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성생활, 결혼
완벽주의자들은 어려서부터 내외부에서 성취를 요구받기 때문에 긴장과 불안, 수치, 우울, 분노감정, 실망이 많이 느껴진다. 항상 압박감을 받으니 긴장되고 불안하며, 기대한 만큼 성취를 못할 수도 있는데 그게 ‘그냥 그건 몰랐어’가 아니라 당연히 알아야 할 무언가를 몰랐다고 생각해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수치감을 느낀다. 노력해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그가 생각하기에는 정당하게 받아야 할 인정이나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생긴다. 나이 든 사람들이 라테 커피를 많이 마신다면 완벽주의자는 라면을 좋아한다. 이름도 단순하다. ‘나 라면…’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든가,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라면의’ 기준으로 상대에 대한 기대를 한다. 라테와 비슷하게 그들의 기대는 라면의 무게만큼 가볍게 여겨져서 인정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혼자서 속앓이를 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감정을 잘 받아주고, 처리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이성과 감정이 모두 안정적인 사람이 되겠지만, 만약 일반적인 경우라면 감정적인 면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 더 느끼고
그 감정 처리가 안 되어 힘들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감정처리는 성취로 인한 인정 등의 다른 방식의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전체적으로는 자신이나 타인의 감정을 다루는 능력은 더 뛰어난 인지능력에 비해서 조금 떨어진다. 자연스럽게 마음의 공감보다는 능력의 인정을 받게 되고 그게 그 사람이나 타인에게 더 편하다.
대인관계에서는 소극적이다. 친구들이 모여서도, 그 사람에게 특정한 주제에 관한 얘기를 시켜보면 잘하는데, 자유토론을 하게 되면 듣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확실한 걸 좋아하기 때문에 얘기를 하면 레퍼런스까지 다 동원할 수 있는 얘기를 하려 하고, 그 참고자료 뒤에 숨는 경향도 있다. 대가의 얘기를 인용하며 자기 생각을 아낄 수도 있다.
완벽주의자들은 처음에 우엇인가를 배울 때는 동년배들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민감해서 조심하다가, 어느 정도 전문성이 발휘가 될 때가 되면 빛을 발한다.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스타가 된다. 말만 좀 하는 게 아니라 깊이가 있어서 대중의 인정을 받는다. 삶의 현장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전문의가 되기 위한 레지던트 과정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완벽주의자가 1년 차일 때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자기 앞가림하기 바빠 연애할 겨를이 없다. 그러다가 능숙해진 3년 차가 되면 새로 들어온 1년 차들을 챙겨주면서 연애가 벌어진다. 일반직장에서도 고년차 대리나 과장 같은 사람이 신입사원과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건이 벌어 지곤 한다. 맞선 자리에 뻘쭘한 완벽주의자는 자기 삶의 현장에서는 매우 능숙하기 때문에 실제로 도움도 되고 매력포인트도 된다.
완벽주의자 연애의 원형 같은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군대식으로 가정을 꾸리는 폰트랩 대령과 훈련병 같은 자녀들의 집에 감성이 풍부하고 자유로운 마리아 수녀가 들어와서 갈등을 빚으면서도 집안을 뒤집어 놓다시피 바꿔놓고, 폰트랩 대령의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그도 좋으면서도 자기 내면의 감정 변화, 상대가 보내주는 시그널을 파악하지 못해서 멍한 채로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두 사람의 댄스 장면이다. 마리아 수녀는 댄스 도중 감정이 올라와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었고, 그걸 지켜보는 귀족 부인은 두 사람의 사이의 천둥과 번개가 동반된 스파크를 느껴 질투심에 그 길로 마리아 수녀를 그 집에서 내 쫒는다. 그러나 폰트랩 대령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그녀가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속이 상해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불만스러워할 뿐이다. 이렇듯 눈치 빠른 여자 두 사람의 눈에는 너무 확연히 보이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일이 많이 생긴다. 규칙과 원칙에 경직된 완벽주의의 뒤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고, 조작하고, 유도하는데 그만 그걸 모르고 그런 일에 당한다. 마리아 수녀가 귀족 부인에게 쫓겨난 일도 그에게는 큰 타격이지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누군가가 그에게 그런 걸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흔히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도 요동쳐서 결국은 그가 심하게 결핍되어 있는 감성이 풍부한 마리아 수녀를 선택한다. 완벽주의자에게 풍부하고 표현된 감성은 자신에게는 결핍된 귀한 것이다. 웃음은 점잔 빼는 것과 달리 흐트러지는 모습이다. 어른이 점잖음을 벗고, 다시 애들처럼 되는 게 퇴행이다. 퇴행해서 흐트러지고 망가져도 상대의 눈치를 안 보면 그때 친밀감이 생긴다.
