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가?'
선생님이란 직업은 무엇일까?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도덕적인 생활 태도를 가지고 성장 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하는 직업- 우리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가장 사전적인 의미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일까?
전문분야에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선생님? 도덕적인 생활을 하며 아이들에게 항상 모범을 보이는 선생님? 과연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라 할 수 있을까?
미술선생님이 되어 선생님의 길을 걷고자 선택 한 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가?’
이린 시절. 안방, 침대 옆에는 항상 수북히 이면지가 쌓여있었다. 그 이면지 위에는 어린 내가 알기 어려운 수학 기호들이 검은색 펜과 형광펜으로 쓰여 있었고, 이면지 옆엔 항상 몇 가지의 책이 함께 있었다. ‘딱딱한’ 양장으로 묶인 ‘수학의 정석’은 딱딱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흐물거리는 겉표지가 되어있었고, 개정판 이라는 이름이 꼭 붙은 다른 수학 책들의 사이사이엔 아버지가 손수 쓴 알기 어려운 기호가 한가득 들어있는 이면지들이 몇 장씩 끼워져 있었다.
이 책과 이면지는 침대 옆, 식탁, 책상.. 아버지가 머무르는 어느 곳에서나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 부모님은 교육자이시고, 우리 아버지는 수학선생님이시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수학공부를 하신다.
어릴 적. 가장 많이 보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식탁에서 또는 거실에서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공부보단 놀기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매일 공부를 해야 하는 피곤한 직업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였는지 어느 날 아버지한테 물어보았다.
“아빠는 왜 맨날 공부해??”
“언니오빠들 가르쳐줘야 하니까 공부하지. 아빠도 복습하는 거야. 수업하기 위해서.”
답안지와 풀이과정이 상세히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학생들을 위해 매일 수업준비를 하셨다. 아버지의 공부는 쉬는 날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쉬는 날에 항상 어떤 활동을 했는데. 여행을 다니거나 운동을 해서 피곤한 날에도 아버지는 어김없이 다음 수업준비를 꼭 끝마치고 하루 일정을 끝냈다.
매일같이 이런 날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힘든 기색 하나 없었다.
어린 시절이 지나 중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의 수업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설렘을 안고 들어간 첫 수업날, 수업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나는 조금 놀라웠다. 아버지가 수업하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우리 아빠는 수업하는 것이 정말 좋구나.’ 아버지가 집에서 수업준비를 하는 모습이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이란 직업이 아버지의 천직이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슬하에서 나는 자라왔다.
내가 미술을 교육하는 선생님이 된 계기는 어떻게 보면 우연한 기회였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미술 수업이었다. 미술전공을 하는 대학생들은 전공을 살리면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로 미술 강사를 많이 하는데, 나도 그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몇 개월만 하려 했던 강사일은 6개월,1년,2년..3년이 흘렀고 그 시간 동안 ‘수업을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하루도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했던 ‘일하기 싫다’라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는 3년의 시간이었다.
처음 수업을 맡고 아이들과 어느 정도 친해졌을 당시, 한 아이가 나에게 편지를 줬다. “미술선생님 미술을 가르쳐줘서 감사합니다. 저는 미술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아이의 진심이 담긴 편지였다. 그리고 그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님을 만났다. “요즘 아이가 미술학원 오는 걸 너무 좋아해요.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몸이 찌릿했다. 내가 하는 일에 이렇게 큰 감사를 받아 본 것이 처음이라.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강한 책임감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까?’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지??’
이 날의 고민을 시작으로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고 있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나를 만나는 아이들의 인생에 아주 작게나마 추억하고, 기억하고 싶은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선입견을 앞세운 사람이기보다는 아직 물들지 않은 아이들처럼 깨끗한 도화지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앞으로 쓰여 질 이야기는 아이들과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다보니 생각지도 못한 일상생활이 펼쳐지는가 하면, 어른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생각을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에 스스로 반성하는 날이 생기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학부모님이 상담을 오시면 가끔 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믿어주세요.” 모든 말은 감히 드리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사회에서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하기에,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선생님이기에 드릴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강한’ 아이들을 보면서 ‘나약한’ 어른이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이 글은, 이 글을 읽은 어른들이 모두 저처럼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이 아닙니다. ‘어떤 교육이 바른 교육입니다.’ 하며 지표를 안내하는 글도 아닙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작은 일상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일상을 함께하는 미술선생님의 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르지만, 이 글을 통해 조금은 순수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길 염원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여러분이 지내고 있는 일상에 작게나마 선한 영향력을 미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