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선생님으로 산다는 건. - EP01 -
01. 아이들이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한명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어느 날, 한 아이가 조금은 기운이 빠진 채로 학원에 왔다. 매일매일 누구보다도 밝게 인사를 하고 오는 아이라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신경이 많이 쓰였다. 아직 초보선생님이였던 나는 아이들이 먼저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기다려주자 라는 생각이 있었던 터라 쉽사리 “무슨 일 있니?” 하고 이야기를 먼저 건네지 못하고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이는 쉽게 집중하지 못하였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다가도 갑자기 “휴..” 하며 기운을 빼는 소리를 내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가 울적한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나처럼 오히려 눈치가 보여서 였는지 울적한 그 아이에게 그날따라 말을 걸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짐을 챙겨 나가는데 그 아이가 나를 빤히 보았다. “선생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학원을 그만둬야 하나..? 미술이 재미없어졌나...?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지만 이야기를 듣지도 않은 상태에서 지레 겁먹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가 더 불안해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응. OO아 무슨일 있니?”
교실에 그 아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나간 후, 둘만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친구들이 저를 따돌려요... 저를 두고 이런 편지를 주고 받구요.. 근데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친구가 저를 속상하게 했거든요? 그래서 속상해요...”
이야기를 하면서 찢어진 쪽지를 보여주는 아이는 속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보다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우리 OO이 많이 속상했겠다...”
아이가 울었다.
우는 아이를 토닥여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는 잠시 울다가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결국 아주 사소한 일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OO이를 질투하는 다른 친구의 시기심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일상의 감정다툼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그렇다할 이야기의 결론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냥 들어주었다. 선생님이 개입해 잘했네, 못했네의 옳고 그름을 따져주는 일보단 이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길 바랬다.
한 가지만 물었다.
“OO이는 그 친구와 어떻게 하고 싶어?”
“잘 지내고 싶어요........”
“OO이 마음이 그러면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꺼야, 혹시나 잘 안되더라도 괜찮아. 그건 OO이 잘못이 아니야.”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이는 눈물을 닦고 멋쩍은 표정을 지은 후 “선생님! 이제 괜찮아 졌어요!” 하며 이내 웃었다. 내가 아는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며 웃더니 다시 장난꾸러기로 돌아왔다.
그 아이는 며칠 후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선생님! 저 내일 그 친구랑 놀러가요.”
친구관계가 가장 소중한 시기인 3학년 아이였다. 아마 이 아이에게는 가족을 제외한 다른 관계에서 벌어진 이 일로 인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양한 관계가 얽혀있고, 이 관계들 속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많은 관계가 시작되고, 다양한 관계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분명 이 아이는 앞으로도 수많은 관계에서 아픔과 행복을 겪으며 자랄 것이다. 우리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아이들도 똑같은 생활을 이어나갈 것이다.
사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친구가 왜 그럴까’ 하면서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을 내 딸과 아들처럼 생각하며 수업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속상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제 속에서 누구의 편을 들기보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있어. 여기선 얘기해도 되.’ 라는 마음을 가지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행동했다.
이 비슷한 일들이 이 아이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미술선생님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경험이 더 있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괜찮다’ 해주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으로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돌아온다.
그리고 꼭 자신이 내린 결론을 나에게 이야기해준다.
아이들은 애초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보다 본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냐’ 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을까?
아이들보다 긴 세월을 지나온 어른들이 언제나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찾듯이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