퇴행되어 눈치 안 보고, 신경 덜 쓰고 누군가와 친근함을 느끼는 건 월급쟁이가 한우 먹는 것과 같이 귀하고 드문 경험이다. 안 빠질 수가 없다. 그가 아직은 혼자서 퇴행할 수 없다. 상대가 샘물이나 에너지원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내게 없는 걸 상대에게 받아야 하는 게 의존이다.
퇴행되고 친밀감이 생기면,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뭔가 하고 싶어 진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엔진에 시동이 걸려 저절로 하게 된다.
그가 사랑에 빠지면, 음치라는 걸 신경 쓰지 않고 노래를 한다.
그가 사랑에 빠지면, 미사여구의 나열 같지만 시도 쓴다. 유치할수록 더 기분이 좋다.
그가 사랑에 빠지면, 잠들었던 에너지가 폭발하여 과연 완성은 고사하고 시작이라도 될지 의심스러운 새로운 도전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한마디로 그동안 계속 뭔가 재고 있던 그의 방식에서 벗어나, 내키는 대로 해보는 것이다. 그 순간은 그는 완벽주의에 빠져셔 해보지 못했던 판타지의 실현이라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의 그런 변화와 들뜸은 불안정함과 동의어이다. 평소 차근차근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면서 문제가 생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거나,
악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에게는 아픔이 될 수 있는 표현이 가고,
감성이 풍부한 상대를 자극해서 상대가 흠칫 놀라고 물러서게 만든다.
그의 행동이나 말에 담긴 깊고 무거운 의미는 상대가 받아들이기 힘들다. 상대는 공기처럼 흔하고, 자연스러운 자신의 분위기를, 자기도 모르게 상대에게 전했을 뿐인데, 완벽주의자는 그 공기로 우주탄생 이론을 쓰고 있었다. 당연히 둘 사이의 무게감이 달라 물러설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들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평소의 완벽주의자의 신중한 흐름과는 전혀 다르다. 어, 어 하는 사이가 많은 일이 벌어지고, 수습이 안될 수도 있다. 아픔은 그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가 그 사랑을 만나 잠시 벗었던 권태의 누더기를 다시 벗게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게 그의 마음이지만.
연애와 결혼은 또 달라서, 결혼 자체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 파트너의 선택은 잘난 자기와 닮은 사람을 찾는 자기애적 파트너 선택과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강박적 선택이 있다. 완벽주의자들은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선택을 한다. 이론적으로 그게 훨씬 더 맞으니까. 그런데 결혼의 경우에는 감정이 고려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 외적인 조건 중에서 보완해줄 점을 찾는다. 겉으로 보면 좋은 결합이다. 케미는 썩 좋지는 않아도 특별히 문제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조건을 볼 때도 관점이 다르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선택이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A : 장점이 너무 커서, 단점을 덮어버리는 경우,
B : 단점이 심각하지 않아서, 평균 정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크게 문제는 없을 경우,
20대 젊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아마도 이쁘면 돼/ 잘생기면 돼하는 마음으로 파트너는 A가 90%,
30대 중후반을 넘어서, 나름 전문직 등 자기 기반이 있어서 상대에게 의지할 필요성이 별로 없고, 좋은 경험도 해봤지만 그 끝을 봤다면, 아마도 B가 90% 정도.
꼭 그럴싸한 ㄱ ㅐ 소리를 잘한다고 소문난 chat GPT 3.5 같은 결론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선택 대상에 [최선- 중간- 최악]이 있다고 할 때, 나이가 들수록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결혼도 아마도 제일 좋은 선택이 아니라 안 맞는 부분이 크게 문제가 안 되는 선택을 한다 무난하다. 무난해서 평화롭지만 심심하다. 자극의 추구가 필연적이다.
