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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힘 Jun 02. 2019

인지치료 (2)

인지치료는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인지치료를 설명하는 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가 컵 속의 물이다. 

‘컵 속에 물이 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부정적이 되지만, 

‘컵 속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생각하면 긍정적인 기분이 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사례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은 아래의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우선 이렇게 억지로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바뀔까?이다. 인지치료는 틀린 생각을 바꾸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하다 보면 ‘머리로는 알겠는데, 딱 거기까지다’라는 반응이 더 많다. 치료자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한다. 


두 번째는 좋다, 그러면 진심으로 생각을 바꾸었다고 하자.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질문이 다가온다. 아 그러네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 그러면 반 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에 비해서 갑자기 기분이 확 좋아지고 내 삶이 달라지던가?라고 질문을 던져보는데 모르겠다. 누군가가 인지치료에 관해서 질문하면 아는 체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들고 그 얘기를 할 수는 있겠는데 나도 와 닿지 않으니 듣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이 사례는 참 좋은 사례이기는 한데, 인지치료가 말장난처럼 보이는데 큰 기여를 한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사례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좋은 사례도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좋은 사례일 수도 있겠다. 인지치료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제대로 이해하게 하는데 적절해 보이니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인지치료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위의 간단한 문구를 가지고 같이 탐구해 보도록 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오해가 담긴 전제를 수정해야 한다. 


첫 번째 전제는 인지치료는 긍정심리학이 아니다. 

사실 인지치료를 하면 같은 일을 놓고도 전과 비교해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는 한다. 그런데 그건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어서가 아니라 그간의 현실 해석에 담긴 부정적인 부분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절대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두 번째 전제는 현실이 먼저이다. 

인지치료한다고 하면 생각을 먼저 다루려고 하기 쉽다. 하지만 인지치료를 해보면 다들 느낄 수 있겠지만, 처음에는 생각이 나오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도마 위에 생선이 올라와야 머리 자르고 꼬리 잘라서 요리를 할 텐데, 고기가 올라오지도 않는다. 생각이 없다. 그런데 더 소홀히 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은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 필요하면 배경까지도. 


이런 전제 하에 과연 컵에 물이 반 밖에 없는지, 물이 반이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어찌 보면 간단한데, 머리가 우둔했던 나는 이걸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하는 현실이라면 반이 차 있는 컵 속의 물은 반 밖에 없는 게 맞다. 반면 컵에 물이 1/3만 있어도 되는 현실이라면 컵 속의 물은 반이나 차 있는 게 맞다. 만약 컵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하면 억지로 우기는 게 된다. 그러면 반발심이 들거나 그 자리에서는 억지로 수긍을 해도 돌아가면 원상복귀다. 


만약 이렇다면, 와닿지도 않고 믿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치료자 : 얘기를 들어보니, 물이 한컵이 다 있어야 하는 상황이네요. 

             그래도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세요. 


내담자  :(뭔 말을 하는 건지...)

              

대신, 

치료자 : 얘기를 들어보니, 물이 한컵이 다 있어야 하는 상황이네요. 

             물이 반 밖에 없는데, 이게 어떤 영향을 줄지, 

               그 반을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한번 생각해봅시다. 


내담자 : 반이 없다는 건 나한테...(이런 의미고요)

              (이러저러하게 하면) 완전치는 않아도 더 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컵 속에 물이 1/3만 있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사실을 잘 파악해서 공유하지 못한다면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더 믿어도 확신하기 힘들다. 이 사람들에게도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우길 게 아니라, 세심하게 조사를 해서 필요한 물의 양이 1/3 밖에 안된다는 걸 확인하고 그걸 공유하면 물이 반 컵 차 있는 컵을 보고 안심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일 때, 물이 남은 걸 부각시키면 더 


치료자 :  차근차근 얘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필요한 물의 양이 10방울 밖에 안되네요.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게 10방울인데 반이나 있으니 오히려 넘치네요.

내담자 : 물이 오히려 남는다는, 그것도 많이 남는다는게 생각을 안해본거라 좀 그렇긴 한데, 

              마음은 편해지는 것 같네요. 


그런데 현실이 컵에 물이 가득 차야 하는 사람들은 반 밖에 없으니 더 우울하게 될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선 물이 담긴 컵이 우리 마음속에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 하는 사람인데, 재능이 부족하다. 

재능이 부족하지만, 음악을 포기해도 살 길이 있거나, 음악으로 먹고사는 방법도 다양한데 좋은 곡 써서 히트를 치는 한 가지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컵이 여러 개라 하나가 부정적으로 결론이 나도 이어지는 다른 컵을 잘 다뤄주면 더 나아지기도 한다. 


두 번째는 대개 부정적인 현실을 감당할 수 없으니 방어를 부인, 회피나 억압으로 한다. 현실을 직면하지 못한다. 이런 방어도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회피하고 억압할수록 그 의미나 영향이 오히려 더 확대된다. 막연하게 자신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기 부적절감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자기도 동기를 모르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한다. 그런데 꽉 차야할 컵에 물이 반 밖에 없다는 걸 직면하면 마음속으로 막연하게 불편할 때보다는 오히려 별게 아니라고 느끼거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되니까 마음이 더 편해진다. 


여기서 다시 한번 인지치료의 근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인지치료는 왜곡된 생각을 수정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좋아지게 한다. 이 명제는 좀 부족한 듯. 더 인지치료를 잘 설명해주는 말은 아래의 말이지 싶다. 


"인지치료는 진실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서, 

  어떤 노력이나 억지가 아니라 

  저절로 그 현실을 다시 바라보고, 받아들여서

  생각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감정도 편해지게 하는 

  치료법이다. 

 

 생각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 자리를 찾아 가는 것이다. "


20년 넘게 인지치료하면서 느낀 건, 제대로 하면 단순하고 쉬워진다는 거다. 오늘의 컵 사례도 간단한 사례지만 사실 인지치료의 모든 걸 다 담고 있다. 최소한 내가 20년 동안 채운 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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