연하게 모아서 보는 것의 차이 정도라고 하겠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게 하는데 부인, 회피, 합리화가 역할을 한다면 그 반대되는 방식으로 대처하면 된다. 이 세 가지 모두에 대처하는 직면을 해야 한다. 거울로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확인하듯,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직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단순하다. 우리가 거울을 보고 얼굴에 뭐가 묻었으면 화를 내지 않고 그걸 떼어내거나 고친다. 마찬가지로 직면을 해서 뭐가 나오든 화를 내지 말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고칠 생각만 하면 된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화를 내지 않는다. 거울을 보고 치아 사이에 음식이 낀 걸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거울을 보고 자기 얼굴에 뭐가 묻었다는 알게 되면 화를 내고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거울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일 경우에는 더 자주, 더 강한 반응이 나온다. 뭐가 묻었다고 거울을 깨버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처럼, 그걸 편하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끔찍하게 여겨지더라도 결과는 그 걸 제거해 버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 완벽한 모습이 될 수 있으니까.
회피와 부인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리고 끈질기다. 더 나은 삶을 살거나 완벽해지는데 방해가 되지만 잘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방어기제들이 형성된 어린 시절에는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많고 해결 안 되는 일들을 싸매고 있어 봐야 자기도 힘들고 주변에서도 불편해하니까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그걸 치워 놓아야 했다. 분명 기여한 바가 있다.
사실 한두 번쯤은 그런 문제를 직면해서 고민해 봐도 결론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딱 그 시간만큼 더 피곤했다’ 일 것이다. 부인, 회피, 합리화 3종 세트는 실제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너무 유용한 도구이다. 시간이 흘러서 사정이 달라져서 이제는 별로 그 상황에 맞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동안 오래 써서 자신에게 익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기능이 더 개선된 신제품이 나와도 손에 익은 구형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새로운 심리적 대처가 현실에 적응하는데 더 좋다고 해도 아직 낯설다. 게다가 새로 적용해야 하니 그 결과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선뜻 내키지 않는다. 직면은 이렇듯 쉽지 않고 결심이 필요하다. 너무 용량이 적어서 아껴 써야 하는 의지는 다른 데 쓰지 말고 여기 직면하는 데서 써야 한다.
직면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면 봐야 한다. 맨 얼굴을 보려면 화장을 지워야 하듯, 우리 내면을 알기 위해서는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치워야 한다. 그 장애물은 바쁜 일정이다.
완벽주의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항상 뭔가 하라고 시킨다. 완벽주의자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지도 않고, 낯설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바쁜 척하는 거니까 안 바쁘면 불안이 심해진다. 직면을 하려면 그 불안을 견디고, 두 가지를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
지금 나를 바쁘게 몰아붙이고 있는 일들의 본질과,
그 바쁜 일정으로 피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현재 내 일정을 채우고 있는 일들이 정말 필요한 일들인지, 필요하다면 뭐에 필요한지 질문을 던져본다. 여기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걸러지면 정리해 버린다. 그러고 나서 존재가치 즉 목적과 필요성이 인정되면 일단은 받아들인다. 그래도 한 가지 검증이 필요하다. 그 정도가 적당한 수준인가?
두 번째는 이런 바쁜 일정 때문에 피하고 있는 게 뭔지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왜 뽑혔지?라는 질문이 들 정도 스스로 생각하기에 분수에 넘치는 직장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데 혼자만 어울리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괴로워했다. 자기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바쁘게 일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일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거나 급하지 않은 일들이었고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인정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건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제일 인상적인 분의 완벽주의를 치료하는데 2년이 걸린 적이 있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효율성 등의 기술적인 면을 설득하는 데 반년, 이상적이지 않은 자기 모습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
인정이 되려면 현재의 부족한 점이 괜찮다고 안심이 되어야 하고, 인정한다고 지금의 부족한 모습으로 내 삶이 나쁜 쪽으로 굳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아진다는 희망이 있을 때 인정이 가능하다. 부족한 걸 인정하는 아픔과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없다면, 심리적인 변화가 어렵다.
치료란 결국 이 두 가지를 하는 거라고 아닐까? 이 두 가지 작업이 잘 나타난 영화 두 편이 있다. [굿윌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맷 데이먼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한다. 다른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는 잭 니콜슨이 홀리 헌터에게 ‘당신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게 했다’고 그녀를 통해서 희망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영화에서처럼 매번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위로와 희망의 제시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이 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인정을 더 자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