무난하게 잘 살다가도, 감정이 결핍이 심하거나, 강하게 어필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속수무책으로 그 풍부한 감정에 녹아버린다. 겨우내 한 번도 열지 않았던 답답한 자기 방을 음이온이 가득한 숲의 시원한 공기로 환기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잃을 게 많은 완벽주의자는 과감하게 연애를 하지도 못하고 쭈뼛쭈뼛하는 경우가 많다. 외도를 해도 섹스가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심지어는 매우 아름다운 여자친구와 장기 연애를 했던 어떤 전문직 남자는 상대와 섹스를 하게 되면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아서, 성적인 것은 야구를 보면서 혼자 처리하고, 그 사람과는 sexless relationship 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가 즐기고 있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는 그녀에게 받은 것이지만, 그녀가 준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녀는 그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된다. 그에서 뭔가를 받은 그녀는 자신이 준 게 없어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잠시 한다. 자신을 추앙하는 듯한 그의 표정과 태도를 보면 그런 건 아닌 것 같지만.
오히려 가끔 그녀의 호르몬의 장난으로 그녀가 그를 원하는데도 눈치 없이 라면에 넣을 계란이 없다고 잠깐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거나, 넷플릭스 뭘 볼지 30분 동안 심각하게 고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평생 감정적인 삶을 봉인하고 살다가 치료를 받고 그 봉인이 풀려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남자분이 있었다. 어렸을 때 집에서 밥을 먹는 식탁에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조용히 밥만 먹어야 하고, 조금 잘하면 칭찬보다는 교만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들었던 그가 40대 초반에 , 삶의 권태가 너무 심해서 치료를 받고 그 봉인이 풀렸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내 옆에는 낯선 여자가 누워 있고, 아이들이 나를 아빠라고 하더라” 는 투의 얘기를 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패밀리 맨의 대사와 너무 똑같은 말을 했다. 차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원래 그대로이고, 그만 면담을 받으면서 자신의 소망, 욕망, 판타지가 되살아 나서, 정체감이 흔들릴 정도로 가족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뿐이다.
그가 다른 평행우주에서 이 세계에 온 지 5년 정도가 지났다. 너무 늦게 이 세계에 와서 그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감정이 깨어난 건 나쁜 건 아닌데, 그가 그대로 감정의 봉인이 풀리지 않는 그 세계에 그대로 살고 있도록 하는 게 맞았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어느 날 질문도 해보았다.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면 지금 세상을 선택하겠지만, 답답하긴 하다.”
가 그의 답변이었다.
능력은 있는 편이지만, 일과 생활을 잘 분리하지 못하니까,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혼자 구시렁거리거나, 하소연을 많이 하는 편이다. 심지어는 딸이나 나이가 한참 차이나는 어린 직원에게도 하소연을 한다.
또한 재미가 별로 없고, 지루하다는 게 가장 대표적인 평가이다. 놀러 가도, 몇 번 가보면 루틴만 해서 뻔하다. 섹스도 하다 보면 똑같다. 서로의 몸과 마음을 탐구하려면 상대와의 대화, 교감(반응에 대한 관찰, 느낌)이 필요한데 그런 내면의 CCTV는 아직 구매를 안 해서 없다. 그런데 상대의 만족은 매우 신경이 쓰인다. 하기 전, 하는 동안, 하고 나서 계속해서 리플레이시키면서 잘했나, 만족이 되었나 확인해야 한다.
“ 아, 짜증스러운... “
대체로 바쁘고, 자격증을 따거나, 사업을 새로 벌이는 등의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있다, 그런데, 노래방 기계 몇 대 갖다 놓고 돈 버는 식의 일이 아니라 창의적/혁신적인 뭔가를 하려 한다. 투입은 많고 돈은 항상 늦게 온다 아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해해 주는 배우자를 만난다면 매일 같이 승리하는 삶을 산다.(그것도 보통 승리가 아니라 정신승리다. )
요약하면,
완벽주의자가 다 똑같은 건 아니지만 대체로 감정적인 면에서 경직되고, 미묘한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을 캐치를 잘 못한다.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단순한 그들의 편안해 보이는 삶이 부럽기도 하다.
이런 점을 잘 다루지 못하는 감성적인 상대하고는 관계가 이어지지 못하고, 밀당을 잘하는 선수들이 결국은 능력이 있는 완벽주의자들을 잘 다루며 챙겨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